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회발표자료 (고구려발해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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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高句麗 建築의 起源에 關한 考察_2007춘계학술대회-이병건-
高句麗 建築의 起源에 關한 考察  
2007년 고구려연구회 춘계학술대회

주제명: 고구려의 起源과 族源에 관한 제문제
일  시: 2007년 5월 3~4일(목, 금요일)
장  소: 경성대학교 누리관 이미지홀
주  최 : 고구려연구회·경성대인문과학연구소

7.  高句麗 建築의 起源에 關한 考察  
- 高床式 建築 ‘桴京’을 中心으로 -

  發表 : 이병건 (동원대)  討論 : 서정호 (공주대)

Ⅰ. 머리말
Ⅱ. 韓半島地域 高床式 建築 出現
Ⅲ. 初期鐵器 및 原三國時代의 高床式 建築
Ⅳ. 古墳壁畵에서 보이는 高句麗 부京
Ⅴ. 高句麗 桴京의 傳播
Ⅵ. 맺음말


Ⅰ. 머리말

고주몽에 이어 두 번째 임금인 유리왕이 등극하였다.『三國史記』[高句麗本紀]에 유리왕 등극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고주몽이 부여를 떠날 때 어린 아들 유리를 부인에게 의탁하며 유리가 후일 장성하여 信標를 가지고 찾아오면 아들로 인정하겠다는 다짐이었다. 유리는 아버지가 숨겨둔 신표를 탐색하다가 천신마고 끝에 일곱 모 난 주춧돌과 그 위에 세워진 소나무 기둥 사이에서 신표를 찾아 후일 고구려 제2대 왕으로 등극한다. 이 기록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기록은 ‘일곱 모 난 주춧돌’에 관한 것이다. 주춧돌을 사용했다는 것은 기둥뿌리를 땅 속에 파묻는 掘立柱式이 아니라 주춧돌 위에 기둥을 세웠다는 것이다. 紀元前부터 고구려에는 주춧돌 위에 기둥을 세우는 高度의 架構式 공법이 존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비해 일본의 경우는 紀元後 538년이 되서야 백제로부터 불교문화를 수용함과 동시에 건축 기술도 전수받아 건물을 세우는데 기존 掘立柱式에서 架構式 공법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또한『三國遺事』第3卷 塔像 第四 [遼東城 育王塔 條]에는 고구려 聖王이 국경을 순행하던 길에 요동성에 이르러, 오묘한 구름의 등장과 솥을 엎어놓은 듯한 三重의 土塔이 있어, 이를 기이하게 여겨 佛心으로 土塔이 있던 자리에 7층의 木塔을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7층의 목탑을 세웠다는 것은 고구려 때 이미 높은 기술의 건축술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는 기사이다. 하지만 위의 두 사건과 같은 당시의 이러한 고급의 建築術을 확인할 수 있는 고구려 유적은 현재 아무것도 없다.
한편『三國志』魏書 卷30 東夷傳 高句麗條에는 “國中邑落 暮夜 男女群聚 相就歌戱 無大倉庫 家家自有小倉名之爲桴京” 이라 하여 고구려에는 집집마다 ‘桴京’이라는 작은 창고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 桴京은 지금도 중국 동북지역에서는 어디서나 집집마다 집 내부에서 볼 수 있는 광경이다. 다행히 고구려 당시 실존했던 부경은 아니지만 중국 吉林省 集安市에 있는 고구려 고분벽화에는 당시의 부경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고분벽화가 남아있다. 桴京만은 지금도 면면히 고구려 건축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고구려 건축의 始原을 찾아 볼 수 있는 좋은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고구려 건축의 여러 유형 가운데 高床式 建築인 桴京을 주제로 그 원류가 어디인지, 그러한 부경이 어떻게 전파되었으며, 어떻게 지금에 전해지고 있는지 고찰해 보고자 한다.

Ⅱ. 韓半島地域 高床式 建築 出現
한반도지역에서 유적으로서 고상식 건축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시기는 발견된 유적이 매우 극소수이긴 하지만 청동기시대 이후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표 1>에서와 같이 한강유역을 포함한 한반도 남부지역에서는 움집 외에 구덩이를 파지 않고 地面에 직접 기둥구멍을 배열한 굴립주식 고상식 건축물이 확인되고 있다. 이 유형의 건축이 주거용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있으나 현재로서 그 용도와 구조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움을 파지 않고 地面에 직접 기둥을 박았다는 점에서 地上建築으로 볼 수 있다.
이와 동일한 형식의 고상식 건축물은 초기철기시대 및 원삼국시대에도 한반도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다수 발견되었다. 이는 유적들이 가지는 남방적인 성향과 더불어 한반도 남부지역에서는 고상식 건축이 청동기시대에 이어 초기철기시대와 원삼국시대에 이르기까지 남부의 지역적인 전통을 형성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표 1> 청동기시대 고상식 건축 유적 분석표
유    적유형분류평 면 규 모기둥배열정 면
(m)측 면
(m)면 적
(㎡․坪)평면비율
측면: 정면미사리 고대39호굴립주식6.623.9826.35
7.981: 1.663칸×2칸장천리10호고상가옥5.502.0011.00
3.331: 1.673칸×1칸검단리90-2호굴립주식불 명대곡리 도롱-북-흔적1호굴립주식불 명대곡리 도롱-북-흔적2호굴립주식불 명
자료:金度慶,「韓國 古代 木造建築의 形成過程에 關한 硏究」, 高麗大 박사논문,
2000, 90쪽 내용을 변형 수록.

Ⅲ. 初期鐵器 및 原三國時代의 高床式 建築
한반도지역에서 초기철기 및 원삼국 시대 유적 가운데 많은 수의 고상식 건축 유적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발견된 유적 분포는 한강유역을 경계선으로 한 남쪽 지역으로 한정되어 있다. 이러한 고상식 건축은 주거용 또는 주거에 부속된 창고 등의 용도로 활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한반도 유역에서 발견되고 있는 고상식 건축 유적은 주거와 관련된 남방적인 성격이 더 강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지금까지 발굴된 삼국시대 건물터 가운데 특히 백제 지역에서 고상식 구조의 건물로 추정되는 유적이 많이 발굴되는 것 또한 이러한 지역적인 특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표 2> 초기철기 및 원삼국시대 고상식 건축 유적 지역 분포표
지       역유    적유 적 수한       강미 사 리43보성·영산강대 곡 리7동 남 해 안부 원 동1동 남 해 안늑    도1

한반도 북방지역에서도 고상식 건축의 출현 및 존재를 문헌 및 고분벽화에서는 확인할 수 있으나 현재까지 북방지역에서 주거용으로 활용된 고상식 건축의 존재는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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