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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11-12 22:03
37_2010.07_황보경_4~6세기 북한강 유역 고분의 특징과 축조배경 고찰
 글쓴이 : 관리자 (202.♡.113.80)
조회 : 16,794  
   4~6세기_북한강_유역_고분의_특징과_축조배경_고찰.pdf (1.7M) [8] DATE : 2010-11-12 22:03:24
황보경, 〈4~6세기 북한강 유역 고분의 특징과 축조배경 고찰〉《高句麗渤海硏究》37, 高句麗渤海學會, 77~116 (40)쪽, 2010.07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고분 조사 현황
Ⅲ. 고분의 특징과 출토유물
Ⅳ. 고분의 축조주체와 배경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초록 
 
 한국어 초록 
  4~6세기 한반도는 삼국간에 한강 본류역을 사이에 두고 치열한 점령전을 펼쳤고, 북한강과 남한강 유역도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 북한강 유역은 한강 본류역과 영동지방 사이에 위치하여 삼국의 문화는 물론 말갈이나 낙랑 등의 영향을 받은 자취가 모두 남겨진 곳이다.
  이 글은 북한강 유역에서 조사된 삼국시대 고분의 조사현황을 파악해 보고, 분포와 입지, 구조적 특징, 출토유물 분석 등을 통해 고분의 축조주체와 그 배경, 시기를 살펴 본 것이다.
  고구려는 4세기 말~5세기 초 백제 한성 공략과 신라로의 파병을 계기로 한반도 중남부 지역으로 진출하기 시작하며, 여러 곳에 유적과 유물을 남겨 놓았다. 북한강 유역에서는 석실분들이 대표적인 유구로 가평과 춘천, 홍천에서 모두 확인되었으며, 홍천 역내리나 철정리 같은 유적에서는 주거지나 토기류가 출토되기도 했다. 다만, 석실분에서 출토된 부장품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축조시기를 추정하는데 어려움이 있지만, 최근 한강 본류역에서 조사된 고구려 석실분들과 비교해 본다면 5세기 중반 이후에 축조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고분의 규모가 크지 않고, 벽화 등이 없으며 구조적인 면에서 견고하지 못하다는 점, 위세품 등이 발견되지 않아 피장자들의 신분이 매우 높지는 않았음을 간접적으로 알려준다고 생각된다.
  신라 석실분들은 가평 대성리와 홍천 역내리의 것이 서로 입지와 구조 및 장단비 등에서 차이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부장품 중 부가구연장경호나 고배도 그 양식으로 보아 축조시기가 6세기 후반부터 7세기대에 이루어진 것으로 편년된다. 신라는 551년에 북한강 유역으로 올라와 점령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현재까지는 홍천 역내리 고분군이 대표적 유적으로 인정되지만, 가평 대성리에서 확인된 석실분과 비교해 볼 때 축조수법이 달라 신라인들의 영역화 과정이 단선적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암시해 준다고 생각된다. 또한 피장자들의 신분은 홍천 역내리 고분의 경우 무기류가 눈에 띤다는 점에서 군인일 가능성이 있고, 가평 대성리의 피장자들은 철기를 다루었던 사람들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들 고분들의 축조시기가 6세기 후반대로 편년되는 만큼 춘천이나 가평 지역에서의 추가 조사자료 확보가 기대된다. 
 
 영어 초록 
  4~6 centuries of the Han River between the Korean peninsula in between the three countries I played a tough occupation. North Han River basin is Han River main basin and place that culture of three countries is left all being situated between the rooms clean bright atmosphere winter solstice. The end of the 4th century, Goguryeo, Baekje to attack, and Silla in the wake of the troops began to advance on the Korean peninsula is south-central region.
  North Han River basin of the stone chamber tomb leading to eternal Gapyeong, Chuncheon, Hongcheon were identified in both and Hongcheon Yeoknaeri or cheoljeongri region, remains the same with the housing or vessels has been excavated. Recently surveyed in the Han River stone chamber tomb compare it with Goguryeo in mid 5th century are likely to have been built on.
  But, scale of old tomb is not big and there is no mural and so on and that doing not strong in structural aspect, is thought that relic etc.. are not found and informs indirectly that pre-eldest sons’status was not very high.
  Silla stone chamber tomb quantitys were detected that it is Gapyeong attainment of greatness status and thing of Hongcheon regional status is location and structure and length ratio each other etc. difference. Bugaguyeonjanggyeongho and bitter cup seen as a form construction period from the late 6th century 7th century chronological case is to be made. Silla in 551 North Han River basin is estimated to be occupied come up with.
  So far, recognition sites Hongcheon yeoknaeri tombs, but the representative, identified in Gapyeong Daeseong-ri seoksilbun different when compared with the construction techniques of the segmentation process is Silla has not made a single line as you think it is insignificant.
  Also, pre-eldest sons’social position is possibility that is soldier in point that weapons shine in case of Hongcheon regional state old tomb, and pre-eldest sons of Gapyeong attainment of greatness state are assumed by people who managed armored cavalry.
  However, when they built the tombs of the late 6th century, is recorded as additional survey data in Chuncheon and Gapyeong area is expected to acquire. 
 
 저자 키워드 
 
 고구려, 고분, 남한강, 북한강, 석실분, 신라, 한강 본류역, Koguryeo, old tomb, South Han River, North Han River, stone chamber tomb, Silla, Han River main bas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