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회발표자료 (고구려발해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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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8-09-09 19:04
2001년 4월 고구려산성 답사 보고서 _고구려연구회
 글쓴이 : 관리자 (202.♡.113.28)
조회 : 12,946  
   2001_4(답사보고).hwp (111.4K) [87] DATE : 2008-09-09 19:04:24
2001년 제1차 고구려산성 답사 보고

참가자 : 서길수, 서일범, 정원철

제1일(4월 13일, 금) 서울(09:50) - KE831 - 瀋陽(10:40)
    撫順 高爾山山城(新城) 답사        ♨ 철령 1박
제2일(4월 14일, 토)
    오전 : 鐵嶺縣 催陣堡鄕 靑龍山山城 답사
    오후 : 鐵嶺縣 催陣堡鄕 催陣堡山城        ♨ 철령 1박
제3일(4월 15일, 일)
      오전 : 鐵嶺縣 催陣堡鄕 催陣堡山城
      오후 : 開原 馬家寨山城 - 1480m, 토석혼축
            開原 龍潭寺山城 - 威遠堡鄕 陳家村 남 - 1450m, 토석혼축    ♨ 개원 1박
제4일(4월 16일, 월)
    오전 : 開原 古城子山城 - 八 樹鄕 古城子村 -1.100m, 토석혼축
    오후 : 遼源 龍首山城, 城子山山城(山灣鄕 七一村 3隊), 工農山城(공농향 공농산)
                  ♨ 매하구 1박
제5일(4월 17일, 화)
  釣魚臺古城(城關鄕 自興村 동쪽)
    700m, 3면 절벽, 판축 토성, 현재 300m, 1-1.8m, 문 1, 高臺 1, 돌확
  羅通山城 답사
  釣魚臺城址(輝南縣 板石河鎭 서남 2000m) ♨ 통화 1박
제6일(4월 18일, 수)
  오전 : 本溪 老官山城 : 本溪市 牛心臺鄕 북쪽 3.5㎞ 老官砬子山
  오후 : 太子城                                ♨ 신빈 1박
제7일(4월 19일, 목)
  오전 : 五龍山城
  오후 : 新賓 永陵鎭 古城
        新賓 二道河子 舊老城 ♨ 紅廟子 四道溝 1박
제8일(4월 20일, 금)
  黑溝山城 답사 ♨신빈 1박
제9일(4월 21일, 토)
  오전 : 轉水湖山城 답사
  오후 :
1. 孤脚山山城(?) -왕청문 뒷산
2. 南臺古城: 三 楡樹鎭 南 500m, 장방형 동서 48m, 남북 38m, 토성, 0.5-2.8m
3. 依木樹古城: 三 楡樹鎭 依木樹村
4. 太平溝門古城: 三 楡樹鎭 三 楡樹村 7隊(태평구문) 길가. 188m.
5. 小倒木溝산성(通化縣 英額布鎭 英額布村 북쪽 소도목구산 정상)
6. 英額布山城(2):  ♨ 통화 1박
제10일(4월 22일, 일) 
  覇王朝山城 답사  ♨ 통화 1박
제11일(4월 23일, 월)
오전 : 赤柏松古城: 快大鎭 赤柏松 2隊(漢代의 성, 중국문물지도집), 喇哈城
 1 오후 : 北溝關隘,  城墻砬子山城, 瓦房溝山城  ♨ 집안 1박
제12일(4월 24일, 화)
  환도산성                                    ♨  집안 1박
제13일(4월 25일, 수)
 집안 시내 관광(구리시장과 합류)             
    통화(21:10) - 심양(05:55) ♨ 열차 1박
제14일(4월 26일, 목)
심양(12: 10) - KE860- 서울(14:55)


◈前1일(4월 12일, 목): 심양 도착(가정 교사인 이성일과 동행)(정원철)
14:00 長春(고속버스)→沈陽(18:00)
--한국에는 이미 봄이 왔다고 하지만, 차 창 밖으로 보이는 만주벌판은 아직 황량하기만 하다. 그러나 길게 뻗은 백양나무 가지와 나귀들의 분주한 밭갈이 모습에서 이 곳의 봄도 머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다. 
18:30 東方大厦(심양 북역 옆-7005호) 투숙
--원래 華都賓館에 투숙하려고 하였으나, 이미 3일전에 예약이 다 끝났다고 송 선생님께서 전화를 하셨다. 그래서 가장 가까운 동방빈관으로 숙소를 정하였다. 우리가 타고 왔던 버스회사와 서로 연계가 되어 있어 원래 가격보다 싸게 방을 잡을 수가 있었다.(2인 1실-240원)  19:00∼22:00 저녁식사(설악산 불고기) 및 서탑가 관광
23:30 취침

제1일(4월 13일, 금) 撫順 高爾山山城(新城) 답사(서길수)       

공항 가는 길은 생각보다 한가했다. 인천으로 공항을 옮긴 뒤 처음 출국하는 것이기 때문에 시간을 충분하게 잡아 일찍 도착하였다. 우선 장기주차장에다 차를 주차시켰다. 4월 말까지는 무료이기 때문에 다음에 다시 차를 가져오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직 완공 안 된 교통센터를 이리 저리 찾아 한참만에 출국장에 도착하여 2시간 정도 공항 전체를 샅샅이 다니며 답사를 마쳤다.
탑승 수속이 늦은 손님이 있어 40분쯤 출발이 늦어져 비행기는 예정시간 보다 늦게 11시 15분 심양 도선 국제공항에 착륙하였다. 이번 답사에 합류할 서일범 박사와 정원철 군이 이미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다. 준비한 차는 독일 폭스바겐에서 투자한 중국 공장에서 생산한 제다(捷達)이고 운전사는 47세의 김태용이라는 조선족이다. 이번 답사에서는 지난번까지 송용호 군이 담당했던 일정 기록과 회계를 정원철 군이 맡고, 답사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서 박사가 맡기로 했다. 
자, 이제 답사 출발이다. 오늘은 먼저 고구려 때 신성이라고 비정되고 있는 무순의 고이산산성을 답사한다. '무순 시내를 거치면 복잡하니 새로 난 외곽도로로 가서 철령에서 들어오는 길과 만나는 지점에서 무순으로 들어가면 바로 고이산성 북문이다"고 기사에게 일러주었다. 심양에서 운전한 운전사들은 시내 지리는 알아도 시내를 벗어나면 길을 잘 모르기 때문에 하나하나 일러주어야 한다. 그런데 기사가 차를 몰로 심양 시내로 들어와 버렸다. '철령으로 간다'고 들은 것이다. 철령으로 간다고 해도 시내로 들어오면 안 되고 심양시 둘레를 도는 환상도로를 통해 고속도로로 빠져야 하는데, 이 운전사는 길을 잘 모르는 기사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심양시에서 시내버스만 20년 했다고 한다.
덕분에 심양의 조선족 거리인 서탑에 가서 점심식사를 하고 무순으로 떠났다. 이번에도 고속도로를 따라가지 않고 구길로 가다가 고만(高灣)이라는 곳에서 고속도로와 이어지는 우회도로로 들어섰다. 고속도로처럼 잘 닦인 길을 달리다 처음으로 나가는 길이 나오는데 여기가 바로 철령에서 무순으로 들어가는 길과 만나는 곳이다. 거창한 인터체인지가 없고 옛날 호남고속도로처럼 바로 길로 들어서면 마금(馬金)이란 마을인데 여기서 보면 고이산성 북벽이 바라다 보인다. 큰 길을 따라 고개를 오르다 보면 가장 높은 재가 나오는데 바로 이곳이 고이산성의 북문이다.
우리는 북문에서 차를 내려 북벽의 동쪽부터 답사하기로 하였다. 성벽에 올라 북문을 살펴보니 서쪽에 북벽이 안으로 쑥 들어오고 동쪽 북벽이 밖으로 나가 어긋문을 만들면서 옹성모양을 만든 생김새가 뚜렷하게 들어온다. 길을 내기 위해 산 절벽을 깊이 갈라 파 내버려 원래의 모습은 알 수 없지만 지형을 이용해 안으로 오목하게 한 형태는 쉽게 분별할 수 있다.
북벽을 동쪽으로 따라 가는 동안 한 지점에 마치 시굴트렌치를 파기 시작한 것처럼 파헤쳐진 곳이 있어 토석혼축한 성벽의 단층을 볼 수 있었다. 까만 흙이 있는 지층은 나중에 보축한 것으로 보인다. 하나 특이한 것은 성벽 밖으로 계속해서 마도가 나 있는데 그 용도를 자세하게 알 수가 없다.
동북 모서리부터 동문까지는 경사는 완만하지만 계속 내려간다. 동벽을 거의 다 내려가면 동문터로 보이는 터진 곳이 있다. 이곳은 이미 일제시대 때 발굴을 한 곳인데 다시 묻혀버려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성안에서 동벽 밖에 있는 마을로 넘어가는 길로 쓰이고 있다. 마침 주민들이 이곳에서 흙을 파간 자리에 판축한 모습이 뚜렷하게 남아있고 주위에는 고구려의 붉은 기와가 많이 널려있어 이곳이 성문이고 문루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동문에서 조금만 남쪽으로 오르면 동남 모서리가 나온다. 이곳에서는 성벽이 2중으로 되어있는 곳이 있는데, 이 성벽이 외벽으로 이어져 서성 문 쪽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 혹시 요금시대 축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성 남벽을 따라 내려오니 바로 마을이다. 남문은 거의 훼손되어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다. 서쪽 벽에 속이 드러난 곳이 있어 살펴보았으나 판축 형태를 찾아보기 힘들다. 
서벽으로 올라갔다. 잘 다듬은 길을 따라 올라가다 마지막 집 대문에서 왼쪽으로 꺾어 조금 올라가니 바로 서벽이 나온다. 높이 1∼1.5m 성벽이 분명하게 이어지는데 서문으로 보이는 지점에는 3m 정도로 잘 남아 있다. 이 지점 안쪽에 발굴한 흔적이 보이고 고구려 기와조각이 많이 널려 있다. 계속 올라가니 비탈이 심한 곳이 나오고 한가롭게 소를 모는 농부를 만났다.
"고려성(高麗城, 고구려 성)이라고 한다."
여기서는 이 곳을 무슨 성이라고 부르느냐고 물었더니 서슴없이 대답한다. 우리는 사진 찍고 거리 재고 작업하느라 바쁜데 심심한 목동 아저씨는 한사코 말을 걸어온다.
"점장대(点將臺, 우리의 장대)"
이 산 최고봉인 장군봉을 가리키며 묻지 않는 것도 이야기 해 준다. 장군봉에 올라 북벽을 타고 내려오는데 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기울고 있다. 북벽에서 북쪽으로 달아냈다는 북위성(北衛城)은 이제 소나무밭이 되어버렸다.
철령에 도착하니 이미 컴컴해졌다. 지나다가 조중(朝中)불고기라는 간판이 보여 들어가 식사하고 건너편에 있는 새 호텔에 들어가 짐을 풀었다.

