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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북프로젝트의 근현대사 관련 연구 결과에 대한 평가-박선영-
현실(사실)과 이론 사이
: 동북프로젝트의 근현대사 관련 연구 결과에 대한 평가

           박 선 영 (포항공대)


                              Ⅰ. 서론

중국사회과학원 변강사지연구중심 홈페이지에 공개된(2005년 9월 21일) 동북프로젝트의 근현대사 관련 주제는 ①「청대 압록강 유역의 봉금과 개발 연구」 ② 「민국시기 동북 지방 정부 변경 통치 연구」 ③「근대 중국 동북 지역의 국제 이민 문제」 ④「국제법과 중조 변경 논쟁 문제」 ⑤「20세기 동북 변강 문화 연구」 ⑥「러시아 동부 이민 개발 문제 연구(1861-1917)」 ⑦「중국 동북과 러시아(소련) 경제 관계사(17세기 중엽-1949년)」이다.
  위의 7개 연구가 전체적인 하나의 체계를 지향한 것이 아니고 각 연구마다 독자적인 체계 하에 있는 것이어서 이 7개의 연구를 통폐합하여 종합적으로 일치된 하나의 견해로 정리하기에는 한계가 많이 있다. 그러나 서로 다른 7개의 연구를 관통하고 있는 것은 동북 변강 지역에서 일어난 조선과 러시아를 포함한 동아시아 관계를 어떻게 정리할 것이냐 하는 고민에서 출발되었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동북프로젝트에서 지향하는 ‘동북지역사=중국사’라는 시각에서 정리되었다는 것은 확인할 수 있다.
본고에서는 이미 출판된 연구과제는 출판된 결과물을 참조하였지만 아직 출판되지 않은 결과물에 대해서는 변강사지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간단한 보고서와 각 저자들이 이 연구와 관련하여 발표한 논문을 동시에 참조하였다. 이 정도의 자료로 중국이 조직적으로 진행하는 동북프로젝트 근현대 관련 연구성과에 대해 본격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러나 동북프로젝트의 1차적인 성과물을 개략적으로나마 정리하여 내용을 파악해 본다는 의미에서 먼저 개별 연구의 핵심 내용(한정된 자료로 파악할 수 있는 정도)을 간단히 정리하고 비판(평가) 또는 교훈을 언급하는 정도로 정리하고자 한다.


           Ⅱ. 연구성과의 핵심 내용과 그에 대한 비판

1. 「청대 압록강 유역의 봉금과 개발 연구」의 내용과 평가

1) 「청대 압록강 유역의 봉금과 개발 연구」의 핵심 내용

「청대 압록강 유역의 봉금과 개발 문제」는 유조변의 해석문제를 둘러싸고 동아시아 각국의 견해가 다름에 주위를 환기하고 있다. 특히 한국 국회에서 김영광 의원 등이 ‘백두산 소유권 확인에 관한 의안’을 제출함으로써 “압록강 유역의 학술연구는 이미 정치문제로 발전되었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백두산에서 발원하는 압록강 및 그 유역은 이미 중국과 주변국가간 미래 국경 분쟁의 초점이 되었다”라고 명시함으로써 압록강 유역의 봉금지대와 개발 문제는 국경 분쟁의 요소라는 것을 인정하였다. 이는 연구의 목적이 국경분쟁의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청대 압록강 유역의 봉금과 개발에 대한 연구를 새롭게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연구는 청대 중조 변경 연구를 백두산, 압록강과 두만강 세 부분으로 나누어 특히 압록강 유역의 봉금과 개발을 집중적으로 검토하였다. 연구의 시발점을 압록강 유역에서의 여진인의 활동으로부터 시작하고 있는데 “두만강, 압록강은 여진, 만주족의 고향으로 만주족은 청조의 통치 민족이고 그들이 거주한 지역은 당연히 중국의 영토”라는 것이 핵심 논리이다.
이 연구가 추구하는 현실적 의의는 세가지다. 첫째, 청대 변강통치 정책의 성패를 교훈삼아 현재 동북 지방 경제 발전, 사회 안정, 변강 안정에 직접적인 교훈을 주는 것이다. 둘째, 청조 종번관계적인 시각에서의 연구는 오늘날 WTO 가입 후 중국이 당면한 도전과 세계에 대한 전략을 현실적으로 인식하는 의의가 있다. 셋째, 한반도 학자의 영토 귀속 논리를 비판하고 중국의 압록강 유역 귀속을 각인시키는 것이다.
이 연구가 주장하는 논리는 두 가지인데, 백두산 지역에서 발원하는 압록강과 두만강은 명조 중기 이후로부터 중국과 조선의 국경강이 되었다는 것과 여진족과 만주족이 거주한 지역은 당연히 중국의 영토라는 것이다.

