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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풍이 몰아치는 요동반도

1994년 2월 13일 밤 11시쯤 등탑(燈塔)에 도착, 역전여관에서 간신히 방을 하나 빌려 하룻밤을 보냈다. 지금 며칠 째 이런 강행군을 하며 삭풍이 몰아치는 요동반도를 달리고 있다. 2월 14일 6시 기상, 보온병에 남은 따스한 물을 찬물에 타서 고양이세수를 하고, 차에 부동액 넣고, 다친 손 치료하고 나니 9시가 다 되어 출발하였다. 심양-대련간 고속도로를 들어서 요동반도를 서남쪽으로 2시간 반을 달려가던 차가 국둔(鞠屯) 인터체인지에서 국도로 나와 40분쯤 달리자 송수진(松樹鎭)에 다다른다. 시간은 이미 12시 10분, 아침도 제대로 못 먹었는데 이곳에서도 점심식사를 할 수가 없다. 구정이 지나고 닷새 째가 되는데도 아직 문을 연 식당이 없다. "득리사(得利寺) 용담산이 얼마나 남았습니까?" 목적지에 가까워지자 자주 묻기 시작하였다. 얼마 안 가 득리사가 나오고, 득리사로 들어가기 직전 오른쪽으로 꺾어들어 가니 산세가 웅장하고 험준한 산이 나타난다. 물어보지 않아도 고구려산성이 있는 산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삭풍이 몰아치는 요동의 고구려 산성을 답사하는
필자

산자락에는 군사용 가스저장소가 있고 군용 철길로 직접 연결되어 있어 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막혀 있었다. 안내를 자청한 중국인 덕분에 개울을 건너 철길아래 뚫린 수구를 통해 산 위로 올라갈 수가 있었다.

 

득리사산(得利寺山)의 용담산성(龍潭山城)

얼마 올라가지 않아 한 눈에 고구려 산성이 분명한 성벽이 멀리 바라보인다. 주위의 산세가 마치 용이 트림하듯 웅장하고 험준하다. 성문 입구에 다다르니 많이 무너졌지만 아직도 6-7m 정도 남아있는 성벽이 완연하게 남아 있다. 처음부터 굉장한 성이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가 지금 들어가고 있는 동쪽 성문 양쪽에는 경사가 급한 벼랑을 직선으로 올라가는데 그러한 벼랑에도 성벽들을 정말 절묘하게 쌓아 올라갔다. 득리사진 북쪽 에 있는 약 250m(444m 라는 기록도 있다) 높이의 용담산 위에 고구려가 쌓은 성은 길이가 2240m에 달하고 동 서 북 삼면에 높은 봉우리가 솟아 있으며, 동쪽에 있는 계곡으로 들어가면 계곡 입구 남북에 대아봉(大牙峰)과 이아봉(二牙峰) 서로 바라보며 끌어않고 있는 형세다. 성안으로 들어가는 길은 비교적 널찍하고 잘 닦여져 있다. 얼마 들어가지 않아 제법 큰 못이 나오고 그 옆에는 절이 하나 있다. 절에 들어가 인사를 드리고 임시로 만든 법당에 가서 도사가 종을 치는 수대로 머리를 조아리며 절을 하였다. 용이 승천했다고 하는 용담은 길림시 용담산의 용담보다는 규모가 좀 작아보였다. 이렇게 오래 된 못이 어떻게 메워지지 않고 또 깨끗하게 보존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 현지인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만일 돌을 던져 넣으면 하늘로 올라간 용이 그 돌멩이 만한 우박을 내려 농사를 망쳐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에 와도 돌멩이 하나도 던지지 않는다." 마을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산성이 아직까지 잘 보존된 이유도 바로 이 곳을 지키고 있는 용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용담산성의 서문- "S"자 옹성이 최초로 발견되었다

최초로 발견한 'S'자형 옹성

용담에서 서쪽으로 가는 길은 약간 경사진 곳을 오르지만 힘들이지 않고 갈 수 있었다. 얼마 안 가서 서문이 나오고, 서문을 지나면 바로 낭떠러지처럼 경사가 급해 그야말로 공격하기 좋고 방어하기 알맞은 지형이다. 서문을 지금까지 본 고구려 산성 가운데서 가장 완벽하게 남은 옹성이었다. 옹성이란 성문을 두 겹으로 쌓아 적이 쉽게 쳐들어올 수 없도록 한 것인데 그 모양이 옹기같이 생겼다고 해서 옹성이라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동대문을 보면 누각이 있는 성 밖으로 반원을 그리며 또 다른 성을 겹으로 쌓았는데 이것이 바로 고구려 성에서 비롯된 옹성의 전형인 것이다. 우리가 자주 쓰는 '철옹성 같다' 는 말도 바로 '쇠로 만든 옹성 같다'는 뜻으로 여기서 온 것이다. 고구려 축성법 가운데 으뜸가는 특징인 이 옹성은 가장 이른 시기 산성인 오녀산성에서는 '기역'자 모양을, 그리고 환도산성은 '디귿'자 모양을 하였는데, 여기서 'S'자 모양을 처음으로 본 것이다.