태국식 뼈다귀 안마가 무엇이요?

하루종일 부는 요동반도의 바람 때문에 뒤집어 쓴 먼지를 씻기 위해 사우나를 찾았다. 이 호텔에서는 아예 따스한 물이 나오지 않는다. 목욕은 사우나에 가서 하라는 것이다. 중국에는 몇 년 사이에 사우나가 우리나라 다방보다 많이 생겨 '목욕 안 하는 중국인'은 이제 옛말이 되어버렸다. 그 동안 운동을 전혀 안 하다 갑자기 매일 등산을 해야 하는 것이 부담도 되고, 안마 값이 싸기 때문에 이번 답사에는 몸을 풀어가면서 하려고 마음먹었다.
普浴 5元, 高 浴 10元, 休閑浴 35元, 龍浴 55元 泰式松骨 80元
호텔 밖에 걸린 프랑카드에 적힌 선전문구이다. 보통이 5원, 고급이 10원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그 다음부터는 내용을 알 수 있다. 선전은 거창한데 들어가 보니 샤워기는 단 4개, 두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탕이 하나, 때밀이 의자가 가운데를 차지해 목욕할 곳이 없을 정도로 옹색한 곳이다. 적당히 사우나를 마치고 휴게실에 갔더니 뜻밖에 탕보다 더 넓고 시설도 좋다. 이곳은 목욕하는 곳이 아니라 안마를 하여 돈을 버는 곳이다. 35원짜리는 발안마, 55원짜리는 전신안마, 뭐 이런 것인데 태국식 소나무 뼈다귀(松骨) 안마는 자신들도 아직 모른다고 한다.
발안마를 하고 방에 돌아오니 10시가 넘었다. 불을 때지 않아 추위를 느끼는 방에서 담요를 하나 더 덮고 바로 취침

♨ 철령 1박

◈제1일(4월 13일, 금): 高爾山城(정원철)
06:30 기상
07:30 서일범 교수와 운전기사 상면
  (운전기사: 金太勇, 심양거주 조선족, 전화 024-86122443 / 차량: 京CG2561, 97년형 제다)
08:30∼08:50 아침식사(서탑가 초원정식당)
09:40 도선공항으로 출발
10:10 고속도로 진입
  -안전벨트 미착용으로 벌금을 물었다.
10:25 도선공항 도착
11:35 서길수 교수님과 일행 합류
11:40 다시 서탑가로 출발
12:20∼12:40 점심식사(초원정 식당-우거지갈비탕, 설렁탕)
12:50 무순 고이산성으로 출발
  --오늘 낮 기온이 11。라고 하나 몹시 덥게 느껴진다. 출발하면서 날씨가 흐려지기 시작한다. 고속도로가 아닌 舊 길로 가고 있기 때문에 도로사정은 좋지 못하다. 비포장길이라 좁고 울퉁불퉁하다.
13:45 三家子 경유
13:50 撫順市界에 진입
13:55 高 에 도착
  --그러나 산성으로 진입하는 도로를 찾지 못하여 高 을 돌아 나와 새로 만든 도로로 진입하였다.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도로 상태는 아주 좋고, 도로를 이용하는 차도 별로 없다. 그러나 도로의 이정표라고는 눈을 씻고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다. 어디로 통하는 도로인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14:15 철령-신빈-무순의 갈림길에 도착
14:25 고이산산성의 동성(북문)에 도착
  --북문은 도로와 연결이 되어있는데 도로는 산성을 관통하여 무순으로 이어진다. 
  동성의 북문에서 시작하여 북벽-동벽-남벽-서벽-북벽의 순으로 답사하기로 하였다.
15:10 동문 도착
  --누군가가 성벽을 조사하고 간 모양이다. 덕분에 잔 자갈과 흙을 섞어 판축한 흔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와편을 일부 수습하였다.
16:20 남문 도착
16:30 서벽상에 도착
  --서문 주위에 건물터가 확인이 된다. 그러나 고구려 기와와 함께 후대의 기와와 벽돌도 동시에 발견된다.
17:20 서벽의 망대에 도착
  --철령으로 가는 길과 무순시, 성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17:40 북문 도착
  --동성을 일주하여 다시 북문에 도착하였다.
17:55 鐵嶺으로 출발
  --會元, 橫道河子, 李千戶 경유
18:40 鐵嶺 도착
19:00∼19:30 저녁식사(조선족 불고기- 불고기)
19:45 金葉酒店(503호, 605호) 투숙
20:15∼22:30 사우나 및 휴식
24:00 취침

제2일(4월 14일, 토) 오전 : 鐵嶺縣 催陣堡鄕 靑龍山山城
 
5시 반 기상, 6시 반까지 기록.
죽과 만두로 아침식사를 하고 어제 왔던 길을 따라 청룡산고성으로 갔다. 장누자촌(張樓子村) 가운데를 지나 밭으로 통하는 뒷길로 나오니 바로 산성이 보인다. 93년 왔을 때는 신발을 벗고 강을 건넜는데 이제 보를 막아 쉽게 건널 수 있다.
북문을 관찰하고 동벽부터 답사하였다. 북문은 옹성 형태를 갖추었으며 밖으로 다시 큰 흙담(높이가 높아 언덕처럼 보인다)을 만들어 방어하는 특이한 모습이다. 동벽은 주로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기 때문에 특별히 조사할만한 곳이 없다.

남벽에서 시간이 많이 걸렸다.
* 수구문 - 맨 아래 2∼3단은 잘 다듬은 돌로 기초를 하고 그 위에 토석혼축으로 쌓은 단면이 나타나 있다. 속채움은 큰돌들을 아무렇게나 섞었지만 겉쪽은 강돌을 많이 썼다. * 남문 - 북문처럼 옹성 밖에 흙담을 보강하였다. * 단면 - 주민들이 흙을 파가 단면을 알 수 있는 곳이 두 곳 있다. 고구려 때 기와조각이 많이 박혀 있는 것으로 보아 고구려 때나 그 뒤 덧쌓은 것으로 보인다. 판축 자리는 분명하지 않다. * 가는 곳마다 찔러대는 가시나무 - 현지인들은 작은 것은 그냥 가시나무라고 하는데, 원 이름은 츄즈나무(?木)라고 하고 크면 가구용 목재로 쓰인다고 한다.