2) 「청대 압록강 유역의 봉금과 개발 연구」의 주장에 대한 비판

이 연구가 주장하는 두 가지 논리에 대해 각기 비판해 보면,   첫째, 명조 중기 이후로 압록강과 두만강이 조선과 중국의 국경이었는가?
중국은 명조 중기 이후부터 압록강과 두만강이 국경강이었다고 주장하나 이 시기 한중 양국 사이에 국경조약을 체결하여 압록강과 두만강을 국경강으로 삼은 적이 없다. 당시 명조는 요동지역을 제대로 통치했다고 보기 어렵고, 요동도사 등이 있기는 하였지만 그 기능과 성격은 시대상에 따라 차이가 있었으므로 적절한 성격 규명이 더불어 있어야 할 것이다. 명조시대의 유조변 성격을 보면 유조변이 바로 명대세력이 미치는 한계라도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명대의 요동 변장은 몽고와 여진을 방어하기 위한 것으로 서쪽은 지금의 요녕 綏中縣 경내의 鐵場堡, 동쪽으로는 압록강에 이르는 U자형의 1960里 길이의 변장이었다. 그림1에서 보는 바와 같이 러시아 학자 멜리호프는 유조변을 곧 명대와 청대의 국경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를 종합적으로 검토한다면 명조 중기 이후부터 압록강과 두만강이 국경강이었다고 하는 주장은 견강부회한 것이다. 이를 명확하게 규명하기 위해서는 당시 동북지역의 성격 규명이 필요하며 특히 명과 여진과의 관계, 조선과의 관계가 먼저 재정립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이 연구에서 두만강은 백두산에서 발원한다고 하였는데 과연 그러한가? 실제로그림1. 명대와 청대의 국경선
출처: Г. В. Мелихов(멜리호프), Маньчжуры на Северо-Востоке(『동북지역 만주족』) (XVII в.). М., 1974, p. 107.
그림2에서 보는 바와 같이 백두산 지역에서 발원하는 것은 압록강과 토문강이고 두만강과는 상당한 거리상의 차이가 있다. 물론 거시적인 관점으로 보면 이 지역에 가장 큰 산이 백두산이기그림  토문강과 두만강 때문에 두만강도 백두산으로부터 굽이굽이 흘러 발원하는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실제로는 백두산으로부터 발원한다는 것에 대해 구분하여 설명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굳이 이를 구분하여 설명하려는 이유는 첫째, 이 연구는 조선과의 변경 문제를 불식시키고 압록강, 두만강 유역을 중국에 귀속 고착시키려는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설명 방식은 조선과 논란이 되는 간도문제 즉 토문강의 해석문제를 근원부터 없앨 수 있기 때문에 두만강이 백두산으로부터 발원하는 국경강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둘째, 백두산 천지에서 직접 발원하는 것은 압록강, 토문강, 송화강이기 때문이다. 토문강은 다시 송화강으로 유입되어 흑룡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중국은 자의적으로 토문강은 현재의 두만강이라고 강변하지만 그림2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는 분명히 다른 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굳이 “백두산 지역에서 발원하는 압록강과 두만강”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1712년 백두산 정계비에 기록된 “서쪽으로 압록, 동쪽으로 토문”이라는 글귀로 인해 야기된 한중간의 국경문제를 근원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하나의 조치이다. 한중간의 국경문제를 연구하는데 있어서 연구저서나 사서에 지속적으로 압록강과 두만강이 백두산에서 발원하는 것으로 기술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한중국경분쟁을 차단하기 위한 하나의 조치일 뿐 사실이 아니다.
둘째, 여진족과 만주족은 당연히 중국인인가? 중국은 현재 중국의 영토 안에 있는 모든 역사와 민족을 중국화하면서 과거와 현재의 역사를 혼재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를 논의할 때는 분명히 당시 시대상을 고려해야 한다. 근대적인 국경 협정이 있기 전에 자국의 영토를 어떻게 규정하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 선점과 행정적 통치 등은 영토귀속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상을 무시하고 현재적 관점에서만 논의한다면 역사적인 논란을 설명하기 힘들어진다.
당시 한족이 통치하던 명은 만주족의 청에 의해 점령되어 청의 천하가 되었다. 반만을 외치며 끝까지 명의 신하임을 자청했던 사람들이 역사의 영웅이었던 중국의 역사서술이 변화하기 시작한 것은 중화민국 이래 점차 논리 보강을 통해 나타난 현상이다. 특히 중화인민공화국 시대에 계획적이고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중화민족, 통일된 다민족 국가 등 다양한 이론을 통해 고대로부터 현대까지 모든 것을 ‘중국’으로 설명하는 것은 중국의 역사적 사실을 왜곡할 뿐만 아니라 인접국의 역사도 왜곡 또는 침탈하는 결과를 낳아 심각한 외교적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

