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발해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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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05-29 01:31
총서_2008.7.20_박한설_고려(高麗)의 고구려(高句麗) 계승성
 글쓴이 : 관리자 (220.♡.249.154)
조회 : 12,257  
   dbpia1181560.pdf (15.8M) [2] DATE : 2009-05-29 01:31:44
박한설, 〈고려(高麗)의 고구려(高句麗) 계승성〉《동북공정과 한국학계의 대응논리》, (사) 고구려연구회 엮음, 여유당, 877~쪽, 2008.7.20; 5편 고려시대(요.금.원)사의 왜곡과 한국의 대응 논리

Ⅰ. 머리말
Ⅱ. 연구사
   1. 한‧중‧일 3국인의 ‘고구려-고려 계승성’에 관한 인식
   2. ‘고구려-고려 연관성’에 관한 연구사
Ⅲ. 중공 학자들의 ‘고구려-고려 무관론’과 이의 비판
1. 중화인민공화국 학자들의 ‘고구려-고려 무관론’
2. ‘고구려-고려 무관론’에 대한 비판
1) 신라 영내의 고구려 유민 상황과 고구려 계승성
(1) 신라 영내 고구려인의 존속
(2) 고려 태조(高麗太祖) 왕건(王建)의 출자(出自)
(3) 고구려 계승성
2) 발해(渤海)의 국가적 성격과 고구려 계승성
(1) 발해의 국가적 성격
(2) 발해의 고구려 계승성
3) 발해 유민의 향방과 고려의 발해 계승 문제
(1) 발해 멸망 뒤 발해 유민의 향방
(2) 고려의 발해 계승 문제
Ⅳ. 요약 및 결론

Ⅳ. 요약 및 결론

이상에서 살펴 본 것을 정리해 보면 고구려의 유민은 남북으로 나뉘어 남쪽 신라 영역에 살게 된 고구려인은 200여 년 동안 고유성을 지키며 존속해 오다가 신라 왕조의 쇠퇴기를 당하여 고구려의 부흥 운동을 추진하여 후고(구)려를 세우고 이어 고구려 후예였던 왕건이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를 세워 ‘고구려 계승이념’을 완성하였는데 그 사이 200여 년의 공백은 비록 ‘고구려 정부’는 존재하지 않았더라도 ‘고구려족’은 엄연히 존속하였으므로 ‘단절’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즉 고구려인은 신라 영내로 편입된 고구려 고토에서 고구려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가 후고(구)려 및 ‘고려’의 성립으로서 ‘고구려-고려 계승성’을 성취했던 것이다.
한편 발해 쪽의 고구려 유민은 발해의 지배 계층을 형성하여 200여 년 동안 국가를 지배해 오다가 926년에 거란에게 멸망했는데 멸망을 전후하여 많은 지도층과 백성이 고려로 귀부하여 고려사에 기록된 숫자만 7~8만은 될 것이고, 기록 안 된 산발적 합류와 요‧금‧원 시대를 통해 장기간에 걸쳐 고려로 온 숫자까지 치면 수십 만은 될 것이다.
이리하여 남쪽에서는 신라 통치하에 있으면서 고구려의 전통을 유지해 온 고구려 유민에 의하여 ‘고구려-고려 계승’을 이룩했으며, 북쪽에서는 발해가 국가적으로 ‘고구려 계승’ 역할을 하였는데, 이를 도표로 그리면 다음과 같다.

            ┏    新羅內 遺民(종족전통 유지)  ┓
            ┃                                            ┃
 高句麗  ┤                                            ├  高麗
            ┃                                            ┃
            ┗    渤海國 政府 (국가체제 유지) ┛

이와 같이 고구려 멸망 뒤 남쪽에서는 ‘고구려인’의 혈통을 유지하고, 북쪽에서는 ‘발해국’이라는 후계 국가를 유지해 오다가 200여 년 뒤에 ‘고려 왕조’ 성립에 함께 참여하여 고구려의 부흥과 계승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즉 ‘고구려-고려의 계승성’은 확실한 것이며 따라서 고구려는 민족적‧역사적‧문화적으로 고려 왕조와 조선 왕조를 거쳐 현재의 한국인에게 계승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