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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반도는 우리 고대사의 현장

백두산에서 힘차게 서쪽으로 뻗어나간 장백산맥이 요동반도에 다다르고, 그 지류인 천산산맥이 서남쪽으로 달려 요동반도의 척추를 이룬다. 천산산맥 서쪽으로 1400㎞의 장대한 요하가 흐르고, 그 요하를 중심으로 서쪽을 요서지방, 동쪽을 요동지방이라고 한다. 이 요서 요동지방은 일찍부터 황하 주변의 중원과는 전혀 다른 문화를 형성한 동이족이 사는 곳으로 [조선]이란 나라가 있었던 곳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곳은 바로 우리 고대사의 현장인 것이다. (고)조선 이후 이 지역에는 고구려, 부여, 선비, 거란, 여진 등이 번갈아 가며 세력을 잡고 활약했는데, 그 가운데서 705년이란 가장 오랜 기간 동안 가장 강대한 국가를 세우고 이 곳을 지배한 고구려의 유적을 찾는다는 것은 우리 민족의 대륙지배사를 복원하는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고구려는 대군들을 방어하기에 가장 적당한 요하 동쪽에 마지노선을 치고 막강한 성들을 쌓아 1차방어의 요지로 삼는다. 소위 고구려의 천리장성은 현재의 농안에서 출발하여 이러한 대규묘 성들을 이은 궤적(軌跡)이라고 할 수 있다. 설부루성(屑夫婁城 서풍), 신성(무순), 개모성(蓋牟城 심양), 백암성(등탑), 요동성(요양), 안시성(해성), 건안성(개현), 용담산성(득리사), 비사성(금현) 등을 이은 궤적을 찾아 고구려의 영관을 재현하려는 것이 필자의 목적이다. 필자는 1993년 이 지역을 집중적으로 답사하고, 1994년 재차 답사를 통해 고구려의 웅대한 산성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앞으로 몇 차례에 걸쳐 우리 역사에서 가장 웅혼한 기상을 펼쳤던 고구려의 유적을 찾아내 그 혼을 깨우고자 한다.

중국인 학자,
"고구려 산성 답사 불가능"

1993년, 5월 4일 저녁 심양역에 도착하자 이경빈 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1991년 길림성 장백에 갈 때 버스 안에서 만나 백두산을 남쪽으로 함께 올라갔던 재중동포다. 이경빈 씨가 이번에도 안내 겸 통역을 맡기로 했다. 이씨는 역사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필자가 이미 찾아갈 산성의 리스트를 만들고 주소를 입수했기 때문에 한 번 부딪쳐 보자는 배짱이었다. 5월5일, {동북역사지리}의 저자인 손진기 선생과 점심식사를 함께 하며, 내가 답사해 보려는 성의 리스트를 내 보이며 조언을 부탁하였다. "불가능합니다. 나도 젊었을 때 배낭메고 산성 찾으러 다닌 적이 있는데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그 높고 깊은 산중에 어디가 성이 있는 줄 알고 찾습니까." 한마디로 머리를 흔들어 버린다. 그러나 예상했던 이 대답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필자도 처음부터 이 일이 쉬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또 일이 어려울수록 도전할 가치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개모산성을 찾아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료는 이것이 전부다. 이 주소를 가지고 산성을 찾아가야 하는 것이다. 2시 단동행 열차가 진상둔에 서기 때문에 심양역에 갔으나 기차를 놓치고 본계(本溪)행 버스를 탄 것은 2시 30분. 도선(桃仙) 비행장 가는 고속도로를 달리다 본계가는 구길을 따라 가다 3시 15분, 동구라는 곳에서 고개를 하나 넘은 뒤 삼거리에서 내렸다. 딸딸이 택시를 하나 불러타고 2-3km를 가니 탑산이다. 채석장을 싸고 돌며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니 군인 망루가 하나 보인다. 밖에 나와 기다리던 군인이 망루 위로 올라오라더니 심하게 조사를 한다. 책에 나온 기록, 내가 쓴 기록, 손진기 선생 명함들을 보여주며 학술조사를 한다고 하였더니, 그 때 부터는 친절하게 안내해 준다. 망루에서 바로 내려와 보이는 산등성이, 즉 우리가 걸어온 길을 따라 내려간 능선이 바로 성이고, 그 곳 정상에 선 전봇대에서 5-6m 쯤 서쪽으로 간 곳에 탑이 있었으나 탑은 이미 없어졌다고 한다. 이 군인이 아니었더라면 성 바로 밑을 따라 돌아 다니면서도 성은 보지도 못하고 갈 뻔했다.

