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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05-29 01:46
총서_2008.7.20_서길수_중화인민공화국 동북공정 5년의 성과와 전망- 역사침탈은 계속된다 -
 글쓴이 : 관리자 (220.♡.249.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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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길수, 〈중화인민공화국 동북공정 5년의 성과와 전망- 역사침탈은 계속된다 -〉《동북공정과 한국학계의 대응논리》, (사) 고구려연구회 엮음, 여유당, 15~쪽, 2008.7.20; 1편 중화인민공화국의 다민족통일국가론과
동북공정

Ⅰ. 머리말
Ⅱ. 동북공정의 연구 과제 분석
    1. 동북공정 1차년도(2002년) 선정 과제
    2. 동북공정 2차년도(2003년) 선정 연구 과제
    3. 동북공정 3차년도(2004년) 선정 연구과제
    4. 현재까지 파악된 기초연구 과제에 대한 분석
Ⅲ. 중화인민공화국 동북지역 3대 학술지 분석-동북공정의 주관이 바뀌었다.
    1. 3대 학술지에 대한 기초적 분석
    2. 동북공정과 동북지역 학술지 논문에 관한 종합적인 분석
    3. 역사 침탈 현장에 관한 사례 분석
Ⅳ. 반반세기(25년) 중화인민공화국의 역사 창조 과정으로 통해서 본 전망
    1. 중화인민공화국 역사 만들기의 대 전제 「다민족통일국가론」
    2. 본격적인 국경 전문 연구기관 설립 - 1983년
    3. 1986년부터 티베트지역 전문 연구기관 설립
        - 중국장학연구중심(中国藏学研究中心)
    4. 중화인민공화국 북부 국경(몽골)의 귀속에 대한 본격적인 작업-1990년
    5. 1990년대 중반 이후 고구려 귀속문제에 대한 본격적 연구
    6. 하ㆍ상ㆍ주 단대공정(1996~2000, 9차 경제ㆍ사회 5개년계획)
    7. 중화인민공화국 고대문명 탐원 공정
       (2000~2005, 10차 경제ㆍ사회5개년계획)
    8. 동북공정(東北工程) 실시(2002~2007)
    9. 신강항목(新疆項目) (2005~ )
   10. 중화문명탐험공정과 요하문명론
   11. 반반년 역사 창조에 대한 분석
Ⅴ. 맺는말 - 동북공정에 대한 한국의 대응과 대안

Ⅰ. 머리말

2002년 2월에 시작된 동북공정이 2007년 1월, 5년의 프로젝트가 모두 끝났다.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 산하 사회과학원 중국변강사지연구중심에서 실시한 이 프로젝트는 한국 정부, 국회, 학계, 시민단체, 국민들에게 거국적 저항을 받았고, 이 문제로 중화인민공화국 외교부의 부부장이 두 번이나 한국을 방문하여 합의를 하였다.
이처럼 우여곡절을 겪은 동북공정이 끝난 시점에서 그동안 동북공정은 어떻게 진행되었으며, 동북공정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역사만들기 전체 프로젝트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알아봄으로써 앞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의 역사 침탈에 대한 대응 자료를 제시하는 것이 이 논문의 목적이다.
논문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Ⅱ장에서는 동북공정의 진행과정과 그 성과를 분석한다. Ⅲ장에서는 동북공정이 목표로 하고 있던 연구 주제들을 실질적으로 맡아 진행시킨 길림성사회과학원의『동북사지』와『북방문물』『박물관연구』같은 동북지역 관련 학술지를 분석해서 그 실체를 정확하게 파악하고자 한다. Ⅳ장에서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역사만들기 전체적인 프로젝트를 시기별로 분석함으로써 동북공정이 중화인민공화국의 역사만들기 전체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분명히 하여, 한국의 대응논리 개발을 위한 기본 자료를 제공하고자 한다. 결론에서는 이에 따른 한국의 대응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Ⅴ. 맺는말 - 동북공정에 대한 한국의 대응과 대안

