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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05-29 01:33
총서_2008.7.20_정진헌_중공의 남북국시대 반론에 대한 비판
 글쓴이 : 관리자 (220.♡.249.154)
조회 : 1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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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헌, 〈중공의 남북국시대 반론에 대한 비판〉《동북공정과 한국학계의 대응논리》, (사) 고구려연구회 엮음, 여유당, 755~쪽, 2008.7.20; 4편 중화인민공화국의 발해사 왜곡과 한국의 대응 논리

Ⅰ. 서  론  
Ⅱ. 남북국시대론의 연혁
    1. 유득공의 남북국론
    2. 남북국시대론으로의 전개
    3. 남북국시대론으로 귀착
Ⅲ. 동북공정 이전의 견해에 대한 분석
    1. 손옥량의 견해에 대한 분석
    2. 왕건군의 견해에 대한 분석
    3. 손진기의 견해에 대한 분석
Ⅳ. 동북공정 이후의 견해에 대한 분석
    1. 곽소미의 견해에 대한 분석
    2. 무옥환의 견해에 대한 분석
    3. 왕성국의 견해에 대한 분석
    4. 장벽파의 견해에 대한 분석  
    5. 초홍의 견해에 대한 분석
Ⅴ. 여러 주장에 대한 비판
    1. 사료의 선택과 해석의 획일성
    2. 사회 구성체의 변화에 대한 무지
    3. 중화인민공화국 천하관에 의한 고대사 오인
Ⅵ. 결   론

Ⅰ. 서   론

근래 중화인민공화국(中華人民共和國)에서는 그들이 현점(現點)한 이른바 동북지구(東北地區)의 역사찾기에 몰두하여 적어도 양적으로는 상당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최근에는 동북공정(東北工程)을 진척시켜 그 역사를 그들 입맛에 맞게 만들었다.
그 내용을 보면 발해(渤海 : 698∼926)는 물론 고구리(高句麗 : 서기전 37∼서기후 668),  더 나아가 단군조선(檀君朝鮮) 심지어 선사시대(先史時代)부터 그들 한족(漢族)의 역사 또는 그에 예속된 것으로 치부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그들이 과거에 고구리와 발해의 계승성을 부정했던 정도를 훌쩍 넘어선 것으로 한국사(韓國史)의 존재마저 부정할 위험이 있다. 왜냐하면 발해 이후의 요(遼 : 907∼1125), 금(金 : 1115∼1234), 원(元 : 1206∼1368), 명(明 : 1368∼1662) 그리고 청(淸 : 1616∼1911)이 그곳을 실질적으로 장악했는데, 중화인민공화국인들은 이들 모두를 중화인민공화국사(中華國人民共和國史)로 당연시하기 때문이다.
동북공정의 요체가 동북지방의 역사가 중화인민공화국사와 관련 깊고, 반대로 한국사와 연관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래서 중공의 연구자들은 종래에 한국사와 긴밀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여겼던 발해와 고구리부터 철저히 분석해서 한국사와의 연계성을 부정했다. 아니 부정이 아니라 그 모두를 중화인민공화국사의 일부로 설정했다. 그 핵심이 바로 발해와 고구리의 연계성을 말살하고 나아가 고구리와 한국사의 관련도 없는 것으로 치부한 것이다.
이런 연구 작업과 그 결과는 기존의 역사 체계와 상식을 모두 말살할 시점에 있어서 도무지 묵과할 수 없는 위험한 상황이다. 이에 과연 그 연구 결과와 주장이 타당한지를 확인하고자 대표적인 연구 결과를 분석했다. 특히 발해사의 위상과 직결되는 남북국시대론(南北國時代論)에 대한 언급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Ⅵ. 결   론