 


 

 

 

 

 

 

심양 탑산산성: 심양시 동남쪽 소가둔구(蘇家屯區) 진상둔진(陳相屯鎭) 역 북쪽 탑산 위에 위치한다. 성은 산 능선을 따라 쌓았고, 흙으로 쌓은 성벽은 1000m 쯤 된다. 이 성은 고구려 개모성이다.

개모성은 요서 진출의 요충지

산성에 올라가 보니 토성이 형태가 분명히 남아 있으나 나무들이 크게 자라 사진을 찍기는 마땅치 않았다. 기록에 따르면 성벽은 흙으로 판축해서 쌓았는데 현재 남아있는 성벽은 밑너비 3m, 남아있는 높이 약 1m, 길이가 약 1000m 쯤 된다고 한다. 산성은 동쪽이 낮고 서쪽이 높은데 말발굽 모양이다. 성 남쪽에 문이 하나 있는데 현제는 그 곳이 터져 성내의 물이 흘러나가는 출구가 되고 있다. 이 성이 고구려 때의 성이라고 판명된 것은 고구려 시대의 홍갈색 기와들이 다량 출토되었기 때문이다. 고구려는 일찍이 요동반도를 진출하여 심양지방을 지배할 때 이곳에 개모성을 쌓았다. 고구려 때는 성이 바로 행정구역을 나타내는 것이었기 때문에 고구려 때 지금의 심양은 개모성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구려가 신성을 나와 요하를 건너 요서로 갈 때는 바로 이 개모성을 지나 지금의 신민을 건너 의무려산을 향하는 루트를 택하였기 때문에 개모성은 전략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곳이었다. 산성에 서서 멀리 보이는 상당히 넓은 들판을 바라보니 관연 성이 위치할만한 곳이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바로 산 아래에서 들판을 조금 지나면 진상둔인데, 2만여 호가 사는 큰 마을이고 본계행 기차가 서는 곳이다. 산성 왼쪽 바로 밑에 있는 작은 마을이 하묘자촌(下廟子村)인데, 배꽃이 만발해 봄기운이 한창 오르고 있었다. 하묘자촌의 뒷산이 바로 성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하묘자촌을 알았다면 쉽게 성을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완행열차 타고 등탑(燈塔)으로

5시 쯤 성을보고 내려오며 보니 오른쪽 성벽이 채석장으로 변해 완전히 파헤쳐지고 있었다. 1988년 요령성 문화재로 지정되었기 때문에 박물관에서 여러번 공사를 중지하도록 했으나 소용이 없다고 한다. 지금 중국은 그저 돈이 신이니까. 한 사람에 2원 짜리 딸딸이를 타고 역으로 가니, 5시 40분 좀 넘어 기차가 온다. 모든 역에서 서는 심양행 완행열차가 두 정거장을 지나 소가둔에 서자 우리는 내려 바꿔 탈 기다렸다. 해바라기씨 까 먹으며 저녁노을을 바라보는 맛이 그만이다. 어느 사이에 버드나무에는 파란잎들이 제법 커졌다. 7시15분 등탑역에 도착하였다. 역 앞에 들만한 여관이 없을 정도로 조그마한 도시이다. 저녁을 한국식으로 먹어보려고 여러 집을 가 보았으나 [남한랭면점], [항국랭면점] 등 맞춤법이 틀린 한국어까지 동원하여 간판은 붙였는데, 들어가 물어보면 모두 중국인들이다. 적당한 선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내일 백암성에 갈 차를 예약하기 위해 역전으로 갔다. 짚차는 한 대 뿐이기 때문에 쉽게 결정했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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