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흔적도 없이 사라진 고구려 요동성

요양에 도착하여 우선 백탑을 구경하였다. 요양하면 [백탑]할 정도로 백탑은 요양의 명물이다. 8각으로 된 13층 짜리 탑은 높이가 71m나 되는 거대한 건조물이다. 탑신과 처마의 벽돌과 기와에 백회를 발라 하얗기 때문에 백탑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이곳에 온 것은 백탑이 목적이 아니라 옛날 고구려 성인 요동성이 어디에 있는가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기록을 찾아보고 현지에서 물어보아도 요동성은 보이지 않는다. 지금의 요양이 옛날 요동의 정치적 수도이고 최대의 격전지인 요동성인데 지금은 큰 도시로 변해 성은 그 흔적조차 없어져 버린 것이다. 이처럼 철저하게 없어진 고구려 유적이지만 다른 어떤 성보다도 그 구조가 잘 알려져 있다.


사라진요동성터 :요양의 상징인 백탑근처가 고구려의 요동성터였다

1953년 평안남도 순천군 용봉리에서 발견된 고구려 고분벽화에 요동성의 성곽도가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지상에서 지워진 역사가 무덤 속에서 살아난 것이다. 성곽도 중앙에 내성과 외성으로 된 2중성벽을 가진 주성(主城)이 있고, 인접하여 남쪽과 동남쪽에 조그만 외성의 형태가 보이게 배치했는데, 내성 안에는 골기와를 얹은 이층집과 삼층 누각이 그려져 있다. 외성 내부에는 서쪽문 좌우에 단층집이 한 채씩 그려져 있고, 그 오른쪽 밑에 해서(楷書)로 '요동성(遼東城)'이라고 내리 쓴 묵서가 있다.

 

고구려 멸망 후 요동성은 재탈환 되었다

백 요동성은 원래 옛 조선의 땅이었으나 한나라 땅이 된 뒤 양평(襄平)이라고 했고, 고구려가 다시 되찾아 요동성이라고 했다. 이 요동성은 요동 뿐 아니다 요서진출을 위한 최대의 요충지였고 1차 방어의 요충지다. 광개토태왕 14년(404년) 연나라 왕이 직접 대군을 이끌고 요동성을 쳐들어 왔을 때 성안의 고구려인들은 훌륭하게 무찔렀다. 영양왕 23년(612년) 수 양제가 113만 3800명(외형적으로는 200만, 군량수송 맡은 군사는 그 두 배)이라는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 왔을 때도 이 요동성은 함락시키지 못했다. 고구려 국운이 다 되어 당 당태종의 침략을 받았을 때도 막강한 대군을 12일 동안이나 막아내다 지원군이 끊어져 무너진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난 것은 아니었다. 당나라 대군의 집요한 공격에 무너졌던 요동성은 그 뒤 다시 탈환하여 고구려가 망한 뒤에도 조국 광복을 위해 끝까지 싸운 장한 성이다. 668년 평양이 무너지고 왕이 당나라로 잡혀갈 당시 압록강 이북에 있는 성 가운데 당나라가 깨트린 성은 불과 3개, 중앙정권이 무너지자 항복한 성이 11개, 그래서 당나라가 장악한 성은 모두 14개였다. 그러나 11개 성이 항복하지 않았고, 7개 성이 자리를 옮겨 항거하는 등 18개 성이 독립운동에 나섰다. 평양성이 무너질 당시 압록강 이북에서 항복하지 않고 계속해서 싸운 11개 성을 보면, 북부여성, 절성(節城), 풍부성( 夫城), 신성, 도성( 城), 대두산성(大豆山城), 요동성, 옥성(屋城), 백석성(白石城), 다벌악주(多伐嶽州), 안시성인데, 요동성은 재탈환되었다는 것이 증명된다.

 

요동성을 찾아라

막연히 요동성은 백탑 근방이라는 얘기만 듣고 왔는데 아무리 돌아도 도시 한 복판이지 성벽 비슷한 곳도 나오지 않는다. '자,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요동반도를 답사하면서 최고 요충지인 요동성의 위치마져 못 찾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처사다.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다. 만일 없어졌다면 그 요동성이 지금의 어느 곳인지 라도 알아내야 한다.' 우선 자전거택시를 타고 무조건 박물관을 찾아갔다. 그러나 고구려에 대한 유물은 한 점도 전시하지 않았고 이곳이 한 때 고구려 땅이었다는 언급조차도 없어 어안이 벙벙했다. 중국에서 박물관을 관람할 때는 중국인들이 역사를 어떻게 자기 위주로 왜곡하는 지를 잘 알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사대주의만 키워 가지고 나오는 역효과를 낸다. 그들은 그만큼 능숙하게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일을 저지르기 때문이다. 이 박물관에서 고구려 시대를 보려면 한(漢) 위(魏)시대라고 진열한 곳을 주의 깊게 보아야 한다. 바로 이 때가 고구려 때이기 때문이다. "여기가 요동성이다" 한참 관람하던 나는 속으로 외쳤다. 모형으로 만들어 놓은 지형도에 요동성을 분명하게 표시해 놓았기 때문이다. 지형도에 따르면 아까 보았던 백탑 동쪽 민가로 가득 찬 곳이 바로 요동성이었다. 그러니 요동성은 이제 세인들의 주거지 밑으로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이다.

 

- 계속 -

 
서울 마포구 동교동 178-7 흥륜빌라 B-2 TEL: 02-337-1661,2 FAX:02-337-16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