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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05-29 01:38
총서_2008.7.20_송용호_중화인민공화국의 고구려사 왜곡과 일사양용에 관한 연구
 글쓴이 : 관리자 (220.♡.249.154)
조회 : 1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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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용호, 〈중화인민공화국의 고구려사 왜곡과 일사양용에 관한 연구〉《동북공정과 한국학계의 대응논리》, (사) 고구려연구회 엮음, 여유당, 539~쪽, 2008.7.20; 3편 중화인민공화국의 고구려사 왜곡과 한국의 대응 논리

Ⅰ. 서론
Ⅱ. 시기별 분류와 특징 분석
    1. 제 1시기 : 20세기 초~1980년대 말
        1) 제 1견해 : 대한민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귀속
        2) 제 2견해 : 중화인민공화국에 귀속
        3) 제 3견해 : 대한민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및 중화인민공화국에 공동귀속(一史兩用, 歷史共有)
    2. 제 2시기 : 1990년대 ~ 2000년
        1) 제 1견해 : 대한민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귀속
        2) 제 2견해 : 중화인민공화국에 귀속
        3) 제 3견해 : 대한민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및 중화인민공화국에 공동귀속(一史兩用, 歷史共有)
    3. 제 3시기 : 2000년 이후 ~ 최근
      1) 제 1견해 : 대한민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귀속
        2) 제 2견해 : 중화인민공화국에 귀속
        3) 제 3견해 : 대한민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및 중화인민공화국에 공동귀속(一史兩用, 歷史共有)
Ⅲ. 각 견해별 각 시기별 연구자 및 연구 성과물 분류표
Ⅳ. 결론

Ⅰ. 서론

중화인민공화국의 사서에는 고구려사의 귀속 문제에 대하여 크게 다음 두 가지 견해가 병존하고 있다. 첫 번째 견해는 “비한족천하, 즉위외국(非漢族天下, 卽爲外國, 한족(漢族)만이 중화인민공화국인이며 한족이 아니면 중화인민공화국인이 아니다)”라는 견해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한족(漢族)이 아닌 민족이 세운 국가는 중화인민공화국사에 편입되지 않으며, 따라서 고구려와 발해도 중화인민공화국사에 편입되지 않는다.
두 번째 견해는 “보천지하막비왕토, 솔토지빈막비왕신(普天之下莫非王土, 率土之濱莫非王臣, 하늘 아래 왕의 땅이 아닌 곳이 없고 땅 위에 왕의 신하가 아닌 것이 없다)”라는 견해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한족(漢族)이 중원지역에 세운 나라 주변의 민족과 그 민족이 세운 나라는 모두 중화인민공화국의 신속으로서, 모두 중화인민공화국사의 일부분이며, 따라서 고구려와 발해도 당연히 중화인민공화국사의 일부분으로 편입된다.
현대 중화인민공화국 학자들은 고구려가 중원 왕조에 때로는 신속하고, 때로는 배반함으로써 사서의 기록에 이런 두 가지 견해가 공존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고구려의 귀속 문제에 관한 명확한 견해 규명에 모순을 가중시켰다고 주장한다. 즉 사서에도 고구려의 귀속 문제에 일치하지 않는 두 가지 견해가 모두 발견됨을 뜻하는 말이다.  
본 논문에서는 이러한 사서의 기록을 근거로 고구려의 귀속 문제를 해석한 20세기 이후의 현대 중화인민공화국 학계의 견해와 주장을 시기별로, 견해별로 분류하고, 각 시기와 각 견해의 특징, 연구자 및 연구 성과물에 대하여 통계적 조사를 진행함으로써 이 문제에 대한 중화인민공화국 학계의 인식의 변화 과정을 규명해 보고자 한다.

Ⅳ. 결론

본 논문에서 중화인민공화국 학자들의 고구려사 귀속문제 인식에 대한 시기별 분류와 특징을 연구사의 통계학적 분석 방법을 이용하여 고찰해 보았고, 이를 통해 ‘一史兩用’의 견해가 대두된 과정과 배경, ‘一史兩用’의 실제적 의미와 그 함정에 대하여 분석해 보았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결론을 얻게 되었다.
첫째, 1980년대 말 이전까지는 중화인민공화국 학계에서도 고구려가 대한민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사에 귀속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는 점이다.
둘째, 1990년대 이후부터 고구려가 대한민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사에 귀속된다는 견해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견해가 왕성하게 대두되었는데, 처음에는 외국(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학자들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반박하기 위하여 고구려사가 중화인민공화국사에만 귀속되어야 한다는 견해의 연구에 집중되다가 국외 학자들(특히 대한민국 학자들)의 반발에 부딪히게 되자 2000년 이후 부터는 고구려가 두 나라 또는 주변 여러 나라의 역사에 모두 귀속될 수 있다는 견해(一史兩用 또는 一史多用)로 빠르게 선회했다는 점이다.
셋째, 그러나 2000년 이후에도 고구려가 중화인민공화국사에만 귀속되어야 한다는 견해가 여전히 많을 뿐만 아니라, 一史兩用의 견해도 고구려가 중화인민공화국사에는 모든 시기가 귀속되지만, 대한민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사이나 주변의 여러 나라 역사에는 그 일부(고구려 후기)만 귀속된다고 그 범위를 제한하고 있다는 점이다.
넷째, 一史兩用’의 견해가 표면적으로는 제1견해(고구려사의 대한민국 귀속)와 제2견해(고구려사의 중화인민공화국 귀속)에 대한 절충안으로서, 기존의 귀속 문제에 대한 강경한 태도에서 한발 양보한 견해인 것처럼 보이지만, 근본적으로는 동북공정을 통해 고구려사의 중화인민공화국사로의 편입을 위한 수단적 방안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다섯째, 고구려가 대한민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사에 귀속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라는 대한민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민들의 인식과 기대와는 달리, 중화인민공화국 학계에서는 어떠한 이유 또는 필요성으로 인하여 1990년대 이후부터 고구려 정권은 중화인민공화국 고대 동북지역의 지방정권이었으며, 모든 시기의 고구려사 또는 고구려사 대부분이 중화인민공화국 역사에 귀속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보편화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주장이 동북공정 초기의 강경한 제2견해(고구려사가 중화인민공화국사에만 귀속됨)이든 이를 완화한 제3견해(一史兩用)이든 모두 역사 연구의 보편타당성과 객관성이 결여된 역사 왜곡으로, 우리가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견해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중화인민공화국이 제기하는 일사양용(一史兩用)론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와, 이의 불합리성에 대한 자세한 분석과 연구가 빠른 시일 안에 한국 학계의 다양한 노력을 통해 집중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