가장 높은 망대에서 새참을 먹으며 휴식하였다. 망대에서 조금 가면 서남모서리다.
* 각대는 상당히 품을 들여 인공으로 쌓은 자리가 뚜렷하다. * 서벽은 아주 잘 남아있고, 안쪽으로 마도가 잘 나 있어 나무만 좀 정리하면 당장 자동차가 달릴 수 있을 정도이다. * 서문도 꽤 잘 남아있다(어긋문). * 보고서에는 성 가운데 있는 능선을 중심으로 동성과 서성으로 나누고 있는데 하나의 성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 서벽 북단에 수구문이 있는데 너무 좁아서 어떻게 수구문 역할을 했는지 궁금하다. 그러나 이 수구문이 아니면 물이 빠져나갈 곳이 없다.

서북모서리에도 각대를 쌓았다. "고려성이라고 하고, 성자산이라고도 한다" 각대에서 만난 양치기 할아버지의 말이다. 상대적으로 지세가 낮은 곳에 위치한 북문은 여러 가지 공법을 써서 보강하였다. 먼저 옹성, 그리고 전체 성벽을 안으로 들여쌓아 나팔꼴로 만들었고, 다시 밖으로 흙담(土壘)를 쌓아 보강하였다. 옹성문으로 내려가니 다시 한번 행운, 아마 발굴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성문의 기초를 파 놓았는데 남쪽 수구문처럼 맨 아래 기초는 다듬은 돌로 몇 단을 쌓은 것이 드러나 있다. 북쪽 수구문에서도 그런 흔적이 보인다. 수구문을 조사하고 나오다 돌확을 발견하였다. 수구문 밖에 나와있지만 원래 수구문의 돌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오래 사용에 밑이 구멍 뚫린 돌확이다. 
벌써 1시가 다 되었다. 간단히 조사한다고 했는데 뜻밖에 여러 가지 새로운 축성법이 나와 신간이 많이 걸린 것이다.

오후 : 催陣堡鄕 催陣堡山城   

최진보에서 낮밥을 먹고 바로 최진보산성으로 향했다. 범하를 건널 것을 걱정했는데 차가 가볍게 하천을 건너 산성 입국까지 들어간다. 우선 서남 모서리쪽으로 올라 시작하기로 하였다. 소나무 숲에서 나무를 해 내리는 길이 있어 쉽게 접근할 수가 있었다. 남벽 서단에 돌로 쌓은 성벽 흔적이 있는데 속쌓기만 약간 남아있을 뿐 거의 무너져버렸다.
서남모서리에 서니 긴 서벽과 높은 서북 각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93년에는 이쪽 서벽을 따라 내려왔는데 거슬러 올라가려니 몹시 힘이 든다. 다행이 북단 높은 곳에 석벽이 겉쌓기까지 남아있는 곳이 있어 관찰하면서 가니 힘이 덜 들었다.
이번에도 바람의 위력은 대단했다. 카메라가 흔들려 촬영하기가 힘들 정도이고 아무리 꽉 눌러 써도 모자가 몇 번이나 날아갔다. 16㎜ 렌즈는 뚜껑이 있어 덜했지만 28∼80㎜ 렌즈는 찍을 때마다 렌즈를 닦느라 작업시간이 많이 걸렸다. 비디오카메라는 다리를 놓았는데도 전체가 흔들린다. 이곳은 봄가뭄이 심하고 옥수수 심으려고 밭을 갈아놓아서인지 회오리바람에 먼지들이 날아올라 마치 심한 황사현상이 일어난 것처럼 황토흙이 하늘을 뒤덮어 해가 빛을 잃어버릴 정도이다. 처음 보는 일이다. 남문을 망원으로 조감해서 찍으려는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서북 각대는 급한 경사 위에 계단처럼 돌을 쌓아 만든 특이한 형태이다. 자세하게 잴 수 없어 아쉽다. 북벽을 부지런히 내려온다. 북벽 서단에 석축이 비교적 높이 남았지만 속쌓기만 남아있고 겉쌓기는 모두 떨어져 나가버렸다.

해바라기씨를 계속 까먹었더니 밥맛이 없다. 어제 너무 추워서 고생했기 때문에 좀 더 좋은 호텔을 찾아갔다. 운동을 전혀 안 하다가 갑자기 격렬한 운동을 하니 허리가 아프다. 어제도 그렇고 오늘만 8시간을 걸으니 견디기 힘든 모양이다. 사우나에서 안마까지 하고 돌아왔는데 짙은 차를 너무 많이 마셔 그런지 잠이 오지 않아 오늘은 기록을 하고 잔다. 1시가 다 되어 간다. 

♨ 철령 1박

◈제2일(4월 14일, 금): 靑龍山山城, 催陣堡山城(정원철)
06:00 기상
  --눈을 뜨니 서일범 교수님께서 이미 일어나 계신다. 창 밖을 보니 하늘은 맑으나 바람이 세차게 분다. 요동벌 바람엔 아직 겨울의 기운이 실려 있다.
어제 철령의 낮 기온이 18。라는 일기예보를 보았으나 바람 부는 것을 보니 체감온도는 많이 떨어질 것 같다. 자면서 한기를 느꼈는데, 평소 천식이 심한 서일범 교수님께서 기침을 하시는 것을 보니 걱정이 된다.
07:10∼25 아침식사(偉利飯店-죽, 만두)
07:25 청룡산산성으로 출발
08:20 張樓子村 도착
08:30 청룡산성의 동벽에서부터 (남벽-서벽-북벽 순으로) 답사 시작
  -- 성 바로 아래에서 만난 아저씨는 이 성을 '高麗城'이라고 한다.
서길수 교수님은 동성, 서성이 하나일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성안은 아주 편평하고 완만하다. 성의 동벽은 자연절벽으로 되어 있고 汎河가 성벽과 나란히 흐른다.
09:25 동쪽으로 최진보산성이 보인다. 
09:40 수구문(남벽) 도착
  --이 성이 토석혼축성임을 잘 알 수 있게 하는 곳이다. 먼저 길이 45∼65×15∼25cm정도의 다듬은 돌로 (주위에서는 최하단석으로 추정되는 110×30의 큰 가공돌도 발견된다.) 2∼3단 먼저 쌓고, 그 위를 작은 돌과 강돌을 섞어서 쌓았다. 그러나 정연하게 쌓은 것은 아니다.  현재 잔존 높이가 350cm가량이다. 한편 주위에서는 기와편과 토기편이 발견된다. 
10:10 남문 도착
  --남문 주위에서도 다듬은 돌, 강돌, 막돌 등이 널려 있는데, 100×25cm의 가공한 돌도 눈에 띤다. 역시 기와편이 발견된다.  남문에서 서쪽으로 88m 올라가면 성벽이 일부 무너진 부분이 있는데 성벽의 상부에서 아래로 70cm지점에서 붉은 기와편이 박혀있는 것이 발견된다. 뒤에 補築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남벽의 중간지점에서부터 서쪽 모서리까지는 성벽이 잘 남아있다.
11:20 남벽상의 豁口에 도착하였는데 문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하겠다. 여기서도 토석혼축의 모습이 확인된다. 
11:25 성내의 가장 높은 남서 모서리에 도착
  --각대가 잘 남아있는데 가로, 세로 약10m의 크기이다. 각대 아래에도 인위적으로 층층이 계단식으로 평평하게 다듬었다. 서벽 안쪽으로는 마도가 잘 남아있는데 자동차 2대는 지나갈 수 있는 폭이다.
11:40 서문 도착
  --어긋문의 형태이다.
11:50 서벽의 수구문(추정) 도착
  --잔 자갈 등을 섞어 쌓았는데 그 벽에는 토기들이 박혀 있다.
11:55 북서모서리에 도착
  --할아버지 한 분을 만나 인터뷰를 하였다. 자신은 이 곳을 '山城子'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전 노인들은 '高麗城'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한편 성을 동성과 서성으로 나누는 능선에는 성을 쌓은 흔적이 없다고 하는데, 역시 성안의 자연능선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서길수 교수님도 말씀하셨던 것처럼 동성과 서성의 구분은 잘못된 것 같다. 
12:10 북문 도착
  --지금 발굴이 진행되고 있는지 성벽의 일부를 절개한 면을 확인할 수 있다. 먼저 석축한 다음에 혼축하여 쌓았다.
12:20 수구문(북벽) 도착
  --돌지름 55cm, 구멍지름 20cm, 깊이 25cm의 돌확 발견
12:45 청룡산성 답사 종료
13:05 최진보향 도착
13:10∼50 점심식사(鴻鵑酒家- 凍豆腐)
14:15 최진보산성 수구문 도착
  --갑자기 황사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들판이 온통 황사먼지로 뒤덮였다. 답사하기에 좋지 못한 조건이다. 
14:55 남벽(남문의 서쪽벽)의 서쪽 부분 도착
  --남벽의 서쪽 부분은 남서모서리까지 성벽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반편 동편은 성벽의 흔적이 없다. 그리고 남은 성벽은 그렇게 정연하게 쌓은 것은 아니다. 서벽은 남서모서리에서 약 500m까지는 토축의 모습이나 이후로 북서모서리까지 석축이다. 겉쌓기가 남은 부분은 5군데 정도로 2∼6단 정도 남아있으며 들여쌓기를 하였다. 겉쌓기한 돌의 크기는 25∼45×15∼25cm이며 사다리꼴형의 성돌이다. 겉쌓기한 부분을 기준으로 성벽의 폭을 재보니 약 7m나 된다. 현재 제대로 남은 부분은 적지만, 남은 부분은 매우 단단하고 정연하게 쌓았다.
17:10 서북모서리 도착
  -- 북벽에서 양면쌓기한 것이 확인된다. 2m의 폭으로 약 50m가량 남아 있는데 겉쌓기한 부분보다 안쌓기한 부분이 더 잘 남아 있다.
17:35 북벽의 서단부까지만 답사하고 내려왔다.
17:50 답사 출발점으로 돌아가는 중 길가에서 돌확 발견
18:30 다시 수구문 도착, 철령으로 출발
19:05 철령도착
19:20∼50 저녁식사(대한 불고기-돌솥비빔밥)
19:00 金都賓館 투숙(502호, 506호)
  --철령역 앞에 있는데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깨끗하다. 
24:00 취침

