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발해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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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05-29 01:40
총서_2008.7.20_박아림_고구려 벽화를 통해서 본 고구려의 정체성 연구
 글쓴이 : 관리자 (220.♡.249.154)
조회 : 11,569  
   dbpia1181549.pdf (19.7M) [4] DATE : 2009-05-29 01:40:08
박아림, 〈고구려 벽화를 통해서 본 고구려의 정체성 연구〉《동북공정과 한국학계의 대응논리》, (사) 고구려연구회 엮음, 여유당, 441~쪽, 2008.7.20; 3편 중화인민공화국의 고구려사 왜곡과 한국의 대응 논리

I. 머리말
II. 중화인민공화국의 고구려 벽화고분 연구사
III. 중화인민공화국의 침탈논리와 이에 대한 비판
  1. 고구려 고분벽화의 중원(한)문화 귀속 주장
  2. 고구려벽화에 보이는 신화, 종교적 주제에 대한 중원과의 관계 강조
  3. 고구려 후기 벽화의 사신도의 기원 강조
  4. 한위진남북조 시대 고분미술과 비교하여 본 고구려 벽화의 정체성 - 고구려 고분벽화의 한계(漢系) 요소와 비한계(非漢系) 요소
IV. 맺음말

I. 머리말

기원전 1세기부터 기원후 7세기까지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 동북부지방과 북한지역을 통치한 고구려의 문화와 미술의 우수성은 고구려 도성유적과 벽화고분이 2004년 7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됨으로써 국제적인 인정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현재 중화인민공화국은 동북공정이라 하여 고구려 고분을 포함한 중화인민공화국 국경 내의 모든 문화유산을 중화인민공화국 문화유산에 포함시키려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고구려 고분벽화의 연구는 고구려의 역사와 문화의 정체성을 찾는 데 가장 중요한 작업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고구려 벽화의 독자성과 중화인민공화국 고분벽화와의 차별성을 규명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비록 벽화고분이라는 형식은 대개 한나라에서 시작된 것으로 여겨지지만, 단순, 소박, 간결의 미를 가진 생활풍속도 위주의 무용총을 비롯한 고구려의 벽화의 특성은 후기 남북조 고분에서부터 시작되는 선비족, 거란족, 몽골족을 비롯한 이민족에 의해 세워진 북위, 북제, 수, 당, 요, 금, 원 등의 비한족 고분 미술과 연결된다.
고구려사는 한국사 및 한국 민족문화에 중요성을 지닌 역사 유산이다. 고구려 고분벽화가 2004년 7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과 북한지역으로 분리된 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바, 동북공정에 대한 대응논리 개발과 고구려 고분벽화의 역사적 정체성에 대한 학술적 연구가 필요하다. 고구려 벽화에 나타난 고구려문화와 역사의 독자성을 확립하여 중화인민공화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고구려 고분벽화에 대한 중화인민공화국 학계의 논리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고구려 고분벽화가 지닌 독자성과 차별성을 규명하려고 한다. 고구려는 3세기에서 7세기까지 현재 확인된 것만 107기가 넘는 벽화고분을 건축하였으며 벽화를 통해 고구려의 독자적인 문화 양식을 확립하여 같은 시기 동아시아 고분 미술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이후의 동아시아 고분벽화의 발달에 있어서 공헌을 하였다. 중화인민공화국의 동북공정에 대응하여 고구려 벽화에 나타난 고구려문화와 역사의 독자성을 확립하고, 한족(漢族) 중심으로 해석되어온 중화인민공화국 고분벽화의 발달을 새롭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

