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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05-29 01:36
총서_2008.7.20_이도학_삼국에 관한 주변 국가의 인식에 관한 연구
 글쓴이 : 관리자 (220.♡.249.154)
조회 : 11,601  
   dbpia1181552.pdf (35.6M) [3] DATE : 2009-05-29 01:36:20
이도학, 〈삼국에 관한 주변 국가의 인식에 관한 연구〉《동북공정과 한국학계의 대응논리》, (사) 고구려연구회 엮음, 여유당, 567~쪽, 2008.7.20; 3편 중화인민공화국의 고구려사 왜곡과 한국의 대응 논리

Ⅰ. 머리말
Ⅱ. 연구사
    1. 고구려사의 귀속성 문제
    2. 고구려와 백제·신라간의 상호 귀속성 비교
    3. 고구려 멸망에 대한 시각
    4. 중원 왕조의 문화적 위상과 역할
Ⅲ. 중화인민공화국의 침탈 논리와 이에 대한 비판
    1. 침탈 논리
       1) 고구려사에 대한 침탈
       2) 백제사에 대한 침탈
       3) 신라사에 대한 침탈
    2. 중화인민공화국 논리에 대한 비판
       1) 고구려사가 중화인민공화국 역사인 이유에 대한 반론
       2) 백제사 침탈에 대한 반론
       3) 신라사 침탈에 대한 반론
    3. 삼국의 독자적 위상에 관한 확인
       1) 해동과 삼한 의식의 탄생, 그리고 중원 왕조와 구분되는 위상
       2) 삼국의 천하관과 황제체제
    4. 문화 공동체로서의 삼국
       1) 문화적 동질성의 조성
       2) 삼국 국호의 동질성과 국가의 기원 인식
       3) 고구려문화의 전파
       4) 문화적인‘삼한 공동체’의 탄생과 그 문화의 계승성  
Ⅳ. 요약 및 결론

Ⅳ. 요약 및 결론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고구려사가 중화인민공화국 역사인 근거로서, 고구려와 상나라가 동일한 조상에 연원을 주었음을 주장하였다. 상나라와 고구려 모두 중국의 전설적 인물인 전욱 고양씨와 제곡 고신씨의 후예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고구려 자체 전승과 무관한 것임을 밝혔다. 오히려 고구려 건국세력은 부여에서 출원했음을 제시하였다. 고구려가 발흥한 지역이 중국 영토였다는 것을 근거로 당초부터 중국사에서 출발했다는 주장을 하였지만, 고조선 영역에서 국가를 형성했음을 지적하였다.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백제인들이 무력 수단을 통해 국가회복 운동을 시도하다가 실패한 후에 당나라와 연계하여 탄생시킨 웅진도독부가 통치하는 시기를 자국사에 편제하였다. 웅진도독부가 통치하던 시기의 역사를 당나라 역사로 가져간 것이다. 그러나 웅진도독부는 방법을 달리하는 백제인들의 국가회복운동 차원에서 그 성격을 규정하는 게 온당하다는 사실을 밝혔다.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가 백제의 요서경략설을 비롯한 중원대륙 경략기록에 근거해서 오히려 백제가 중원대륙을 정벌한 사실을 상기시켰다. 이 모든 기록은 중화인민공화국 사서에서 근거한 것들이다.
신라 건국세력의 계통을『삼국지』기록에 근거해서 중원 왕조인들과 결부지었지만, 오히려 고조선과 관련 있음을 문헌 자료로 제시하였다. 그리고 신라 김씨 왕실이 중국의 전설적 인물인 소호김천씨의 후예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였다. 600년에 찬술된 중국의 서적인『한원』에서 “신라 왕의 성은 김씨인데, 그 선조가 출원한 곳은 미상이다”라는 기록과 더불어 신라 적석목곽분의 계통에 대해 추적하는 동시에 문무왕릉비편에서 그 기원을 흉노에서 찾는 기록을 찾아서 제시하였다. 나아가 신라가 당나라의 속국이라는 주장에 대한 반론으로서, 태종무열왕의 묘호(廟號)가 당 태종의 그것과 동일하므로 고치라는 지시를 거부한 사실을 제시하였다.
삼국 역사의 독자성은 중원 왕조나 일본에서의 인식에서도 확인된다. 물론 이는 문화적인 고유성과도 무관하지 않은 일인데, 삼국을 ‘해동삼국’ 혹은 ‘삼한’으로 인식했다는 것이다. 그러한 해동과 삼한 인식의 태동과 변천 과정을 소개함으로써 삼국의 정치적 독자성을 조명할 수 있었다. 이와 더불어 삼국 스스로가 자국을 어떠한 선상에서 인식했는지 여부가 중요한 일이었다. 그랬기에 삼국의 천하관과 황제체제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들을 중심으로 중원 왕조와 구분되는 독자적인 정치권을 설정하였음을 밝혔다.
본고에서는 상당한 지면을 할애해서 문화 공동체로서의 삼국을 고찰하였다. 언어와 풍속 전반을 비롯해서 정치제도에 이르기까지 삼국문화의 동질성을 구명하였다. 아울러 삼국 간의 문화 교류가 이루어진 구체적인 고고 물증을 제시하였는데, 그 정점에는 고구려가 자리잡았다는 사실을 밝혔다.
지금까지의 고찰을 통해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삼국은 중원 대륙이나 일본열도와는 구분되는 독자성을 지닌 세력권이었음을 구명할 수 있었다. 중원 국가나 왜국이 삼국을 ‘해동’이니 ‘삼한’으로 일컫게 된 역사적 배경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성과를 이루었다고 자평하고 싶다. 고구려를 축으로 한 백제‧신라 삼국은 사회 문화적 공동체 관계와 독자적 정치적 공간을 유지한 한국사 속의 국가였음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