동북공정, 이제 우리는 이 단어를 잊고 대신 ‘중화인민공화국의 역사 침탈’이라고 해야 한다. 그리고 동북공정이 아니라 중화인민공화국의 역사 침탈을 경계하고, 파악하고, 대비하고, 그에 대한 대응 논리와 전략을 개발해야 한다.  
지금까지 본 여러 가지 반반세기 중화인민공화국의 역사창조 작업을 보면, 한국에서 아무리 규탄한다고 해도 역사 침탈을 중단하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결국 동북공정처럼 여러 방법을 동원하여 계속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의 역사 침탈을 강력하게 규탄함과 동시에 우리의 체질을 강화해야 한다. 즉, 어느 때 토론하고, 공동 연구하고, 공동 교과서를 만들더라도 당당하게 내놓을 수 있는 한국적 사관과 논리를 정립하는 것이 시급하다.
지난 5년 간 한국은 효과적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의 역사 침탈을 막아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역사가 과거의 문제가 아니고, 현실의 문제이고, 또 미래의 문제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온 국민이 역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앞으로 국가와 학계를 비롯한 국민 모두가 장기적으로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이다.

1. 첫째 국가에서는 국경 문제, 민족사 문제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장기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다음 두 가지 문제를 반드시 실행해야 한다.

1) 중국 사회과학원, 대만 중앙연구원 같은 대형 연구소를 설립해야 한다
전문적으로 국경 문제와 민족사를 연구하는 대형 연구소를 설립해야 한다. 물론 현재도  비슷한 목적을 가진 단체가 두 개나 있다. 그러나 이 두 단체를 가지고 대처하기에는 그 규모가 너무 작다. 그리고 두 단체의 성격도 분명하지가 않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한 단체는 국경 문제나 민족사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연구 인력을 키워내는 기관으로 하되 지금보다 몇 배 더 큰 규모여야 하고,  다른 한 단체는 그곳에서 나온 연구 성과를 가지고 국가 정책에 활용할 수 있는 전략을 짤 수 있는 단체여야 한다.
현재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이 두 가지 역할을 한 기관이 맡고 있다. 학술적인 연구는 사회과학원에서 맡고, 정책적인 연구는 변강사지연구중심에서 맡고 있다. 사회과학원이 학술적인 연구를 맡고 있는데 그 규모가 한국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1977년 5월 설립된 사회과학원(CASS)은 현재 연구소가 31개, 연구중심이 45개인데, 중요한 연구소를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1. 경제연구소, 2. 공업경제연구소, 3. 재무경제연구소, 4. 농업발전연구소, 5. 수량경제와 기술경제연구소, 6. 인구와 기술경제연구소, 7. 법학연구소, 8. 사회학연구소, 9. 민족연구소, 10. 新聞과 傳播연구소, 11. 맑스레닌주의모택동사상연구소, 12. 철학연구소, 13. 세계종교연구소, 14. 문학연구소, 15. 소수민족문학연구소, 16. 외국문학연구소, 17. 언어연구소, 18. 고고연구소, 19. 역사연구소, 20, 근대사연구소, 21. 세계역사연구소, 22. 세계경제와 정치연구소, 23. 동유럽중앙아세아연구소, 24. 유럽연구소, 25. 서부아세아ㆍ아프리카연구소, 26. 中南美연구소, 27. 亞太연구소, 28. 미국연구소, 29. 일본연구소, 30. 대만연구소, 31. 중화인민공화국변강사지연구중심, 32. 성시발전과 환경연구중심.

한편 사회과학원에는 전체 직원 4200여 명 가운데 교수 요원과 연구원이 3200여 명이나 되는 방대한 조직이다. 사회과학원은 대학이나 마찬가지로 300개에 가까운 학과가 있고, 그 가운데 중점학과가 120개나 된다.
한국은 적어도 민족연구소, 역사연구소, 미국연구소, 일본연구소, 중화인민공화국연구소, 러시아연구소 같은 전문 연구소가 포함된 규모를 갖추어야 한다고 본다.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국경과 민족문제를 정책적으로 연구하는 변강사지연구중심을 사회과학원 안에 두고 있다. 변강사지 연구중심은 직원까지 포함한 전체 인원이 22명밖에 되지 않지만 중요한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변강사지연구중심이 작은 인원 가지고 그처럼 중요한 프로젝트를 해내는 것은 두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마대정(馬大正), 여성(厲聲), 이국강(李國强)처럼 오랫동안 연구와 현장 경험이 있는 국경문제 전문가들이 일관성 있게 계획을 수립하고 진행시키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관계되는 프로젝트의 전문단체들과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고 적극 지원하고, 센터에서는 그 연구 결과를 전략적으로 정책화하는 데만 집중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이처럼 이원화할 필요가 있다. 다만 우리나라에서는 전략을 세우는 기관은 학술기관에 함께 있으면 안 되고 적어도 총리실 아래 있어야 한다. 어느 부처 밑에 있으면 부처 간의 이해 관계 때문에 효과적인 활동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2) 역사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역사교육을 강화하는 것은 국민들에게 역사의식을 강화해 주는 효과가 있지만, 그보다 더 큰 효과는 역사 연구자들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이 취업을 할 수 있어야 전공자가 생길 텐데 대학에서 역사과목을 선택으로 하고, 수능에 역사가 없고, 5급 고시에 역사 과목이 없어지니, 자연히 역사에 소홀히 하게 되고, 전공자들도 갈 자리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역사 연구가 활성화가 될 수 없다.


