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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건안성

5월 8일, 영구가는 큰 길을 따라 청석령을 넘으니 얼마 안가 오른쪽에 고려성촌으로 들어가는 길이 나온다. 길을 꺾어들자 얼마 안 가서 고려성촌(高麗城村)이라는 표지판이 서있어 고구려를 찾는 나그네를 기쁘게 해 주었다. 마을 상점에서 동행해줄 사람을 찾았더니 여진광(呂振廣)이란 사람이 선뜻 따라나섰다. 여씨는 마치 역사를 전공한 향토사가처럼 성에 대해서 훤하게 알고 있었다. "성 안에 우물이 있습니까?" "기왓장이 나온 건물터가 있습니까?" "장대(중국에서는 점장대라고 한다)가 어디 있습니까?" "문이 어디어디에 있습니까?" 이런 것이 성을 찾았을 때 현지인들에게 물어보는 기본틀이다. 여씨는 이러한 물음에 완벽하게 대답해 주었다. 안으로 들어가다 왼쪽 산 중턱에 샘이 있다고 해서 올라가 보았다. 2∼3m 깊이로 파고 돌로 쌓았는데 지금도 쉬지 않고 물이 나와 과수원 물 주는데 긴히 쓰인다고 한다. 과일밭을 내려와 차로 동문을 가보았다. 길이 좋지 않지만 운전사는 불평하지 않고 능숙하게 운전솜씨를 발휘한다. 남과 북이 모두 높은 산이기 때문에 양쪽 산꼭대기까지 토성을 쌓아 올라갔는데 성벽이 비교적 잘 남아있다.


 

연개소문과 동생 연개소진

성 한 복판에 외딴 섬처럼 낮은 산이 하나 있는데 현지인들은 금전산(金殿山)이라고 부른다, 이 금전산이 바로 건안성의 장대이다. 이 장대 남쪽 뒤에 옛날 집터가 있었다는데, 여씨는 이곳이 [개소문(蓋蘇文)] [개소진(蓋蘇珍)] 두 사람이 함께 머물렀던 병영터라며 놀랍게도 한자로 두 사람의 이름을 써 보인다. 개소문이란 연개소문을 말하는 것인데 중국측 기록에는 모두 [연(淵)]이란 성을 빼고 [개소문]이란 이름만 쓴다. 당나라를 세운 세조의 이름이 바로 이연(李淵)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내가 놀란 것은 연개소문의 동생이 함께 전장에서 싸웠다고 하면서 이름까지 써 보인 사실이다. 연개소문의 동생이 있다는 사실을 사서에서는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연개소문이 기거했다는 곳에서 고구려 기왓장이라도 하나 주워보려고 찾아보았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높이가 20여 미터 된다는 장대(금전산)를 올랐다. 사면이 절벽인데 위에는 평지가 나온다. 사람이 인공적으로 쌓았을 것이라는 추측과는 달리 모두 돌산이기 때문에 인공으로 만든 산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곳에도 역시 난쟁이 대추나무가 있고 또 어제 안시성에서 본 가시나무가 있는데 하얀 꽃이 굉장히 아름답게 피어있다. 꽃 이름을 물어보니 관재수(串材樹)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사전에는 없는 단어이다. 서문도 동문처럼 양쪽 산정 사이를 넘어가는 고갯길인데 성벽이 아주 잘 남아 있다. 서문으로 가는 동안 여씨는 건안성 전문가답게 북쪽산 골짜기 넓은 곳은 군사훈련장, 서문 왼쪽 넓은 곳은 죄지은 사람을 처형했던 곳 등등 일일이 가르쳐준다. 북쪽 산에 올라 보니 지금까지 본 것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준다. 동문과 서문이 모두 토성이고 주위가 모두 토질이 좋은 밭인데 비해 이 산 위는 완전히 바위층이고 석축벽으로 쌓여져 있다.

 

 

당군에게 충격을 준 건안성

당 태종이 백암성을 공격하여 승리했을 때(6월) 이 세적에게 건안성을 치도록 명령하자 이 세적이 이를 반대한다. "건안성은 남쪽에 있고 안시성은 북쪽에 있는데, 우리의 군량은 전부 요동에 있습니다. 이제 안시성를 지나 건안성을 공격하다가 만약 고구려인들이 우리의 군량 수송로를 차단하면 어찌 하겠습니까? 먼저 안시성을 공격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안시성이 항복하면, 당당하게 북을 울리며 행군하여 건안성을 빼앗을 수 있습니다." 이 기록을 보면 건안성이 안시성보다 남쪽에 있다는 사실은 분명해 지는 것이다. 한편 안시성 공략작전이 교착상태에 빠지자 당나라 진영에서는 안시성을 포기하고 "오골성을 함락시키고, 압록강을 건너 곧바로 평양을 빼앗자"는 논의가 일어난다. 이 때 장손 무기가 "지금 건안성과 신성의 무리가 아직도 10만이나 되는데, 우리가 만약 오골성으로 간다면, 고구려 군사들이 반드시 우리의 뒤를 추격할 것이다." 고 하여 계획을 중지하였다. 이렇게 보면 안시성싸움에 투입될 군사력을 분산하고, 안시성을 놔두고 오골성과 평양으로 직행할 경우 추격하여 보급로를 차단하는 중요한 임무와 능력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삼국사기에 [신성·건안성·주필산에서 있었던 세 차례의 큰 싸움에서 우리 군대와 당 나라 군사 중에 사망자가 많았으며, 마필도 대단히 많이 죽었다]고 한 것을 보면 중국 기록과는 달리 건안성은 신성, 주필산(안시성)과 함께 당나라 군사에게 가장 큰 타격을 주었던 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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