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발해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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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11-12 21:59
37_2010.07_한규철_발해 ‘중경’의 의미
 글쓴이 : 관리자 (202.♡.113.80)
조회 : 16,051  
   발해‘중경’의_의미.pdf (701.2K) [6] DATE : 2010-11-12 21:59:23
한규철, 〈발해 ‘중경’의 의미〉《高句麗渤海硏究》37, 高句麗渤海學會, 155~168 (14)쪽, 2010.07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발해 5경의 설치와‘중경’
Ⅲ. 중경지역의 역사적 성격
Ⅳ. 중경지역 발굴성과를 보는 시각과 과제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초록 
 
 한국어 초록 
  발해는 5경제도를 운영하였는데, 중경이란 상경(북경), 동경, 서경, 남경의 중앙에 위치해서 중경으로 명명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또 다른 면에서 보자면 발해 5경 중에서 지리적으로 가장 중심에 있었다는 의미로 평가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없지 않다. 최근 중경터로 여겨지는 서고성과 그 주변 용두산 고분군에서 출토되는 정효공주묘를 비롯해서 간왕 황비묘의 발굴 등은 중경이 위치적인 면뿐만 아니라 문화와 전통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던 곳이었음을 의미한다.
  발해의 5경제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5경의 설치시기에 대한 문제 뿐만 아니라 천도 시기와 천도 순서 등도 아직 의견이 일치한다고 볼 수 없다. 물론 발해 중경에 대해서도 의견이 많다. 중경은 다른 4경에 비해서 발해의 자주성이 높게 드러났던 곳이었다. 서경이 초기 고구려적 전통이 강한 곳이었다면 고구려말기와 발해초기의 문화적 계승성이 가장 강했던 곳이라고 한다면 중경이었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서고성터의 발굴과 함께 용두산 고분군에서 드러난 간왕의 황비묘 등이 그러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중경지역은 넓은 평원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곳은 크고 작은 하천이 많고 기후가 따뜻하여 벼농사에 적합한 곳이며 농산물이 풍부하였다. 발해의 특산물로 유명한 顯州의 包, 位城의 鐵, 盧州의 쌀 등이 모두 중경 지역었다는 것도 발해가 중경을 중심 도성으로 삼았던 중요한 이유가 아니었던가 한다.
  최근 발해사학계는 온통 용두산고분군의 간왕 황비묘의 공개 등에 관심을 쏟고 있다. 이제나 저제나 발굴된 원래의 모습이 그대로 공개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워낙 기록이 없는 터라 이곳에서 무언가 새로운 발견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화인민공화국 당국은 하루 속히 역사의 진실을 세계에 공개하여야 한다. 몇 년간이나 창고와 일부 인사들만이 정보를 독점하면서 무슨 연구를 하는지모를 일이다. 또다른 역사왜곡이 조작되고 있지 않나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한 관심을 한국 인만의 생각이 아닐 줄로 믿는다. 결코 역사에 부끄러움이 없는 현장의 역사학자와 고고학자이기를 믿고 싶다. 정치의 하부구조로서 역사학이 기능하지 않기를 기대한다. 
 
 영어 초록 
  Balhae kept the O-kyung(Five Capitals) system of Sangkyung(上京), Dongkyung(東京), Seokyung(西京), Namkyung(南京) and Jungkyung(中京). Jungkyung might be named after its location of the country. But, Jungkyung means more than a geographical one. The findings including the grave of Princess Jeonghyo(貞孝公主墓) from Mt. Longtou(龍頭山) of Xigucheong(西古城) and the grave of empress(皇妃墓) of Ganwang(簡王) demonstrate that Jungkyung played a key role in keeping tradition.
  Unlike to the other four capitals, Jungkyung was proud of its national independence.
  While Seokyung had been rooted in the tradition of Koguryo, Jungkyung was strong in its cultural succession of late Koguryo and early Balhae. This has been proven by the various roof-tile relics excavated in Xigucheong site.
  Jungkyung area has not only wide open plain but also various sized rivers and warm weather, which made it possible to engage in rice farming. The famous special products of Balhae region such as burlap bags(包) of Hyunju(顯州), iron(鐵) of Wuisung(位城) and rice of Noju(盧州) were all products from Jungkyung area.
  Recently historical academy of Balhae have almost exclusively paid attention to the disclosure of the grave of empress(皇妃墓) of King Gan(簡王) from the graves of Mr. Longtou. For last a couple of years, Korean academy have been waiting for opening the original excavation spot expecting to a new historical discovery in the place where there was so little record left. The Chinese authority should open the historical truth to the world in order to clear a suspicion of another historical distortion. Here, it is hoped that history does not play as a substructure of politics any more. 
 
 저자 키워드 
 
 발해(渤海), 고구려(高句麗), 오경(五京), 중경(中京), 간왕(簡王), 서고성(西古城), Balhae(Palhae, Parhae, Bohai), Koguryo, O-kyung(Five Capitals), Jungkyung, King Ganwang, Xigucheong s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