제3일(4월 15일, 일) ◎ 오전 : 鐵嶺縣 催陣堡鄕 催陣堡山城

늦게 잤으나 4시에 잠이 깬다. 오늘 올라갈 산성 자료를 검토하였다.
오늘은 다시 최진보산성을 오르기로 한다. 93년도에도 서쪽만 돌았는데 이번에도 다시 서쪽만 돌았으니 반드시 동쪽을 답사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최진보 쪽으로 가지 않고 산성 북쪽으로 올라가 보기로 하였다. 어제 오면서 입구를 알아두었기 때문에 최진보로 가다가 왼쪽으로 꺾어 들어갔다. 비포장도로를 따라 팔가자촌(八家子村)에 이르니 남쪽에서 볼 때는 그렇게 높아 보이던 산성 북벽이 아주 나지막한 산봉우리로 다가온다. 차가 바로 북문 앞까지 갈 수 있다. 차는 남문에서 기다리도록 하였다.
북벽 동쪽은 평탄하다. 얼마 안가 잘 쌓은 망대가 나오는데 여기서부터 동북모서리까지 축성법을 알 수 있는 석벽이 많이 남아있다. 특히 동북 각대 가까운 곳에는 최진보산성에서 가장 완벽한 성벽을 발견하였다. 서벽 북단에서 아주 빈약한 겉쌓기를 보고 가장 좋은 상태라고 생각했다가 이곳을 보니 피로가 확 가셨다. 동북모서리도 아주 넓은 곳에 잘 쌓은 구조를 확인할 수 있었다.
동북모서리에서 동벽으로 이어지는 북단은 그냥 걸어서 내려오는 것도 아슬아슬할 정도로 경사가 급하다. 이런 곳에다 어떻게 성벽을 쌓았을까!  절로 감탄이 나온다. 흔적만 남고 성벽은 남아있지 않았다. 동벽도 곳곳에 성벽이 남아있지만 겉쌓기가 남아있는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동벽 남단과 남벽은 절벽이 높아 성을 쌓지 않았다. 남벽을 지나 남문을 확인하였다. 남문에 와 있는 차를 타고 최진보에 가서 어제 갔던 식당에서 동두부탕(凍豆腐湯)을 먹었다. 얼린 두부와 채소를 넣어 끓인 국인데 우리 입맛에 맞아 다시 찾은 것이다.   

 ◎ 오후 : 開原 馬家寨山城 - 1480m, 토석혼축

마가채 고구려산성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바로 그 산성 안에 마가채중학교가 있기 때문이다. 옛날 고구려 산성이 지금도 레이더 기지나 탄약고 같이 중요한 군사기지로 사용되는 것을 많이 보아왔지만 학교로 쓰이는 것은 처음 본다.
서북모서리에서 북벽을 조금 더 가서 가장 높은 봉우리에 올라가 보니 성 안팎이 한 눈에 들어온다. 성은 마치 화산 분화구처럼 완벽하게 둘려 쌓인 산속에 감추어져 있고 남문쪽에는 높이 둑처럼 높은 성벽을 쌓았다. 산성 남쪽에는 마가채마을이 이어져 있고 동쪽에는 큰 댐이 있어 경치도 아름답다. 내려오다 학교 뒤 밭에서 고구려 것이 분명한 노끈무늬 붉은 기와를 주웠다. 이 기와만 나오면 중국 학자들도 무조건 고구려 산성으로 인정하는 유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 입구에 분명하게 [마가채 고구려 산성]이란 표지석을 세워 놓았다. 교문을 나오다 무너진 남벽에서 분명한 판축형태를 알 수 있는 단면을 발견하고 촬영을 하였다.
서둘러서 다음 목적지로 달린다. 원래 오늘 오전에 올라간 최진보산성은 어제 마치려고 계획했던 것인데 어제 청룡산고성에서 시간이 많이 걸려 오늘 최진보산성을 다시 오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일정은 차질이 불가피할 것 같다. 우선 고성자산성으로 간다. 지난 93년 계획에 넣었다가 서풍 성자산산성에서 시간이 많이 걸려 못 같기 때문에 이미 한 번 가 본 용담사산성은 못 가더라도 고성자산성을 꼭 가보아야 한다. 그런데 또 문제가 생겼다. 도로 공사중인 곳에 큰 트럭이 고장이 나 서있어 언제 길이 뚫릴지 모른다는 것이다. 할 수 없이 먼길로 돌아서 가는데 벌써 5시가 다 된다. 고성자산성은 오늘도 불가능한 것이다. 할 수 없이 빼기로 했던 용담사로 목적지를 바꾸었다.

◎ 開原 龍潭寺山城 - 威遠堡鄕 陳家村 남 - 1450m, 토석혼축

93년 올 때에 비하여 참 많이 변했다. 이제 완전히 관광지가 되고 큰 사찰을 짓느라 성안에 공사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난다. 93년에 답사하다가 성벽 길 위에 큰 구렁이가 길을 가로막아 중도에 내려왔던 곳이다. 이번에는 거꾸로 돌기 시작하였다. 해가 지려면 아직 1시간쯤 시간이 있으나 워낙 수풀이 무성하게 우거져 사진 찍기가 쉽지 않다. 성벽 안팎으로 나 있는 마도, 철성 같은 모서리 축성법 같은 것을 확인하며 전체 성을 완전히 한바퀴 돌고 내려오니 이미 6시 반이다.
오늘 못 간 고성자산성 있는 곳까지 가서 자려고 생각했는데 진(鎭) 소재지라 잘 곳이 없을 수 있고 오늘 최진보 답사 때 땀을 많이 흘려 목욕을 해야 하기 때문에 개원으로 가서 자고 아침 일찍 출발하기로 하였다. 작년에 잤던 개원빈관에 짐을 풀고 만두집에서 저녁식사 한 뒤 바로 길가에 열린 야시장에서 과일과 비상식량인 해바라기씨를 샀다.
      ♨ 개원 1박