2. 학계는 대응논리도 중요하지만 한국 자체의 논리 개발이 시급하다
  
1) 새로운 강역ㆍ국경이론 정립이 필요하다
한국인들은 국경의식이 별로 없다. 앞에서 보았지만 중화인민공화국은 20개 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기 때문에 일찍 국경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고 깊은 연구를 한 데 반해 한국의 국경은 삼팔선 하나뿐이었다. 그러나 독도 문제가 터지면서 일본과의 국경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동북공정이 터지면서, 백두산을 비롯한 압록강 두만강의 국경 문제를 인식하게 된다. 한국인들은 거의 중화인민공화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이어도 문제가 터지자 갑자기 한중 간의 국경 문제가 바로 코앞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제 우리도 나름대로 강역과 국경에 관한 이론을 정립할 때다. 독도 문제, 이어도 문제, 백두산 문제, 간도 문제 같은 모든 문제를 정확한 잣대로 측정하여 대응할 수 있는 우리 논리를 개발해야 한다.  

2) 새로운 역사관이 필요하다
우리 나라는 학문적인 자유를 가지고 넓은 연구층을 가지고 있어 연구 능력을 갖추고 있다. 반면에 우리 역사를 하나로 꿸 수 있는 역사관이나 틀(패러다임)이 없다. 미시적인 연구는 많지만 큰 틀을 만드는 연구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적 논리개발, 즉 우리 역사의 틀을 짤 수 있는 이론 개발이 거의 없었다. 우리 사학계는 아직도 식민사관이나 사대주의 사관이 상당부분 지배하고 있어 한국적, 더 나아가 최소한 아시아 전체에 보편타당성이 있는 역사관을 개발하는 데 큰 장애가 되고 있다. 이번 기회에 우리 학자들이 이 부분을 자각하고, 솔직히 인정하고, 새로운 사관 정립과 한국사의 틀을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비록 우리보다 작은 나라지만 몽골은 나름대로 세계사적 왕조를 구성하였다. 현재 울란바타르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몽골의 시대 변천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흉노 → 선비 → 유연 → 돌궐 → 위구르 → 요 → 원 → 몽골공화국

모든 나라가 중화인민공화국 역사와 중복이 되는 왕조들이다. 만일 중화인민공화국의 사관에 동화된다면 몽골의 역사는 하나도 없다.  
지금까지 우리 학계에서 동북공정에 대응했던 논리들을 다시 뒤돌아보고, 이제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역사 침탈에 대한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연구 계획이 필요한 때이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머지않아 중화인민공화국이 만든 변강학이나 민족이론을 번역해서 학습이나 하는 한심한 사태가 벌어질 것이다.  


3. 국회 특위나 시민단체는 일과성 활동에서 전문적이고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활동해야 한다.
국회는 정부에 비해서 대외적으로 자유롭게 외교를 할 수 있고, 정부에 대한 감사 권한도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활동해야 한다. 문제는 특위에 걸맞는 전문가가 없기 때문에 장기적인 연구 검토를 할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특위를 구성하면 동시에 전문가들로 위원회를 구성해서 정규적인 활동을 해야 할 것이다.
시민단체가 갖는 나라 안팎의 힘도 국회보다 결코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시민단체도 대부분 전임 연구진을 둘 수 없기 때문에 전문 단체와 유기적인 연관을 가지고 활동해야 할 것이다. 어떤 이슈가 생기면,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반드시 성과를 분석하는 시스템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