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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05-29 01:28
총서_2008.7.20_박원길_원나라는 몽골의 지배사인가? 중화인민공화국사인가?
 글쓴이 : 관리자 (220.♡.249.154)
조회 : 12,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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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길, 〈원나라는 몽골의 지배사인가? 중화인민공화국사인가?〉《동북공정과 한국학계의 대응논리》, (사) 고구려연구회 엮음, 여유당, 1149~쪽, 2008.7.20; 5편 고려시대(요.금.원)사의 왜곡과 한국의 대응 논리


Ⅰ. 머리말
Ⅱ. 북방공정의 필요성과 연구사
    1. 중화인민공화국의 몽골인식과 북방공정의 필요성  
    2. 북방공정의 시작점(나이만 차강겔의 귀속다툼)
       1) 일본의 대륙진출과 몽골연구
       2) 중화인민공화국의 몽골연구
    3. 북방공정의 논리적 전개과정
       1) 몽골족간사(蒙古族簡史)의 편찬
       2) 몽골족통사(蒙古族通史)의 편찬
       3) 전자판(電子版) 몽골족통사(蒙古族通史)의 편찬
       4) 몽골민족통사(蒙古民族通史)의 편찬
       5) 10권본(卷本) 몽골족통사(蒙古族通史)의 편찬
       6) 북방공정의 논리를 반영한 몽골역사 관련 대표 저작물
Ⅲ. 중화인민공화국의 주변민족 연구현황 소개
    1.『중국변강연구총서(中國邊疆硏究叢書)』의 소개
    2.『중국변강사지연구(中國邊疆史地硏究)』의 소개
Ⅳ. 북방공정 논리의 허구성과 몽골국의 대응
    1. 북방공정 논리의 허구성
    2. 몽골국의 대응
Ⅴ. 맺는 말

Ⅰ. 머리말

1911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하자 가장 강하게 반발한 민족이 몽골족이었다. 그리고 내외몽골을 가리지 않고 격렬하게 나타난 현상이 독립의 움직임이었다. 그리고 그 해 12월 외몽골의 젭춘담바-코톡토(Jebtsundamba Khutugtu) 8세가 독립을 선포하자 내몽고나 탄노-오랑캐(Tannu Uriyangqai, 唐努-烏梁海)에도 그 영향이 즉각적으로 미쳤다.
몽골이 독립할 경우 그 영향이 어마어마한 영토분열로 나타나리라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즉 티베트에서 동투르케스탄을 거쳐 내외몽골로 이어지는 영토의 벨트가 중화인민공화국의 지도에서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이는 중화인민공화국의 황제인 원세개(遠世凱)의 눈에도 명백했다. 따라서 중화인민공화국은 처음부터 몽골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태도를 취하고 나왔다.
여기에서부터 몽골과 중화인민공화국 간에는 청나라의 성격에 대한 논리싸움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 논리싸움에서 열세에 놓인 중화인민공화국은 55개 소수민족에 대한 근본적인 논리구성을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그것이 바로 소수민족의 한족화(漢族化) 추진정책인  통일적다민족국가이론이다.
  현재 중화인민공화국은 1986년부터 티베트지역에 시행된 서남공정, 1997년부터 베트남에 적용된 남방공정, 2002년부터 신장 위구르지역에 적용된 서북공정과 동북 3성에 적용된 동북공정 등을 통해 소수민족의 소수민족의 한족화를 추진하는 역사전쟁을 시작하고 있다. 심지어 북방민족계열의 문화가 분명한 홍산문화(紅山文化) 즉 요하문명(遼河文明)도 자신들의 시원문명(始源文明)으로 편입해 역사전쟁의 상한선을 동북지역에서 발흥한 고구려와 몽골 등의 민족기원까지 확대하고 있다.
원래 역사와 문화는 한번 바뀌면 다시 회복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이러한 역사왜곡 행위에 동참하고 있는 소수 학자들은 학문의 신념이 무엇인가를 깨닫기 바라며 설령 강요에 의한 것이라 해도 추종 자체가 후세에 큰 비웃음을 남긴다는 것을 가슴에 간직하기 바란다.

