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발해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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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05-29 01:32
총서_2008.7.20_이병건_고고학을 통해서 본 발해 건축문화의 정체성
 글쓴이 : 관리자 (220.♡.249.154)
조회 : 12,266  
   dbpia1181558.pdf (27.9M) [6] DATE : 2009-05-29 01:32:26
이병건, 〈고고학을 통해서 본 발해 건축문화의 정체성〉《동북공정과 한국학계의 대응논리》, (사) 고구려연구회 엮음, 여유당, 811~쪽, 2008.7.20; 4편 중화인민공화국의 발해사 왜곡과 한국의 대응 논리


Ⅰ. 머리말
Ⅱ. 각 국가별 연구동향
    1. 중화인민공화국의 연구동향
    2.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연구동향
    3. 대한민국의 연구동향
Ⅲ. 중화인민공화국의 논리와 이에 대한 비판
    1. 논리와 비판
    2. 대한민국의 대응방안
Ⅳ. 맺음말

Ⅰ. 머리말

건축을 비롯한 발해문화 연구는 대부분 일본, 중화인민공화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러시아에 의해 이루어졌다. 유적조사를 통해 발해국 자체의 독자적인 문화가 존재했다는 것이 확인되었음에도 각 나라들은 자국과 일방적인 비교를 통해 그 상관성을 밝힐 뿐, 발해국 자체의 문화는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이들 나라 가운데 중화인민공화국은 극히 일부분의 말갈계 출토 유물을 근거로 발해문화를 속말말갈이 주체가 된 중원문화를 모방한 일개 지방정권으로 인정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또한 발해문화를 고구려 것과의 비교를 통해 상호 계승관계 설정에만 몰입해 있다. 한편 국내 건축역사학계에서는 한반도 이외에 중화인민공화국 동북지역도 한국 건축사 연구범위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데에는 공감하고 있지만 관련 자료의 부족, 답사의 어려움, 전공자의 관심 부족 등으로 이 지역에 대한 연구를 등한시해 왔다. 그러나 1990년대 초부터 중화인민공화국 및 러시아와의 학술 교류 시작으로 고고학적 연구결과가 알려지고 있으며, 답사와 발굴(연해주지역)도 가능해져 많은 연구가 기대되는 시점이다.
최근 중화인민공화국은 고구려와 발해를 비롯한 동북지방을 자기들 역사에 편입하기 위해 ‘동북공정’을 진행한 바 있다. 고구려와 달리 발해에 대한 그들 입장은 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 안에서 성립되었고, 패망했으므로 당연히 그들 역사라는 주장이다. 또한 고구려 유적에 이어 흑룡강성 영안시 발해진 상경성을 비롯한 발해 유적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유적 발굴과 정리를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유적에 대한 발굴과 정리는 우리 입장에서 볼 때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일부 중화인민공화국 학자가 수행한 상경성 복원안은 지역 고유의 건축문화는 배제한 채 당과 청나라의 중원지역 건축만을 모델로 하고 있어, 그곳을 찾는 방문자에게 발해 건축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중화인민공화국의 신중치 못한 복원사업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렇다 할 연구 성과가 없어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늦은 감은 있지만 중화인민공화국 측 논리에 대응하여 고구려연구회를 비롯한 국내 연구단체에서는 고구려, 발해 문제 등에 관한 중화인민공화국 측 논리에 대해 관련자료 분석과 함께 이에 대한 대응논리를 개발 중에 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대응논리 개발의 일환으로 발해국 자체를 독립국가로 인식하고, 당시 발해국과 그 주변지역은 어떠한 건축문화적 보편성과 특수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파악하여 발해 건축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한다. 본 연구는 2장에서는 고고학 관점에서 수행된 중화인민공화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한민국 학자들의 발해 건축문화에 관한 연구 동향을 고찰해 보았다. 검토된 내용은 건축을 주로 하되 경우에 따라서는 토목, 분묘, 미술, 공예 등도 포함시켰으며, 관련된 고고 발굴 현황과 이 결과로 작성된 연구서의 발해 건축문화에 대한 각 국가별 논리이다. 이어 3장에서는 각 나라별 연구동향을 통해 중화인민공화국의 문화적 침탈논리가 무엇인지와 함께 이에 대한 비판을 하였으며, 우리의 대응방안을 모색해 보았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을 통해 본 연구에서는 발해에 대한 올바른 역사관을 정립하고자 한다.

