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View Articles |
|
 |
| Name |
 | | | 관리자 |
|
 |
| Subject |
 동북공정 고구려 연구 결과에 대한 평가-서길수- |
 |
 |
동북공정 고구려 연구 결과에 대한 평가
서 길 수 (서경대)
차례
Ⅰ. 머리말 - ‘고구려=중국사’ 작업의 센터는 동북공정이 아니다.
Ⅱ. ‘고구려=중국사’, 중국 학자들의 논리와 평가 (1)
- 고구려는 중국 땅에 세워졌다.
Ⅲ. ‘고구려=중국사’, 중국 학자들의 논리와 평가 (2)
- 고구려는 국가가 아니라 소수민족 지방정권이다.
Ⅳ. ‘고구려=중국사’, 중국 학자들의 논리와 평가 (3)
- 고구려가 멸망한 뒤 고구려인은 대부분 중국에 속하게 되었다.
Ⅴ. ‘고구려=중국사’, 학술연구가 끝나고 이미 일반화 단계로 들어갔다.
Ⅵ. 맺는말 - 새로운 역사관과 강역이론의 정립이 필요하다.
Ⅰ. 머리말 - ‘고구려=중국사’ 작업의 센터는 동북공정이 아니다.
실제 동북공정을 실시하는 과정에서 고구려 연구과제로 선정된 것은 27과제 가운데 3과제 밖에 되지 않는다.
3. 『호태왕비 1580년』, 耿铁华, 2002. 08
13. 『간명(簡明) 고구려사』, 孙玉良, 2003. 01
24. 「압록강 이남 고구려 유적 조사연구」, 徐日范, 2004. 08
우리가 평소 ‘동북공정=고구려사 왜곡’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상식에 비하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결과이다. 여기서 『호태왕비 1580년』은 광개토태왕비 연구를 집대성한 책이고, 『간명(簡明) 고구려사』는 1990년 한국어로 나온 『고구려간사』를 중국어로 내는 정도일 것이다. 24번 연구 주제인 「압록강 이남 고구려 유적 조사연구」도 남북한의 고고학적 성과를 종합하는 정도이지 동북공정에서 결정적으로 새로운 연구를 진행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동북공정에서는 왜 고구려 연구 주제를 4% 남짓으로 제한했는가? 그것은 다음과 같은 2가지 이유 때문이다.
1. 고구려사 왜곡은 이미 기초가 완성된 상태에서 동북공정이 시작되었다.
중국의 고구려사 침탈은 이미 1980년부터 시작되었다.
1단계(1980-1995, 15년) : 학자들에 의한 역사침탈 준비기
1) 1980-1985 : 통일적다민족국가론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고구려 연구의 시작
2) 1985-1995 : 고구려 연구의 팽창기
2단계(1996-2001, 6년) : 국책에 의한 역사침탈 추진과 1차 왜곡의 완성기
1) 1996-1997 : 국책 연구 추진기
2) 1997-2001 : 1차 국책 연구의 완성,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