경사가 급한 서쪽 산기슭을 오를 때 성벽 위에서 활을 쏘거나 돌을 굴려 쉽게 물리칠 수 있는 지형인데다가 설령 서문까지 다다랐다고 해도 직접 문을 통과할 수 없고 'S'자형으로 돌아 들어오는 사이에 적에게 크게 타격을 줄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다. 고구려의 축성법이 새삼 돋보이는 부분이다.

 

신기에 가까운 고구려의 축성법

남쪽 성벽을 보기 위해 서문에서 성벽을 따라 남쪽으로 가파른 봉우리를 올랐다.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니 성안이 한 눈에 들어오는데 몇 만 군대를 주둔시킬 만큼 규모가 컸다. 남쪽으로 성 밖을 보니 넓은 벌판에 득리사진이 알맞게 자리잡고 있다. 고구려 성이 있는 곳은 대부분 이처럼 넓은 벌판을 끼고 있어 스스로 자립경제가 가능한 생산력을 갖추는 것이 특징이다. 남쪽 성벽은 천길 낭떠러지 위에 쌓은 걸작 중의 걸작이다. 바위 꼭대기에 어떻게 쌓았길래 1500년 이상이 지난 오늘날에도 돌로 쌓은 성벽이 그대로 남아있을 수 있을까! [고구려는 산성을 잘 쌓기 때문에 함부로 쳐들어갈 수 없다]고 한 중국의 기록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성 밖 바위 위에서 마치 곡예사처럼 사진 몇 장을 찍을 수 있었으나 눈과 얼음이 있어 대단히 위험하였다. 남쪽 성벽 가운데 가장 낮은 지점에 용담에서 넘어오는 길이 있는 것으로 보아 여기서 득리사진으로 내려가는 암문이 있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남 모서리도 가보고 싶었지만 심한 추위에 체력이 떨어지고 또 미끄러워 위험하기 때문에 남문 근방에서 하산하기로 하였다. 용담 쪽으로 내려오는데 눈 속에 얼음이 얼어 있어 대단히 미끄러웠다. 푸드득 토끼가 뛰는데 언뜻 보니 작은 개만큼 큰놈이다.

 

춥고 배고픈 여정

내려오니 오후 3시 20분이다. 안내를 자청했던 하씨가 자기 집에 가서 식사하고 가라고 붙잡는다. 사실 아침에 고구마 한 개씩 먹고 하루 종일 쫄쫄 굶은 형편에 하씨의 점심 초대는 그야말로 구세주를 만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호의를 뒤로하고 다음 목적지로 떠나야 했다. 오늘 강 건너에 있는 마권자산성(馬圈子山城) 답사를 마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서둘러 들판 건너편에 있는 마권자산성으로 갔다. 산꼭대기에 올라가 한 바퀴 돌아보았다. 규모가 작고 성의 흔적도 많지 않았지만 돌로 쌓은 성의 흔적이 상당부분 남아 있었다. 복주하를 건너 멀지 않는 곳에 용담산성을 마주보고 있어 이 산성이 용담산성의 위성(衛城)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저녁은 와방점시(瓦房店市)에 가서 오랜만에 호텔에 들어 목욕이라도 좀 하려 했으나 단 하나 밖에 없는 호텔은 아직도 구정 휴무이다. 갈 곳은 역전의 국영 여사(旅社)뿐이다. 5명이 함께 자는 방인데 오래된 목재건물인데다 판자로만 막은 벽을 통해 옆방에서 떠드는 소리가 그대로 들리고 문을 닫으면 여러 방이 함께 흔들린다. 구정 때는 그나마도 국영 여사(여인숙)라도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엊그제는 어떻게든 하루 두 끼 씩은 먹었는데 오늘은 새벽에 고구마 한 개씩 먹고 저녁에야 간신히 식사를 하였다. 나야 신바람이 나서 배고픈 줄도 몰랐지만 같이 간 조선족 대원들은 무슨 죄인가?