Ⅳ. 맺음말

본 연구는 중화인민공화국의 발해 건축문화에 대한 왜곡된 논리를 파악하여 대한민국의 대응논리를 개발하는 것이 연구 목적이었다. 2장에서는 고고학 관점에서 지금까지 수행된 중화인민공화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발해 건축문화에 관한 연구동향을 고찰해 보았고, 3장에서는 각 나라별 연구동향을 통해 중화인민공화국의 문화적 침탈논리가 무엇인지와 함께 이에 대한 비판을 하였으며, 우리의 대응방안을 모색해 보았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을 통해 얻어진 결론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중화인민공화국에서 발해의 역사와 문화를 당나라의 지방정권화, 저속한 변방 문화화하는 근간을 마련한 것은 일본인들의 연구 성과를 기초로 왕승례, 이전복, 위존성 등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그들 입장은 상경성은 당의 장안성을 모방하였고, 건축의 풍격과 형태도 당 왕조를 표준으로 하였으며, 살림집터, 궁전터, 관청터, 절터 등에서 나타나는 건축적 특징도 중원의 성격이 강하다고 하였다. 이는 발해 지배계층이 열심히 당문화를 배운 결과라고 보았다. 여러 건축 기술과 양식에 있어 발해만의 독자적인 건축문화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중원지역문화를 최상위의 것으로 설정하는 자민족중심주의적 관점에 빠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위 세 학자가 펼친 역사 침탈에 이어 1990년대 들어 중화인민공화국 학자들은 치밀한 검토와 중원지역과의 일방적 비교 연구를 통해 발해 건축에 대한 그들의 논리를 철저하게 고착화시키게 된다. 장철령은 상경성을 복원하는 논문에서 기본 척도를 당척(唐尺)을 사용하였으며, 주변의 건축문화는 배제한 채 철저하게 오대산 남선사와 불광사 대전 등 중원지역의 건축물을 근거로 복원을 시도함으로써 우리와는 더욱 더 돌이킬 수 없는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들은 중원지역문화를 가장 우수한 문화로 설정해 놓고 그밖의 모든 소수민족문화는 이에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 논리로 일관하고 있다. 모든 문화ㆍ예술 분야에서도 중화사상에 입각한 사회주의적 다민족국가인 중화인민공화국의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논문이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경성 유적정리 및 복원사업의 모델이 되고 있어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발해 건축을 당나라의 지방적 건축문화로 인식하는 대표적인 예가 상경성의 도성제도와 건축 형식이다. 당의 것을 모방했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물론 상경성은 당의 장안성과 많은 유사한 점이 있으며, 분명 장안성의 건축 형식을 적극적으로 수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도성제도는 발해만이 모방했던 것이 아니라 동북아시아 대부분의 국가들도 이와 같은 제도를 따랐다. 그리고 장안성이 첫 모델이 된 게 아니라 한족이 형성되기 훨씬 전인 주나라 때 유래되어 각 지역으로 파급된 것이다. 또한 중원지역의 도성제도는 동양의 것만이 아니라 그리스나 로마 제국의 식민도시, 중세 독일 동쪽의 변경 식민도시, 남북아메리카 신대륙의 식민도시, 시리아에 있는 셀레우코스 왕조의 식민 도시, 아나톨리아 반도의 아시리아 식민도시 등 동서양을 막론하고 새로 계획되는 도시는 대부분 도시의 형태가 유사했다. 즉, 인류가 유랑생활을 시작으로 국가 형태로까지 발전된 뒤, 도시건설에 있어서는 보편적인 통치 질서가 어느 지역에서든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장안성을 예로 들며 발해 상경성을 포함한 한반도와 일본지역의 도성들이 일방적으로 중원지역의 영향을 받았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영향은 받되 각 지역의 여건에 따라 변화 발전해 나갔던 것이다. 또한 상경성을 비롯한 발해 대부분의 건축은 재료적인 면에서 엄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장안성을 비롯한 중원지역의 재료는 벽돌인 반면, 발해는 주요 구조부를 나무와 돌로 하고 있어 건축 구조 면에서도 엄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자연환경의 차이는 건축에 있어 절대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서 누가 누구를 모방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문화를 적극 수용하되 그 지역 혹은 그 국가의 문화적 독자성은 상호 인정되어야 진정하고 평화적인 국제질서의 길이 될 것이다. 여러 문제로 보아 중화인민공화국의 발해에 대한 지방문화요, 아류문화라고 평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에 대한 시정이 하루속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이루어진 대부분의 연구 성과 주제는 각 국가별 연구사와 도성을 포함한 건축 전반에 관한 것들이다. 이 연구사 또한 기존에 연구된 결과에다가 최근의 연구 성과를 보완하는 정도로 끝나고 있다. 이러한 우리의 연구 성향은 발해 유적에 대한 직접적인 발굴이 불가능한 것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연해주지역이나마 러시아와 공동으로 발굴하고 있는 성터를 중심으로 한 성과가 축적된다면 좀더 명확한 연구 성과가 나올 것이다. 우리가 앞으로 건축과 관련된 연구 주제를 잡는다면 상경성 제2절터의 석등과 장백현 영광탑과 같은 실존해 있는 유물을 대상으로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시아 각 지역과 비교 연구를 통해 발해 건축의 정체성을 찾아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