Ⅴ. 맺는 말

중화인민공화국이 영토를 맞대고 있는 주변국가들을 상대로 추진하고 있는 각종 공정은 사실 소수민족에 대한 한인동화정책이자 분쟁 예상 지역에 대한 일종의 역사적 주권 확보가 그 주 목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한족화 프로젝트는 북방공정에 이르면 그 도가 지나쳐 일종의 제국주의적 침략이론을 보는 것처럼 섬뜩함마저 느낀다. 사실 북방공정의 논리대로라면 지구상에 몽골족의 역사는 존재하지 않고 중화민족의 역사만이 존재한다.
역사적으로 북방민족은 이동문명, 중원의 한족은 정착문명으로 구분될만큼 문화 정체성에서 분명한 성격차이를 가지고 있다. 또 문화의 특질도 언어학적인 차이만큼이나 사상적이나 제도적면에서 너무나 큰 차이를 가지고 있다. 대몽골 제국은 제1차 지구촌제국이라 일컬어질 만큼 팍스몽골리카라는 인류통합의 시대이념을 제시하고 있다.
그들이 제시한 팍스몽골리카라는 시대이념은 세계를 하나로 통합한 사상과 조직의 저수지로서 이후의 역사흐름을 결정짓는 모태가 되었다. 어느 면에서 팍스몽골리카의 진정한 실체는 열린 사회와 다민족 공동체의 씨앗이었던 혼혈문화에 있다. 혼혈문화란 바로 개방과 다양성을 자랑하는 잡종문화이다. 이러한 잡종문화는 합의의 규칙과 절차를 제도화한 대몽골 제국의 열린국회인 코릴타를 통해 상호간 눈높이를 맞추어 갔다. 대몽골 제국이 주변문화에 대한 어마 어마한 친화력을 발휘하며 세계 통합 제국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원동력은 어쩌면 그들의 군사력보다도 잡종문화의 힘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팍스몽골리카의 길에서 금나라나 남송을 바라보면 중원이란 제국을 구성하는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대몽골 제국에서 통용되는 국제어는 페르시아어, 돌궐어, 몽골어였지 중화인민공화국어는 아니었다. 오늘날 중화인민공화국의 통일적다민족국가의 기원으로 삼고 있는 원나라의 역대 대칸 중에서도 중화인민공화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한 대칸은 한 명도 없었다.
오늘날 미국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2차 지구촌 제국의 시대에서 세계 각국의 학자들이 팍스몽골리카의 본질에 대하여 각 방면에서 끊임없는 연구를 하는 것은 그만큼 그들이 제시했던 인류 통합의 시대이념이 남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 중화인민공화국이 전개하고 있는 북방공정은 그 논리가 영토의 주권확보 말고는 아무 이념도 보이지 않는다. 일부에서는 대몽골 제국이 내세웠던 혼혈ㆍ잡종 문화가 중화인민공화국이 주창하는 통일적다민족국가라는 개념과 유사하다는 지적을 하지만 실제 그 내용면에서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를 지니고 있다. 몽골의 격언에 “칸의 자리보다 칸의 유산을 탐내라”는 말이 있다.
대몽골의 길을 페르시아의 학자들은 ‘세계정복자사(Ta’rikb-I Jaban Gusba)’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그리고 그들이 정복하기 전과 정복한 이후가 세계가 확연히 달랐다. 이로 인해 강전영홍(岡田英弘) 등 일부 학자들은 “세계사는 몽골에서 시작되었다(世界史はモンゴルから始まった, Delkhiin Tuukh Mongoloos Ekhtei)”고 선언할 정도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진정으로 원나라를 통일적다민족국가의 기원으로 간주한다면 그들이 정복한 영토보다 그들이 추구했던 가치를 연구하여 인류에게 역사적 유산으로 제시해 주는 것이 올바른 태도일 것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추진하고 있는 각종 공정은 인류사에 대한 역사왜곡의 프로젝트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를 왜곡하는 민족은 지구촌 식구의 자격이 없다. 오늘날 중화인민공화국의 학문은 정치에 복무하고 있다. 그로 인해 진실은 중요하지 않으며 역사는 조작하면 된다는 비학술적인 인식이 생겨나고 있다. 현재 중화인민공화국 학계에서 행해지는 일련의 치졸한 행태를 보면 탄식이 절로 난다. 역사연구란 인류가 걸어왔던 문명ㆍ문화 교류의 장단점을 연구해 현재와 미래의 인류가 어떠한 협력과 상호이해 및 공존체제를 갖추어야 하는가를 제시할 때 의미가 있는 것이다.
역사적 영토문제 제기는 그 논의가 역사에 그치지 않고 정치현실화 될 경우 분쟁으로 치달을 수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한 차분하고도 치밀한 논리대응이 필요하다. 우리는 중화인민공화국 정부가 자기 땅이라 주장하는 티베트, 신강성, 내몽고, 동북3성이 역사적으로 왜 그들의 땅이 아닌지 학술적으로 반박해야 한다. 또 이를 위해 단독적으로 대응하는 것보다는 중화인민공화국으로부터 심각한 역사침탈을 받고 있는 몽골국과의 연합 대응이 효과적이다. 즉 몽골국과 손잡고 북방 민족이나 한민족의 역사적 영토, 문화적 정체성(identity), 민족의 기준 등 학문 중원 정벌과 같은 ‘한‧몽 연합 북방프로젝트‘를 전개할 필요가 있다.
일찍이 칭기스칸은 역사와 자연에서 배우지 못하는 자는 지도자가 될 수 없다고 했다. 동몽골지역은 몽골과 한국의 고대 역사 및 문화를 밝히는 민족문화 원형복원 사업의 주 대상 지역일 뿐만이 아니라 양국의 미래까지 얽힌 매우 중요한 지역이다. 실제 동몽골의 다리강가와 할흐골지역에는 고구려와 관계된 수많은 역사유적들이 있고 이동전설도 구전되고 있다. 한국과 몽골이 ‘한ㆍ몽 역사ㆍ문화 공동체’를 구성하여 중화인민공화국의 논리에 대응한다면 동북공정은 물론 북방공정도 허구에 지나지 않는 일시의 물거품이라는 것을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