 

고구려 산성 돌로 쌓은 중국군 레이더기지

2월 15일(화) 7시 30분 와방점시(瓦房店市)를 떠났다. 오늘도 두 개의 산성을 답사하기로 하였다. 먼저 남고점산성(嵐 店山城)을 찾고 이어서 태양승(太陽升)에 있는 고구려성을 찾기로 했다. 책에 나온 주소를 보며 남고점촌을 찾아가니 멀리 남고산이 보이는데 꼭대기에 돔형 건물이 있는 것으로 보아 군사용 레이더 기지로 보인다. 걸어서 중봉에 올라섰는데 바람이 어찌나 세게 부는지 몸이 날아가려 하여 거동이 힘들고 추위도 견디기 힘들었다. 설령 걸어서 올라갈 수 있다고 하더라도 레이더 기지가 둘이나 있어서 함부로 올라갔다가는 군인들로부터 의심받겠다는 생각이 들어 마을로 철수하였다.


남고산성. 현재는 중국군 해. 공군 레이더 기지로
쓰이고 있다

남고촌 다음 마을인 후망촌(後望村) 사람들 "고구려성(高麗城)은 레이더 기지 만들면서 대부분의 돌멩이를 가져다 지하 벙커를 만들어 버렸기 때문에 지금은 흔적이 없다"며 산 뒤쪽에 차로 올라가는 길이 있다고 일러준다. 산꼭대기의 레이더기지는 공군과 해군기지가 있는데 산 아래 그 병영이 있다. 혹시 검문을 하고 출입금지구역이라며 막을까 봐 조마조마했는데 추워서 그런지 나와있는 군인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꼭대기에 도착하니 바람은 더욱 심하게 분다. 레이더 기지를 지키던 공군 병사들이 우리를 보고 어떻게 올라왔느냐며 놀랜다. 우리는 학술탐사대라며 우선 살인적인 바람을 피해 병사 안에 들어가 잠시 얘기를 나누었다. 얼마 뒤 안내를 받으며 간단하게나마 주위를 돌아보았는데 성의 흔적은 보기 힘들었다. 다만 길을 낼 때 쌓은 축대 가운데 성돌이 있는 것으로 보아 후망촌 아저씨들의 말이 사실임을 알 수 있었다. 군사기지라 사진을 찍지 못하고 내려오면서 길가에 쌓은 성돌을 하나 찍은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아직도 지명이 고려성자촌(高麗城子村)

다시 물어물어 태양승향(太陽升鄕)에 들어서자 주위의 지형이 모두 고구려산성형이다. 나둔촌(那屯村)에서 들어가 몇 호 안 되는 첨산둔(尖山屯)을 지나자 오늘의 목적지인 고려성자촌(高麗城子村)에 도착하였다. 마을 이름도 고구려 성이 있는 마을을 뜻하는 고려성자촌이지만 마을 뒷산을 보니 '아, 여기가 고구려산성이구나'하고 금방 알 수 있었다. 산을 오르는데 대단한 강풍이 불어 체감온도가 급격히 떨어진다. 길쭉한 산 모양은 크게 둘로 나누어 남성(南城)과 북성(北城)으로 나뉘는데 북성 입구에 상당히 완전한 성터가 남아있었다. 무너진 곳도 많지만 성터는 분명했다. 사방이 5∼6m에서 20∼30m정도로 높은 절벽으로 되어있어 성벽을 쌓지 않고도 절벽 자체가 자연 성벽을 이루고 있는데 중간중간 뚫린 곳에 성을 쌓았다. 지금은 대부분 허물어지고 그 흔적만 남아있는 곳이 많다. 꼭대기에 올라가 보니 평평한 들판 같은 평지에는 밭이 있고 북쪽 끝에 우물도 있었다. 샘은 안내인이 가르쳐 주지 않았더라면 그냥 지나칠 만큼 말라있었으나 아직 습기는 남아 있었다. 여름에는 물이 있다고 한다. 걸어다니기 힘들 정도로 정말 센 바람이다. 남쪽 봉우리에도 쑥 들어간 부분에 성벽이 있어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자연을 최대한 이용한 산성이다. 꼭대기에 올라 바라보니 대평원이 끝없이 펼쳐있어 여기도 '고구려성은 항상 넓은 평원을 끼고 있다'는 원칙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내려와서 보니 운전사가 출발 준비를 한다. 목장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는데 인부들 위생상태가 너무 좋지 않다는 것이다. 운전사 김씨는 조국의 역사유적을 찾아다니는 나의 열정에 감복하였다며 스스로 식사를 안 해도 좋으니 고구려 성을 하나라도 더 찾아보자며 앞장을 서는 열성을 보였다. 이렇게 해서 오늘도 점심을 거른다. 큰길을 나오니 바로 옆이 나둔(那屯) 고속도로 인터체인지다. 가능하면 개현에 있는 고구려 산성을 하나쯤 더 찾아보기로 하였으나 눈발이 날리고 시야가 좋지 않아 계획을 취소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일 볼 고구려 성이 있는 대석교(大石橋)에서 묵으며 실로 오랜만에 목욕도 하고 시외전화도 하였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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