◈제3일(4월 15일, 일)-催陣堡山城, 馬家寨山城, 龍潭寺山城 (정원철)
05:50 기상
  --오랜만에 무거운 짐을 들고 다녔더니 어깨가 뻐근하다. 창 밖의 날씨가 참 좋다. 어제와 같은 바람도 황사도 아직까지는 없다.
07:00∼25 아침식사(偉利飯店-죽, 만두)
08:00 下八家村경유, 上八家村 도착
  --철령→최진보산성 북문까지 가는 길(철령에서 출발하여 무순방면으로 약 11km를 가다보면 왼쪽으로 비포장도로가 하나 나 있다. 이 도로로 접어들어 老官臺를 지나면 이내 하팔가촌, 상팔가촌에 도착할 수 있다. 산성의 북벽에서 내려다보이는 마을이 바로 하, 상팔가촌이다.)
08:30 북벽의 동단부로 오르기 시작
  --어제 답사하지 못한 산성의 반쪽을 답사하는데, 북벽의 동단부로 올라 북벽-동벽-남벽 순으로 답사를 하게 된다. 
09:15 북벽상의 모서리 도착
  --모서리부분은 凸城이다. 철성의 크기는 동서 68·72m, 남북 22m가량 된다. 잔고는 1∼1.5m, 폭은 약 2m정도이다. 한편 이 모서리에서 약 170m가량 오면 석축이 시작되는데 동북쪽에 겉쌓기한 흔적이 잘 남아있다. 평균적으로 5∼6단, 많은 남은 곳은 11단까지 남아있다. 잔고는 4∼4.5m, 너비 3∼3.5m, 들여쌓기 5cm이며 성돌은 20∼40×15∼20cm의 크기이다. 
11:00 남동모서리 도착
  --동벽 답사. 안으로 마도가 나있는데 폭이 약 1.5m정도 된다.
11:15 남쪽 모서리 도착
  -- 여기도 마찬가지로 석축이다. 그러나 동벽 끝에 이르면 석축이 끝난다. 그리고 외형상 토축이 나타나는데 잔고는 약 1m정도이다. 그러나 간간히 발견되는 막돌로 토석혼축임이 추정된다.
11:50 수구문(남벽) 도착
  -- 남벽을 따라 성 입구에 다시 도착하였다. 어제 찾지 못하였던 남문과 암문을 찾았는데, 암문은 확인이 가능하며, 남문도 위치를 확인하였으나 주위에 나무가 많아서 제대로 알아보기가 힘들다. 
12:20 최진보산성 답사 완료
12:30∼13:10 점심식사(鴻鵑酒家-凍豆腐)
  -- 어제 점심과 같이 凍豆腐와 몇 가지 찬을 시켰다. 이 집의 凍豆腐는 참 맛있다.
13:10 개원 마가채산성으로 출발
13:45 철령경유
14:35 마가채 도착
  --평정보-산두보-단산구 등 경유하여 마가채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평정보를 경유 中固까지 왔다가 마가채로 가는 도로가 훨씬 양호하다. 동네 가게의 주인 아저씨를 동행하고 산성으로 향하였다. 동네의 사람들은 마가채 산성을 '高句麗山城'이라고 이야기한다. 산성은 동네에서 유일한 기독교회가 있는 골목으로 들어가면 되는데, 성안에는 마가채 중학이 자리하고 있다.
14:45 마가채산성 앞(서문) 도착
14:45∼15:40 마가채산성 답사
  --서문을 통과하여 서벽쪽으로 답사를 시작하였다. 서벽은 현재 폭 약 1m내외, 잔존높이 2m의 성벽이 남아있는데, 간간히 토석혼축임을 알 수 있는 돌들이 발견된다. 서벽의 정상에 올라보니 성안 가운데에 마가채 중학교가 들어서 있고, 운동장 앞에는 저수지가 조성되어 있다. 그리고 학교의 정문이 바로 성문이 있던 위치이다. 북서모서리의 정상부까지 답사하고 내려왔다. 학교의 서쪽 빈터에서 몇 점의 기와편을 수습하였다. 성문터의 우측편의 성벽은 판축한 흔적이 뚜렷하였다. 판축한 상태와 수치를 확인하니 가지고 있는 자료와 크게 다르지 않다. 
15:50 용담사산성으로 출발(마가채-중고-開原-淸河-楊木林子-威遠堡-용담사산성)
16:20 개원 경유
16:30 청하 경유
16:40 양목림자 경유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길이 막힌다. 큰 트럭이 사고가 났다고 하는데 도로가 언제 뚫릴지 모른다고 한다. 다시 양목림자로 돌아가 위원보로 가는 다른 길을 찾아야 했다.
17:15 위원보 도착
17:30 용담사산성 도착
17:30∼18:35 용담사산성 답사
  --입구에서부터 산성이 제대로 남아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산성안은 공사가 한창이다. 용담사의 남벽에 이르자 성벽의 안팎으로 마도가 확인된다. 이는 고이산성과 최진보산성의 북벽에서도 발견되는 것이었다. 서벽은 상태가 아주 양호한데 평균 높이가 약 5-6m에 이르고, 가장 높은 곳은 무려 8∼9m에 이르는 곳도 있다. 기본적으로 토석혼축이다. 동남모서리는 철성형식이다. 
18:40 개원으로 출발
19:10 개원도착
19:35 개원빈관 투숙
19:50 저녁식사(東方餃子城-만두)
22:10 취침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제4일(4월 16일, 월) ◎  오전 : 開原 古城子山城 - 八 樹鄕 古城子村 -1.100m,

엊저녁 정말 세상 모르게 잘 잤다. 아침 5시쯤 일어나 어제 답사를 간단히 메모하고 5시 반쯤 서박사를 깨웠다. 팔과수진까지는 길이 좋지 않아 서둘러야 했기 때문이다. 93년에도 못 가고 어제도 못 갔기 때문에 오늘은 일찍부터 성의를 보였다. 팔과수에 가니 작은 여사(旅社)도 있어 어제 여기 와서 잤어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식사를 마치고 어렵지 않게 산성을 찾았다.
차가 산성 안으로 들어갈 정도로 정문인 서문 쪽으로 길이 잘 나 있다. 마침 옥수수를 심기 위해 갈아놓은 밭에서는 고구려 기와조각이 무더기로 널려 있고 토기조각, 손잡이는 물로 흔하지 않은 두(豆)의 조각까지 주울 수가 있었다. 이 성에서 가장 특이한 것은 남벽에 있는 내성이다. 규모가 그렇게 큰 것은 아니지만 매우 뚜렷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쌍봉이 있는 봉우리를 깎아 위를 거의 평평하게 하였는데 성안에는 낮은 봉우리 두 개가 남고 그 주위와 사이에 상당히 넓은 아성이 형성된 것이다. 아성 안에 벽돌이 남아있어 건축물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요금시대나 그보다 후대의 건물 터일 가능성도 있다.
성안에 우물도 있고 특히 배수구의 구조를 알 수 있어 좋은 자료가 될 것으로 본다. 배수구는 현대에 와서 시멘트를 발라 썼으나 위쪽 판석은 원래의 것으로 보여 고구려 때부터 있던 수구를 수리한 것으로 보인다. 1시간 정도 간단히 파악만 하려 했는데 2시간 반이나 걸렸다. 

  ◎ 오후 : 遼源 龍首山城, 城子山山城(山灣鄕 七一村 3隊), 工農山城(공농향 공농산)

서풍을 거쳐 바로 요원으로 갔다. 여기서부터는 길림성이다. 서풍에서 요원으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그렇게 높은 산이 없어 뜻밖이었다. 요원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답사를 시작했다. 요원에 있는 세 성은 이미 1993년에 1차 답사한 곳이다.
용수산성은 완전히 관광지가 되어버려 많이 훼손되었지만 몇 군데서 성벽 흔적도 찾아내고, 고구려 기와조각, 돌확 같은 것도 볼 수 있어 비록 여러 가지 현대적 시설이 들어선 공원이지만 고구려적인 요소를 여기저기서 찾아볼 수 있었다.
성자산산성은 토성인데 성두(치성)가 3곳이나 있어 관심을 끌었다. 요나라 성벽의 치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위가 반반하다. 윗면은 후대에 그렇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요나라의 치와 차이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고구려 때도 토성에 이러한 치성을 쌓았는지? 아니면 요금시대 고구려 성을 보축하면서 생긴 것인지 앞으로 발굴을 통해 유물과 연결해 연구해야 할 과제이다.
약간 늦은 시간이지만 공농산성은 완전히 한 바퀴 돌며 찬찬히 관찰하였다. 93년에는 없었던 무덤들이 들어서 마치 공동묘지로 변해버린 듯하다. 북쪽 봉우리에 올라가 주위를 둘러보니 용수산산성, 성자산산성, 동요하와 위진하(渭津河)가 합쳐지는 지점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에 측량기점이 있는 것도 관측지점으로서 중요성을 말해주는 것이다. 6시쯤 해가 넘어가기 시작한다. 약간 으스스하게 추위를 느끼는 동벽에서 일몰을 감상하고 6시 반 하산하였다.
원래 오늘 목표지는 유하(柳河)였다. 그러나 도로를 수리하고 있어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고 깜깜한 밤에 이동하는 것은 힘이 들었다. 유하보다는 큰 도시인 매하구에서 하루를 묵는다. 김치찌개, 된장국, 김치 같이 입맛에 맞는 음식을 맞나 다행이었다. 사우나가 있으면 허리 안마를 좀 받으려 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아 간단히 씻고 그냥 잔다. 
                  ♨ 매하구 1박

