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발해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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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8-12-04 09:56
31_2008.7_양은경_북한(北韓) 불교사원지 출토 고구려(高句麗), 발해(渤海) 불상(佛像)의 출토지 문제와 계승관계
 글쓴이 : 관리자 (202.♡.113.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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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z200472.pdf (3.5M) [10] DATE : 2008-12-04 09:56:46
일반논문 : 북한(北韓) 불교사원지 출토 고구려(高句麗), 발해(渤海) 불상(佛像)의 출토지 문제와 계승관계
양은경 ( Eun Gyeng Yang )

梁銀景        北韓의 불교사원지 출토 高句麗, 渤海 佛像의 출토지 문제와 계승관계        高句麗渤海硏究        31        2008.7        179~210        

Ⅰ. 머리말
Ⅱ. 北韓 내 高句麗, 渤海 寺院址와 佛像의 出土狀況
  1. 高句麗 寺院址와 佛像의 出土狀況
    (1) 平壤일대
       1) 定陵寺址와 불교유물
       2) 淸巖里寺址(金剛寺址)와 불교유물
       3) 淸巖里土城 부근 건물지와 불교유물
       4) 上五里寺址와 불교유물
       5) 平川里寺址와 불교유물
       6) 土城里寺址와 불교유물
  2. 渤海의 寺院址와 佛像의 出土狀況
   (1) 咸鏡南道
       1) 靑海土城 내 寺址와 불교유물
       2) 梧梅里寺址와 불교유물
   (2) 咸鏡北道
Ⅲ. 佛像이 出土된 寺院址의 分布와 都城과의 관계
Ⅳ. 北韓 내 高句麗와 渤海 佛像의 繼承問題
Ⅴ. 맺음말

Ⅰ. 머리말


  지금까지 발견된 고구려 불상은 단독 혹은 삼존상의 배치형식을 이룬 금동제품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전체 높이는 30cm가 되지 않는 예가 대다수이며 북한, 남한, 중국 길림성에서 출토되고 있다. 발해 불상은 단독, 이불병좌상, 삼존상의 금동, 석, 소조 등 다양한 재질의 불상이 발견되었다. 특히 발해의 상경성, 동경성, 중경성에서 집중적으로 출토되었고 크기도 다양하다.
  기존의 고구려 불상에 대한 연구는 북한, 남한에서 출토된 예를 모두 연구한 경우가 많으며, 발해 불상은 상경성, 동경성 출토품에 대한 연구가 중심이 되어 왔다. 또한 기존의 고구려, 발해 불상에 대한 연구는 명문분석과 조각양식에 기초한 편년설정, 중국 불상양식과의 영향관계에 대해 집중되어 왔다. 따라서 불상이 출토된 출토지점의 분포, 출토지에 대한 성격규명, 출토지와 당시 도성과의 관계 등 불상의 출토지 자체에 대한 연구는 미비한 편이다.    
  고구려의 영토는 현재 북한, 남한, 중국에 위치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고구려 멸망 이후 북한, 중국에서는 발해가 건립되어 고구려 문화를 전반적으로 계승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고구려의 마지막 수도로써 불교문화를 찬란하게 꽃피웠던 평양의 불교조각이 이후 북한 영역내의 발해 불상에 어떠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는지에 대한 연구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중국 동북지역의 고구려, 발해 불상의 실물을 접하기 어려운 지금, 북한 내에서 출토된 고구려와 발해 불상에 대한 출토지 정리와 계승문제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는 작업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이에 필자는 우선 북한 내 불교사원지에서 출토된 불교유물에 대해 정리하고자 한다. 다음으로 불상이 출토된 사원지의 분포지에 대해 그 성격과 당시 도성과의 관계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마지막으로 북한 내 불교사원지에서 출토된 고구려, 발해 불상 사이의 전통성과 계승문제에 대해 간략하게 알아보고자 한다.  

Ⅴ.맺음말
 
  이상에서 북한 영역 내의 불교사원지에서 출토된 고구려, 발해 불상에 대해 살펴보았다.
  제Ⅱ장에서는 북한 내에서 불교유물이 출토된 불교사원지에 대해 고구려, 발해로 구분하여 사지의 분포와 불상의 출토상황을 간략하게 정리하였다. 고구려 불상이 출토된 불교사원지는 평양에 집중되어 있었으며 발해 불상은 동해안의 교통중심지인 북청 일대에 소재한 사원지에서 출토되었음을 확인하였다.
  제Ⅲ장에서는 북한 내에서의 고구려, 발해 불상이 출토된 사원지의 분포상황과 당시 도성과의 관계에 대해 고찰하였다. 고구려 사원지의 중심 분포지였던 평양에서는 안학궁 외부, 장안성 내외부에 소재하고 있었다. 즉 이러한 불교사원지는 당시 도성 안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산성보다는 평지성에 집중 분포되어 있었다. 발해 사원지는 당시 5경 중 한 지점으로 추정되는 남경남해부와 그 인근에 위치하고 있다. 즉 북한 내 고구려, 발해 불상이 출토된 사원지는 당시 도성 내외부의 교통요충지에 소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제Ⅳ장에서는 북한 내 고구려, 발해 불상의 계승관계에 대해 살펴보았다. 자료의 영세성으로 인해 논지전개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고구려 멸망 이후 평양지역의 불상양식이 동해안에 소재한 발해 불상의 조성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못하였으나 전통적인 요소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음을 남아있는 유물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A study on  the images of Buddha that were excavated in  Koguryo and Balhae
in Buddhist temples of Northkorea


Yang, Eungyeng


  I studied images of Buddha of Koguryo and Balhae which were excavated on temples in sphere of Northkorea
  I arranged briefly the buddhist temples where the buddhist artifacts were excavated as separating Koguryo and Balhae in Northkorea in Chpater Ⅱ. I also adjusted the distribution of temples and the excavated conditions of images of Buddha. I confirmed that the buddhist temples where the images of Buddha of Koguryo were excavated centered in Pyeongyang, and images of Buddha of Balhae were excavated around Bookchung where is a transport center on the east coast.
  In chapter Ⅲ, I considered the relation between the distribution of temples where the images of Buddha of Koguryo and Balhae were excavated and  a capital city.
  Pyeongyang is the center of Koguryo temples that were the exterior of 안학궁 and the interior and exterior the Ancient city of Chang-An. Namely the buddhist temples were interior of captital city and they were distributed around flat fortress walls than mountain fortress walls.
  Balhae temples were located in Nan-Gyeng where were presumed as a spot of 5경 at that time and nearby. In other words, the temples where the images of Buddha of Koguryo and Balhae were excavated in Northkorea were located in transport center of the interior and exterior of capital city.
  In chapter Ⅳ, I studied the succession relation of the images of Buddha in  Koguryo and Balhae region in Northkorea.
  There were many difficulties for developing  the point of an argument because of poor materials. However the traditional  things on the images of Buddha of Koguryo were still continued even they couldn't exercise their influence directly to the images of Buddha of Balhae around the east coast after the fall of Kogury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