III. 맺음말
 
위에서는 중화인민공화국 학계를 중심으로 고구려 고분벽화의 발굴, 연구사를 정리한 후, 중화인민공화국 학계의 동북공정 관련 논리를 정리하였다. 그 주장에는 고구려 고분벽화의 중원(한)문화 귀속, 고구려 벽화에 보이는 신화, 종교적 주제에 대한 중원과의 관계 강조, 고구려 후기 벽화의 사신도의 기원 강조가 두드러지며, 그에 대한 대응논리로 한위진남북조 시대 고분미술과 비교하여 본 고구려 벽화의 정체성과 고구려 고분벽화의 한계 요소와 비한계 요소 구별의 필요성을 논하였다.
한나라의 고분벽화에 영향을 받아 고구려 고분벽화가 만들어졌으므로, 고구려의 벽화는 한문화권에 속한다는 주장은 미술사의 기원이나 비교사적 연구에서 볼 때에 문제가 많다. 고분벽화의 기원과 변천, 편년을 연구할 때 한국, 일본, 중화인민공화국 삼국은 모두 중화인민공화국 한, 위ㆍ진 시대의 고분벽화 및 중앙아시아지역 석굴사원 벽화의 고구려 고분벽화에 대한 영향과 교류를 중시하여 양자 사이의 영향관계를 편년의 기초자료로 삼고 있다. 상호 연관관계를 따져 비교편년이나 양식상의 발달을 연구하는 것이 미술사에서 기본적인 연구방법이다. 그러나 중화인민공화국은 고구려 벽화에 미친 자국의 영향관계만을 부각시켜 고구려 벽화가 한문화권에 속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한 주장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세계문화유산인 돈황, 운강, 용문석굴에 대하여 불교의 기원이 인도이고, 석굴 형식이나 벽화, 조각을 인도에서 받아들였으므로, 중화인민공화국의 불교석굴들은 모두 인도문화권의 석굴이라는 주장이나 다름이 없다. 이들 불교석굴들은 인도 불교석굴의 영향을 받아들였으되, 중화인민공화국의 독자적인 양식으로 소화시켜 만들어낸 중화인민공화국의 문화유산이다. 불교를 고구려에 전파한 것이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점을 내세워서 고구려 벽화에 나타난 불교적 주제를 중화인민공화국 문화의 전파라고 주장하는 점도 문제가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의 논리대로라면 중화인민공화국에 세워진 불교미술의 기원지가 인도이므로 중화인민공화국의 불교미술, 불교문화가 인도문화권에 속한다고 하는 주장하는 셈이 된다. 고구려 벽화에 대하여 중화인민공화국의 영향만을 강조하는 학자들의 주장은 벽화라는 것이 세계 미술사 내에서 어떠한 위치를 지니는가 하는 고려 없이 중화인민공화국 내의 자료에 한정되어 고찰함으로써 미술사에 있어서 상호 교류라는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연구방법에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다. 고구려에 대하여 일방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중화인민공화국의 편협하고 왜곡된 시각은 중화인민공화국 미술사 자체의 발달 연구에 있어서도 적용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감숙성, 신강성의 중앙아시아미술이 동서문화의 교차로에 위치하여 동서의 미술과 문화를 각각 받아들여 문화의 수용과 전파, 융합과 동화라는 특징을 보이는 점을 고려하여 고구려 벽화 역시 같은 객관적이고 포괄적인 관점에서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흔히 고구려 벽화의 10가지 대표적 주제가 거의 모두 한나라의 고분미술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지나, 수렵도, 연회도, 행렬도, 부엌 주방도, 묘주부부 연회도 등은 중화인민공화국을 벗어난 서아시아, 중앙아시아에서도 유행한 주제들이다. 또한 한계 요소라고 여겨져 왔던 것들 역시 비한계 요소로 다시 구분할 필요도 있다. 이를테면 무용총의 묘주도를 고원 칠관화, 사사니안 연회도, 소그디안 석각의 묘주부부 연회도, 돌궐 석인상 등과 연결 비교하면 이제까지 한의 요소라고 여겨져 왔던 것들을 북방민족적 요소, 서역적 요소로 해석할 수도 있다.
중화인민공화국 학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한의 고분미술의 유습이 서북, 동북변경으로 옮겨져 남았고 그것이 다시 북위의 화북통일로 통합이 되었다고 하나 동시대 요령성, 감숙성지역의 벽화고분과 고구려의 초기 벽화고분을 비교하면 문화의 전파 경로가 단순히 중화인민공화국에서 고구려지역으로 단선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고구려가 6∼7세기 동아시아에서 보기 드문 고분벽화를 발달시킨 점에서 668년에 고구려 벽화의 전통이 완전히 끊어지고 이후에는 찾아볼 수 없다고 하나 고구려와 북조와의 외교관계, 상호 교류에서 고구려가 남긴 전통을 찾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당의 성립과 고구려의 멸망을 북방민족의 통합으로 보면 고구려의 고분벽화가 북방민족의 고분회화 발달에 미친 영향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고구려가 벽화고분을 건축한 3∼6세기의 북조문화는 한족(漢族)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고구려와 같은 북방민족인 선비족 등에 의해 주도된 것이었다. 한의 멸망 후 동아시아 고분벽화 발달에 주도적 역할을 한 고구려의 고분벽화는 중화인민공화국 미술 안에 속해진 변방지방정권 하의 미미한 문화의 산물이 아니라, 중화인민공화국 한족 중심의 고분문화를 독자적으로 변용시켜 발달시키면서, 이후의 북제, 수, 당, 요, 금, 원으로 이어지는 선비족, 거란족 등 북방이민족을 포함한 동아시아 고분벽화의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고구려의 고분벽화는 한족 중심의 동아시아고분벽화 발달에 있어서 그 질서를 재개편하였으며 북방민족 고유의 독자적 관습과 특성을 포함시켜 발달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