◈제4일(4월 16일, 월):古城子山城, 龍首山城, 城子山山城, 工農山城(정원철)
05:00 기상
  --날씨가 좋다.
05:50 고성자산성으로 출발
07:00 八 樹 도착
  --개원-양목림자-양목향-  家屯- 沈家堡- 東方紅橋- 팔과수
07:05∼25 아침식사
07:55 고성자촌 도착
  --팔과수에서 약 500m가면 林豊과 李家臺로 가는 갈림길이 나오는데 林豊쪽으로 가야한다. 산성은 고성자촌의 바로 뒷산이다.
08:00∼10:25 고성자산성 답사
  --서문을 통과하여 남벽에서부터 답사를 시작한다. 남벽으로 오르는 완만한 경사지는 지금 밭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고구려 토기와 기와편이 쉽게 발견된다. 남벽에서 내성(아성)이 만들어져 있다. 서길수 교수님은 석성을 제외한 성에서 아성이 있는 경우는 처음 보신다고 한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재미있는 성이라고 하신다. 아성은 전체적으로 반달 모양이다. 동서길이가 남북길이보다 더 긴데 동서길이는 115m, 남북 길이는 65m이다.
북벽에서는 옹성(동북모서리에서 약 250m-북벽의 최정상에서 약 70-80m)의 형태의 문터가 발견된다. 밖으로 약 15m나와 있고 폭은 약 5m 이다.
서벽은 비교적 낮으며 서벽을 통해 내려가자 격자, 노끈, 민무늬 붉은 기와와 민무늬 푸른기와편들이 많이 발견된다.
수구문은 현재 60×80cm의 크기로 남아있는데, 내부를 들여다보면 위는 넓적한 판돌을 사용하고 양옆은 10∼15×5∼10cm의 크기의 돌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위의 판돌을 제외하고 나머지 부분은 시멘트로 발려있다. 
10:30 遼源市로 출발(고성자-팔과수-房木-西豊-安民-安怒-요원)
11:35 서풍경유
12:20 요원도착
12:25∼13:15 점심식사
13:30∼15:00 용수산성 답사
  --유원지로 꾸며지면서 이미 그 흔적을 잃어버렸다. 성벽의 흔적은 서문부근(요운각 아래에서도-서벽- 높이 1m이내의 성벽이 확인된다.) 에서나 일부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충혼열사 탑 바로 오른쪽에서 돌확을 발견하였고, 부근에서 기와편 일부를 수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성의 모습이 너무도 변하였기 때문에 무척이나 실망스럽다.
15:35∼16:25 성자산산성 답사
  --요원시 인민정부가 끝나는 바로 좌측 길로 들어가 요원 제1제약 공장을 경유, 요원시 농아학교를 찾으면 성자산산성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폭 1.5, 높이2m정도의 성벽이 끝까지 이어진다. 북동모서리와 북서모서리에 치가 있는데 북서모서리의 치는 14×24m의 크기이다. 서벽 바깥쪽으로 30m 떨어져 또 다른 토벽이 이어지는데 높이 0.5-1.5m이다. 또한 서벽 안쪽으로는 폭 20-30m 마도가 나 있다.
17:00∼18:30 공농산성(공농향 安國村) 답사
  --남문은 잘려나간 상태인데 판축한 것이 확인 가능하다. 가장 아래는 모래, 진흙층, 그 위는 자갈, 모래 등으로 섞어 판축하였다. 잔존 높이가 약 4m정도 된다. 남벽의 서쪽모서리 부분에 상당히 넓은 대지가 있는데 100×90m정도의 넓이이다. 남서모서리가 이 산성에서 가장 높은 곳인데 역시 넓은 대지가 형성되어 있다.
18:35 梅河溝로 출발
20:10 매하구 도착
20:20-50 저녁식사(天河조선족밥점-김치찌개, 된장찌개)
21:10 友誼賓館 투숙(608호, 610호)
22:30 취침

제5일(4월 17일, 화)  ◎柳河 釣魚臺古城(城關鄕 自興村 동쪽)
    700m, 3면 절벽, 판축 토성, 현재 300m, 1-1.8m, 문 1, 高臺 1, 돌확

4시쯤 일어나 기록하고 5시 반 출발. 어제 목표인 유하까지 가지 못하고 매하구에서 잤기 때문에 오늘은 조금 일찍 출발한다.
유하에 들어서기 전 조어대고성을 찾았다. 주소에 나와있는 자흥촌에 들어가 성터를 물어보았으나 아는 사람이 없어 여러 군데 물어야 했다. 처음부터 조어대촌을 찾았더라면 빨랐을 것이다. 비록 규모가 작은 산성이지만 일통하(一統河)가 흐르는 들판 한 가운데 우뚝 솟은 산꼭대기에서 주위를 모두 경계할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있어 전략적으로는 중요한 목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산성은 비교적 잘 남아 있었다. 절벽부분에서 석축을 발견한 것은 이번 답사의 성과였다. 이른 아침 짧은 시간에 상큼하게 한 건을 마친 기분 좋은 아침이었다.