지금까지 남북국시대론의 연혁과 이에 대한 중화인민공화국의 연구자들이 반박한 내용을 살펴봤다. 그 결과 남북국시대론에 대한 최근의 중공 연구 논저들 가운데 어느 것도 참된 학술 연구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1995년까지는 중공의 역사 연구자들의 양식과 소양이 상당하여 그들이 다룬 사료나 비판의 논리가 객관적이고 과학적이어서 분석하고 비판할 만했다. 이 당시에는 발해의 고구리 계승성을 밑받침으로 삼은 남북국시대론에 대한 반론이 대세였다. 그래서 그들은 유득공의 남북국론이 날조였다고 지적한다거나, 그 뒤에 이루어진 남북국시대론의 취약점을 적취해서 오류를 찾거나, 아니면 고구리와 발해의 계승성이 근거가 없다는 점을 입증하는 데에 주력했다. 그런데 그들이 이런 방식으로 이 사실을 반증하면 할수록 고구리와 발해의 연계성이 강했음을 드러내어서 결국은 남북국시대론의 입지를 살려준 셈이 되었다.
그러나 그 이후 동북공정에 종사한 연구자들의 논문은 전혀 다른 양태로 전개되었다. 동북공정 종사자들은 남북국시대론이나 발해의 고구리 계승성을 직접 논박하지 않고, 주로 발해와 고구리의 족속이나 귀속 문제의 구명에 치중했다. 특히 발해에 관해서는 그 족속이 말갈이고, 당에 귀속되었다는 점을 이구동성으로 주장했다. 게다가 그들은 발해와 고구리는 전혀 별개임을 누누이 강조했다. 이 모두는 남북국시대론은 족속과 귀속이란 근본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부정할 수 있다는 어떤 방침에 따른 결과라고 본다.
또한 그들 모두는 마치 노랫말의 후렴처럼 발해와 고구리가 발흥하고 소멸한 만주 대륙이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영토’라고 반복했다. 이들 변화를 총괄해 보면 남북국시대론에 대한 중공의 논리와 주장이 동북공정 이전과 이후가 전혀 다른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그 내부를 보면 그 근본 주장은 공정 이전과 이후가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공정 이전의 연구자는 연구 방법과 논리, 그리고 취급 사료가 제법 학술적인 면모가 있는 데 반하여 공정 이후의 연구자들 대부분은 그들 말마따나 ‘학술의 정치화’의 해독이 커서 전혀 그런 점을 찾아볼 수가 없다. 대부분이 정해진 목표에 맞추어서 사실을 천편일률적으로 꿰맞추고 동일한 결론을 주장했다.
아무튼 중공의 연구자들은 남북국시대론 자체를 허구와 날조로 매도했다. 그들은 남북국시대론의 골자인 고구리와 발해의 계승관계를 일절 부정하는 데 집중했다. 즉 발해의 독립성을 드러내고 고구리의 개별화를 꾀한 뒤에 마지막에는 발해는 물론 고구리도 중국의 일부로 단정했다. 이렇게 발해는 물론 고구리까지도 중화인민공화국사의 일부라고 강변하는 것은 한국사와 중화인민공화국사, 더 나아가 일반 역사 서술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요 그들의 터무니없는 저의를 드러낸 것이다.
최근에는 그곳의 상위 기관에서 주도하여 대규모로 차원과 정도를 달리한 역사 창조 작업을 영위해서 완성되기에 이르렀다. 고조선부터 중화인민공화국의 부속물로 잡았으니, 이제는 고구리와 발해의 연계성, 그리고 발해의 족원과 귀속성과 같은 지리멸렬한 그 동안의 조작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야 할 판이다. 모든 것을 중화인민공화국사로 편입했으니 종래의 자잘구레한 고구리나 발해와 연관된 논쟁들, 즉 고구리와 발해의 족원 구별과 계승성 따위는 그들의 새로운 역사 체계에 방해만 되므로 불필요하게 되었다. 이로써 남북국시대론에 대한 부정의 발판마저 없애고 마침내 다민족 통일 국가의 역사인 중화인민공화국사만이 남게 되었다.
이렇게 엄청난 인위적 역사 조작 행위는 역사 연구의 필요성을 말살하므로 종국에는 거창한 그들의 그들만을 위한 중공사만 남아서 후세의 연구자들에게 혼란만 가중시킬 것이 뻔하다. 식민주의 사관으로 무장한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남긴 소위 만선사관이 그 모범이다.
엄정히 말해서 과거의 역사는 과거의 것이지 현재와는 무관하다. 그런데 중공의 연구자들처럼 현재의 지역 연고에 따라 과거사를 자국에 귀속시키는 것은 전례가 없는 무모한 짓이다. 더구나 타자의 기존 역사와 시대론을 왜곡 내지는 말살하여 그 모든 것을 자신의 것으로 취하는 행위는 무형의 정신 문화에 대한 침탈이다. 이를 밑받침하는 사료를 수습하고 곡해해서 역사 사실로 위장하는 것은 역사 연구가 아니고 정책의 선전 공략의 도구인 것이다.
정치화가 이루어져 자국 정책의 특수한 목적에 알맞게 과거 사실을 꿰맞추는 작업을 학술연구라고 할 수는 없다. 그 결과 그들의 연구는 어느 한 조각도 남북국시대론을 제대로 인식한 흔적이 없다. 이럴진대 그들은 유득공이 의도한 남북국론을 파악하기는커녕 그 역사적 의미의 편린조차도 감지하지 못했다고 판단한다.
역사 연구의 본령은 역사를 돌이키자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기억하자는 것이다. 자세히 말하자면 역사는 과거 일을 돌이켜 다시 사회 문제로서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과거를 기억하고 그 과거에 있었던 사실을 통해서 인간과 문화, 인간과 사회, 그리고 인간 본연의 참모습을 파악하자는 것이다. 이런데도 과거 어느 전통도 전혀 없는 역사를 어느 날 갑자기 비과학적인 논리나 방법으로 현시점에서 필요한 정책의 도구나 자료로서 날조하는 것은 역사 연구자 모두가 절대로 금기해야 하는 것임에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