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발해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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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05-29 01:29
총서_2008.7.20_김위현_금(金)건국과 발해유민 - 중공 학자들의 주장에 대한 토론
 글쓴이 : 관리자 (220.♡.249.154)
조회 : 12,494  
   dbpia1181563.pdf (17.2M) [4] DATE : 2009-05-29 01:29:22
김위현, 〈금(金)건국과 발해유민 - 중공 학자들의 주장에 대한 토론〉《동북공정과 한국학계의 대응논리》, (사) 고구려연구회 엮음, 여유당, 1105~쪽, 2008.7.20; 5편 고려시대(요.금.원)사의 왜곡과 한국의 대응 논리

Ⅰ. 서론
Ⅱ. 연구사
Ⅲ. 금초(金初) 발해 유민의 동태에 대한 중화인민공화국 학자들의 논지에 대한 토론
Ⅳ. 금 건국이전의 상황에 대한 중화인민공화국 학자들의 견해에 대한 토론
Ⅴ. 결론 및 요약

Ⅴ. 결론 및 요약

랑케(Ranke)는 역사는 과학적이고 객관적이며 세계적인 관점에서 기술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이는 재론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근년 중화인민공화국의 일부 학자들의 논문은 이러한 원칙적인 논법(論法)을 벗어난 것이 너무 많다.
다음에 그들의 ‘금 건국과 발해 유민’에 대한 견해에 대하여 문제점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1. 여진과 발해는 동족인가? 금나라를 세운 완안여진은 신라가 멸망한 뒤 만주지역으로 옮겨가서 산 종족이므로 협의의 혈연적인 관계는 없다. 이때 그 지역에서 여진이라 칭하였던 부족은 수없이 많았다. 따라서 완안여진이 대발해를 세워서 부흥하려다 좌절한 발해 유민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이다.
2. 중원문화를 받아들여 발전한 중국 고대지방정권이란 논리는 성립될 수 있는가?
  이것은 맞지 않는다. 왜냐하면 발해는 계속 연호(年號)도 써 왔고, 대외적으로 일본과도 독자적으로 교류하여 왔으며, 왕칭(王稱)하지 않고 황제로 불렸다. 제도를 본떴고, 조공을 바쳤다는 이유로 지방정권으로 분류한다면 그 당시 당과 교류했던 나라 모두가 당의 지방정권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미 조공제도에 대한 깊은 연구로 이 제도는 교류의 창구로 쓰였음이 연구되었다.
3.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가 아니라는 것은 절대 동의할 수 없다. ① 고려 때 『삼국사기』를 편찬할 때 신라, 백제, 고구려를 하나로 취급하였는데 이는 고구려가 고려의 조상의 한 갈래라는 표현이며, ② 궁예(弓裔)가 처음 국호를 고려라 하였는데 이는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뜻이였다. 고려 왕건이 이 정권을 물려받아서 국호를 고려로 하였다. 이는 고구려의 계승을 의미하는 것이다. ③ 게다가 993년 거란의 소항덕(손녕)이 쳐들어 와서 서회와 담판했을 때 서희가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라는 주장에 굴복하여 강동(압록강 동쪽) 280리를 고려에게 양여까지 한 것이다.
     이밖에 중화인민공화국의 정사(正史)라고 하는『신오대사(新五代史)』,『구오대사(舊五代史)』등에서도 고구려와 고려가 연결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4. 발해 부흥국이 건립되었을 때 여진은 무조건 도왔는데 고려는 방관하고 있었다. 이는 동족으로 인식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면 여진은 무조건 도운 사료가 있는가? 여진은 고려 태조 왕건의 표현처럼 배고프면 승복해 오고 배부르면 떨어져 나간다고 하였다. 그렇듯이 이익이 있을 때에는 언제나 모여 든다. 현종(顯宗) 연간 거란과 전쟁시에 거란에 군마(軍馬)까지 바치면서 종군(從軍)한 예들이 있다.
     더구나 거란과의 오랜 전쟁이 끝난 뒤에도 계속 그들의 재침에 대비하기 위하여 천리석성(千里石城)을 쌓고 또 국경에는 사소한 방어 또는 정보시설까지 못하도록 신경쓰는 판국인데, 발해 부흥국의 중심이 흔들리고 있는데 거기에 참전(參戰)하여 사직(社稷)을 위태롭게 할 필요가 없겠다는 판단에서이다. 만약 여진이 제대로 된 국가를 세우고 있었다면 그들인들 참전했겠는가?
5. 고영창이 대원국(大元國) 대발해 황제(大渤海皇帝)라 칭한 것을 할거 정권(割據政權)을 수립하고자 한 것이라는 것은 동의할 수 없다. 할거 정권이 목표였다면 황제라 하였겠는가?
6. 발해는 당의 통할 하의 지방민족정권이라 규정하고 있다. 발해는 발해 땅에 건국한 나라이지 당이 땅을 떼어주고 세운 나라가 아니다. 따라서 지방정권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만약 그런 논리라면 천하에는 중국외에는 나라도 민족도 문화도 없다는 논리이다.
7. 금이 요(遼)와 송(宋)을 멸망시키고 북송의 고도로 발전한 봉건문화와 직접 접촉한 뒤 봉건제도로 비약발전하기 시작하였다고 하였다. 이 역시 동의하기 어려운 것이다. 금은 같은 북방계 왕조인 요를 멸망시키고 여러 가지 요의 옛 제도를 이어받거나 본떠서 시행한 것이 많다. 송을 멸망시키고 그 땅에 송 제도를 시행하였지만 전국적으로 송제도를 시행하지는 않았다. 금은 요ㆍ송의 장점을 취하였으므로 어느 일방의 제도라 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