  ◎ 羅通山城 답사

유하 역전에서 아침 식사를 하면서 나통산성에 가는 길을 물었다. 93년에 처음 나통산성을 올라갈 때는 대통구라는 곳을 통해서 갔는데 지금은 산 위까지 올라가는 길이 나서 다른 길이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30분이면 나통산성에 도착한다고 하며 중간중간에 있는 표지판을 잘 확인하라고 한다. 성수진(聖水鎭)쪽으로 한 참 달리다 인적이 드문 산 속에서 언뜻 표지판을 놓치고 지나는 것 같아 차를 돌려서 와보니 나통산성은 오른쪽으로 들어가라는 표지판이 잘 보이지 않게 틀어져 있었다. 나통산으로 가기 위해 방향을 트는데 감색 중산복을 입은 사람이 손을 번쩍 든다.
'고점일(高占一) 선생이다'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93년 나통산성을 안내했던 고점일 선생이 인적이 드문 이 산속에서 마치 나와 약속이 되어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그 자리에 서 있었던 것이다.
"한국에서 서길수, 최무장이 왔을 때 내가 안내했다. 말을 타고 와 텐트를 친 사람도 있었다."
고 선생은 자기가 이미 한국인들을 많이 안내했다는 것을 자랑하는 것인데 말을 타고 온 것은 윤명철 박사를 말하는 것 같다. 고 선생이 나를 알아보고 반가워했지만 내가 준 명함을 보기 전까지 내가 서길수라는 것은 몰랐던 것 같다.
"연변대에서 왔다고 하겠다."
고선생의 배려로 입장료도 내지 않고 차로 남문(고 선생은 서문이라고 하였다)으로 직행하였다. 93년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남문을 발굴하여 아주 웅장하게 재현해 놓았다. 서벽부터 시작하여 북문까지 가는 동안 돌구덩이를 찾으려 했으나 발견하지 못하였지만 치성터의 흔적(?), 군사의 주거지로 보이는 큰 구덩이를 찾을 수 있었다. 북문에서 문 아래 수구를 관찰하고 출발하였다. 여기서부터 동성과 서성이 만나는 부분까지는 계속 올라가는 길이다. 성벽도 가장 잘 남아있고 축성법을 알 수 있는 부분도 많다.
동서 성이 만나는 지점에는 봉화대가 재현되어 있었다. 물론 전혀 고증 없이 벽돌로 중국식을 본 따 만든 것이다. 옛날에는 기단이라도 볼 수 있었는데 모두 파괴되어 8년 전에 찍어놓은 사진이 이제 자료가 되는 것이다. 해발 1090m, 유해(柳海)평원을 시원하게 바라보며 1500년 전 고구려의 스케일을 그려본다. 붉은 고구려 기와조각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옛날 고구려 때 이곳에 건물이 있었다는 증거인데, '이 좁은 곳에 저런 봉화대를 세우고 나면 건물은 어디다 세웠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동성의 서벽이며 서성의 동벽은 지난번 왔을 때 보지 못한 곳이라 자세히 관찰하였다. 아까 북벽 올라올 때도 그랬지만 내려오는 길도 화강암으로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여기저기 좋은 경치에는 이름도 붙이고, 시도 읊고, 좋은 곳에서는 사진을 찍으라며 포즈까지 잡아주는 고선생은 62세라는 나이답지 않게 날렵하다.
"앞으로 20년간 82세까지는 끄덕 없이 올라 다닐 수 있다."
확신에 찬 이 장담을 듣고, 이번 답사 준비하며 산 올라 다니는 것을 걱정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이제 57세밖에 안 되었는데… 우리는 스스로 너무 빨리 늙은이가 되어버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큰 못이 있던 곳은 완전히 관광지로 변해버렸다. 93년 터만 남아있던 곳에는 삼청궁이라는 도교사원이 들어섰고, 못 위에 먼지가 덮여 흙이 되고 그 위에 나무가 자라던 곳은 깨끗이 정비하여 쇄용담(鎖龍潭)이라는 이름까지 붙여 놓았다. 해발 900m나 되는 분지에 표면적이 2,500㎡나 되는 못에 물이 가득 차있는 것을 보니 이 정도면 십만 군대가 마실 수 있는 수량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8년 전에 보았던 돌확과 연자방아 바닥돌도 잘 모셔놓았다.
"우리 집에서 자고 가세요", 오늘 통화까지 가야 한다니까, "그럼 점심 식사를 하자", 고 선생의 친절은 보통을 넘었다. "당나라 때 개원통보라는 엽전인데 나통산성 안에서 나온 것이다."며 동전 두 닢을 선뜻 준다. 이런 여러 가지 상황과 "동성(東城)은 다음에 와서 보자"고 시간을 아끼는 여러 가지 분위기를 종합해 본 결과 고 선생 댁을 들려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1시 40분에 답사가 끝났으니 동성까지 돌아볼 시간도 충분했던 것이다. 고선생 댁까지 가는 길은 자동차 뒤가 긁혀 일부 파손이 될 정도로 나빴다.
고선생 댁에 가서 나통산성에서 나왔다는 유물을 보았다. 화살촉 3개와 갑옷비늘 몇 개인데 화살은 반드시 고구려 때 것이라고 장담하기 힘들었다. 개원통보 같은 엽전은 너무 많기 때문에 희소가치가 없는 것이지만 나통산성에서 나왔다고 해서 몇 점 인도 받았다.

◎ 釣魚臺城址(輝南縣 板石河鎭 서남 2000m)

늦은 점심을 얻어먹고 서둘러 조어대산성으로 떠났다. 아침에도 조어대라는 산성을 보았는데 삼통하(三統河) 가에도 똑같은 이름의 고구려 성이 있다는 기록이 있어 답사일정에 넣었던 것이다. 묻고 물어 현장에 도착하니 이미 6시다. 삼통하 길목을 막는 나지막한 언덕 위에 쌓은 보루인데 성벽의 흔적은 거의 없다. 도로를 내면서 발굴을 했다는 현지인들의 말이 있었는데 그 결과는 알 수가 없다.
장춘-백산 사이에 고속화도로가 생겨 생각보다 편하게 통화에 도착하였다. 박사장을 만나 냉면으로 저녁을 때우고 동산호텔로. 소위 건강안마라는 것을 받아보았다. 안마사는 좌골이 아픈 것은 좌골신경통으로 보이고, 오른쪽 어깨가 아픈 소위 50견은 고치려면 1주일이 걸린다고 한다.
  ♨ 통화 1박


◈제5일(4월 17일, 화):釣魚臺城址, 羅通山城, 釣魚臺城址(정원철)
05:30 기상
06:00 柳河로 출발
  -- 포장도로와 비포장도로가 반복된다. 길림성 지역은 전지역이 도로 공사중이란 느낌이다. 요녕성 지역의 도로와는 차이가 많이 난다.
06:50 조어대성지 도착
  ∼07:40 답사
  -- 유하에 도착하기 직전에 釣魚臺村이 있다. 마을의 좌측편에 절벽이 하나 보이는데 바로 조어대고성이다. 표지판에는 '이 성은 토축이며, 둘레가 400m, 약간 원형, 漢代城, 북쪽에 문이 하나가 있다.'라고 되어있다. 현재 너비는 4∼5m, 잔존높이 1.5∼2m, 성 밖에 약 6∼7m떨어져 또 다른 토담이 있는데 폭은 약 2.5m 잔고는 1m로 절벽을 제외한 부분에 둘러쳐져 있다. 남쪽 정상부에는 장대가 있는데, 장대의 서쪽 부분은 석축을 한 것으로 현재 약 1단정도 확인된다. 북쪽은 평지와 연결되어 있고, 문이 하나 있다. 남쪽과 서쪽은 절벽으로 자연성벽을 이룬다.
07:55 유하 도착
  --이곳에도 빈관이 제법 많은데 금성빈관이 새로지어 깨끗해 보인다.
08:00∼30 아침식사(유하역 앞 조선족旅飯店)
08:35 나통산성으로 출발
09:00 나통산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고점일 선생 만남
  --고점일 선생과 서길수교수님 두 분은 오늘이 8년만에 해후이다.
09:15 나통산 문입구 도착
09:25 나통산성 동성의 서문 도착, 답사 시작
  --고선생도 동행하여 답사가 진행되었다. 고선생은 나통산성에 대해서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나통산성에 대해 무엇을 물으면 자신이 지은 시까지 읊으면서 유창하게 설명을 한다. 나통산성 곳곳에 선생의 손이 가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이다. 나통산성의 守護神이라고 하면 표현이 적당할까?
나통산성은 성의 규모가 대단히 클 뿐만 아니라 성문(서문, 북문)이 온전히 남아 있고, 성벽 또한 그 위용이 대단하다.
13:40 동성 답사 종료
  --성내에서 약 1시간 가량 휴식을 취하였다.
14:30 고점일 선생 댁으로 출발
15:50 고 선생댁 도착
  --고선생이 가지고 있는 나통산성 출토 유물(명도전, 개원통보 등의 화폐, 화살촉, 찰갑)을 구입하였다.
16:45 조어대성지로 출발
  --고 선생 댁에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바삐 출발하였다.
18:00 조어대성지 도착
  --나통산진에서 姜家店을 경유하여 약 1.2km 더 가면 장춘과 백산간 갈림길이 나온다. 여기에서 장춘방향으로 가야한다. 도로는 장춘-백산간 고속도로로 개통된지 얼마 되지 않았고 도로의 상태는 아주 양호하다. 조어대성지는 장춘-백산간 고속도로의 179km지점의 길 우측편에 있다. 
18:00∼18:15 조어대성지 답사
  --북벽의 흔적이 조금 남아있을 뿐 다른 흔적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18:20 통화로 출발
19:30 백산시 경유
20:20 통화시 도착
  -- 도착하여 박인호 사장을 만났는데 작년에 본 것을 기억하신다. 내가 백두산에서 몹시 아팠던 것을 기억한 것이다.
21:00∼45 저녁식사(小金狗肉城 分店-냉면)
22:00 동산빈관 투숙(204호, 205호)
24:00 취침

제6일(4월 18일, 수) ◎ 오전 : 本溪 老官山城 : 本溪市 牛心臺鄕 老官砬子山

아침 6시통화를 떠나 6시간을 달려 본계 우심대향에 도착하였다. 원래 계획은 답사 마지막날 심양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들리기로 했는데 구리시장의 방문이 하루 늦어져 일정을 마치느라고 무리를 한 것이다. 그 결과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기대를 가지고 갔던 노관산성은 현지인들도 알지 못하고, 용호를 통해 박물관에 알아본 결과 20∼30m밖에 안 되는 토성이고 명나라 때 것으로 본다는 대답이다. 일단 상황을 파악한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 오후 : 太子城 

오후 2시가 넘어 4시간 정도 조사한 태자성은 성과가 아주 좋았다. 태자성은 마치 바다에 떠있는 큰 군함처럼 그렇게 그 자리에 있었다. 94년 왔을 때는 여름이라 거의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는데 이번에는 아주 자세하게 조사할 수 있었다. 특히 내성문과 북벽을 철저하게 조사하였다. 내성문의 옹성은 아주 특이하였다. 1m가 넘는 돌, 아니 바위덩어리로 귀퉁이를 쌓은 튼튼한 옹성, 일본 답사팀이 그린 평면도가 달라 다시 쟀다. 마침 옹성 바로 위에는 발굴을 시작한 것으로 보이는 터가 있어 행운을 잡았다. 붉은 기와가 많이 나온 것으로 보아 고구려 집자리가 틀림없어 보인다.
내성 옹성 바로 안쪽에 돌로 쌓은 망대가 있고, 동쪽 정상에도 그 보다 더 높은 망대가 돌로 쌓여 있다. 두 망대 사이에는 기와조각들이 흔하게 널려 있어 이곳에 건물들이 많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곳은 전체 성의 크기에 비해 넓기는 하지만 장수가 거주한 아성이 틀림없어 보인다.
동북 모서리 동쪽에는 문(또는 암문)으로 보이는 곳이 있는데 지형이 마치 이파리 귀퉁이를 벌레가 먹은 것처럼 안으로 들어와 있어 옹성형태를 이룬다. 이곳도 발굴이 진행되고 있다. 북문은 마침 역광이라 완벽한 사진을 찍기 어려웠지만 구조를 잘 파악할 수 있었다. 북문에서 서쪽으로 조금 올라가는 곳에 태자성에서 축성법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곳이 있다. 한참 무너지고 있어 얼마 가지 않아 겉쌓기는 찾아보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서쪽 꼭대기의 축성법은 참 특이하다. 정상 봉우리 뒷면에 나선형으로 올라가는 마도를 만들어 쉽게 오를 수 있도록 하였으며, 봉우리는 다시 마치 층계가 있는 케이크처럼 3층으로 테를 쌓아 높은 대를 만들었다. 이 대에서 바라보니 태자하, 소협하(小夾河)를 포함하여 주위가 모두 한 눈에 들어온다. 넘어가는 해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하염없이 앉아있고 싶어 내려오기가 싫다.
이곳에서 신빈 가는 길이 뜻밖에 좋아 생각보다 빨리 신빈에 도착하였다. 원래 영능에서 자려고 했는데 신빈이 더 크고 잠자리가 좋아 신빈에서 호텔을 잡았다. 별 하나 짜리 흥경(興京)호텔, 바로 지척에 청나라의 발상지인 흥경이 있기 때문이다. 내일부터는 통화에서 다른 차가 오기로 되어 있기 때문에 차에서 물건을 내리다 보니 기와조각 주운 것이 벌써 한 박스가 되었다. 
                              ♨ 신빈 1박


◈제6일(4월 18일, 수):老官山城, 太子城(정원철)
05;20 기상
  --오늘도 날씨가 좋다. 바람과 황사가 심했던 이틀째를 제외하고 계속 날씨가 좋다. 
06:00 本溪로 출발
  --원래 제10일의 일정이 오늘로 변경되었다.
07:40 길림성과 요녕성의 경계
  --길림성과 요녕성의 도로가 차이가 많다는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요녕성으로 접어들자마자 거짓말처럼 도로가 좋아진다.
08:05 黑溝 도착
08:05∼40 아침식사(騰飛飯旅店)
09:00 桓仁 경유
10:10 新開領터널
  --환인에서 본계까지는 도로 상태가 아주 좋다.
10:15 난하곡 경유
  --갈림길이 나오는데 좌측은 본계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은 태자성으로 가는 길이다.
10:30 田師付 경유
10:50 本溪小市 경유
11:20 臥龍 경유
11:25 牛心臺鎭 도착
11:30-55 점심식사(우심대 버스 정류장 안쪽 조선랭면집-냉면)
12:30 老官村 도착
  --有官산성을 찾았으나 有官이라는 지명자체가 없다. 유관산성은 잘못 알려진 것으로 바로 잡아야 할 명칭이다. 老官산성이 옳은 표현이 되겠다. 산성은 현재 20-30m가 남았을 뿐이며, 명대의 성임이 확인이 되었다. 자료가 잘못되었음을 확인하고 태자성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13:10 본계소시 경유
13:40 전사부 경유
14:20 태자성 도착(下夾下鄕 太子城村)
  --도착할 무렵부터 빗방울이 떨어지더니 금새 멎었다.
14:20∼17:55 태자성 답사
  --태자성은 멀리서 보면 마치 짚신 짝 같기도 하고 산 위에 정박한 배 같기도 하다. 오녀산성과 같이 아주 신비스런 기운이 감도는 곳이다. 성 가운데는 내성벽이 있는데 다른 성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구조이다. 두 분 교수님께서 가지고 있는 자료와 비교해가며 꼼꼼히 조사하셨다. 태자성의 일몰은 참으로 아름답다. 진한 오렌지빛 태양과 그 빛을 받아 반사하는 태자하는 우리 발걸음을 잡아 놓는다. 한동안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서쪽만 바라 보았다. 
18:00 신빈으로 출발
19:25 신빈현 도착
19:45 저녁식사(天天快餐-凍豆腐)
  --운전기사에게 6일간의 수고비를 지불하고, 저녁식사를 하였다.
20:25 興京빈관 투숙(108호, 109호)
22:30 취침
  -- 어느새 지쳐있음을 느끼게 된다. 어제, 오늘 발걸음이 대단히 무거웠다. 기록도 간단한 일정만 기록하고 있지, 산성에 관한 기록은 어느새 두 분 교수님께 미루고 있다. 어제의 나통산성도 그렇고 오늘의 태자성도 마찬가지이다. 볼 것도 많고 기록할 것도 많은데 어제, 오늘 날짜의 메모장을 보니 기록한 것이 없다.
한편으로는 산성에 대한 개념이 서지 않는 상태에서의 기록이란 것이 무의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동시에 든다. 처음의 열정으로 며칠 간 제법 많이 쓰기는 하였으나 지금 읽어보니 그것 또한 아무런 체계도 핵심도 없이 채우는 것에만 급급했다. 이래저래 답답하다.

제7일(4월 19일, 목)  ◎ 오전 : 五龍山城

엊저녁 일찍 자서 그런지 4시가 안 되어 잠이 깼다. 방에 불을 넣지 않아 제법 두꺼운 이불을 덮었는데도 추위를 느껴 가끔 잠을 깨곤 하였다. 일어나자마자 커튼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다. 물론 땅에 닿으면 모두 녹아버리지만 산 위는 하얀 눈이 덮여있다. 다행히 우리가 출발할 때는 해가 뜨고, 눈은 그야말로 봄눈 녹듯이 사라진다. 오전에는 우선 오룡산성으로 갔다. 오룡산성은 93년 여름, 94년 겨울, 두 번이나 갔기 때문에 이번 답사일정에는 넣지 않았었는데 도로 사정이 많이 좋아져 시간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넣은 것이다.
세 번째 오는 오룡산성이지만 이번 조사는 전혀 새로운 차원이다. 이번 조사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은 지금까지 토석혼축으로 알고 있었는데 모두 돌로 쌓은 석축이라는 것이다. 남문쪽으로 올라가다 바로 오른쪽에 축성법을 파악할 수 있는 성벽을 발견하였다. 동벽에서 치성을 발견한 것도 큰 성과였다. 아직도 마도가 아주 넓게 남아있다.
동북모서리를 지나 북벽을 따라 내려가면서 여기서도 진달래를 확인하였다. 누가 "진달래가 있는 곳은 모두 우리 땅이다"고 했던가! 보고서에 보면 동벽 언덕에 야금(冶金)을 하던 곳에 쇠찌기가 있다고 해서 찾아보았는데 불에 탄 흙과 원석으로 보이는 것은 찾았는데 쇠찌기를 찾지 못했다. 4시간 반,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신빈으로 돌아오는 길에 도로에서 차를 잠깐 새우고 목저성으로 비정되는 하서촌 고성을 사진만 찍었다. 도로 요금을 받는 곳에서 바로 바라다 보이는 곳이다. 신빈으로 돌아와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만족 춤과 음악을 접할 수 있었다. 한국의 엘지화장품 선전을 위한 공연인데 신빈만족자치현 소속 연예단이 동원되었다.

  ◎ 오후 : 新賓 永陵鎭 古城,  新賓 二道河子 舊老城

오후에는 청나라의 초기 도읍지였던 두 성터를 답사하였다. 이곳에서 모두 고구려의 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