2. 「민국 시기 동북 지방 정부 변경 통치 연구」의 내용과 평가

1) 「민국 시기 동북 지방 정부 변경 통치 연구」의 핵심 내용

이 연구는 1912년부터 1931년까지 20년간 동북 지방 정부의 변강 통치 전모를 보여줌으로써 “국가 민족의 전체 의식을 강화”하고 “역사와 현실을 관조하여 애국주의 교재로 사용”하려는 목적이 있다. 민국시기 동북 변강 통치는 특히 1920년대 동북지역을 중국 전국, 동북아, 세계에 이르기까지의 대배경하에 두고 고찰하여, 변강 통치가 국가 민족의 역사 문화, 정치, 경제, 군사 등 여러 요소와 관계되지만 경제체제를 창조하는 것이 변강 안정의 주요한 요소임을 강조하였다.
민국시기 동북 지방 정부 변강 통치 정책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것은 “오늘날 동북 지방 경제 발전, 사회 안정, 변강 안전에 직접적인 교훈과 계시를 제공”하고, 동북아시아 지역 정치로 이해하여 “당시 중국과 조선, 일본, 러시아 등 주변국가와의 관계를 이해”하려는 의도가 있다. 이를 통해 “당시 동북아 정치, 경제, 군사 배치를 이해하는데, 특별히 오늘날 개혁개방으로 WTO에 가입한 후 중국이 당면한 도전과 세계 전략에 대한 인식은 중요한 현실적 의의”를 지니고 있음을 파악하려는 것이다.
이 연구는 변강 개념으로부터 출발하여 청일, 러일전쟁 시기의 동북 변강 상황과 러시아와 일본이 철도와 군사를 바탕으로 한 세력 확장 전략 배후에 경제적 이유가 있음을 밝히고 있다. 또한 민국 시기 동북 지방 정부의 변경 통치에 대해 다변적 외교관계를 “이이제이(以夷制夷)”로, 문화 교육 사업 발전을 “이문실변(以文实边)”으로, 전방위적 개발 전비(战备)를 “이민실변(移民实边)”, 국가권익을 옹호하는 교섭을 “이법투쟁(以法力争)”으로, 동북역치를 “구통호변(求统护边)”으로, 변강 농업 발전 조치를 “둔간충변(屯垦充边)” 등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 과제의 핵심은 민국시기 동북 변경 개념의 복잡성에서 출발하여 중국 전국의 다른 변강지역과 비교해도 중요성과 특수성이 있음을 중시하면서 러시아와 일본의 세력을 검토함으로써 동북 지방 정부 변강통치 성패의 경험을 현재의 교훈으로 삼고자 하였다. 쉽게 말하면, 동북지역의 중요성과 특수성으로 인해 러시아, 일본 제국주의가 동북지역에서 있었던 20세기 역사를 회고해 볼 때 동북 지방 정부의 변강 통치의 중요성은 현재에도 중요한 교훈이 된다는 것이다.

2) 「민국 시기 동북 지방 정부 변경 통치 연구」의 주장에 대한 평가

이 연구의 개략적인 내용만으로는 구체적인 관점과 내용을 판단하는데 어려움이 있지만 그 항간을 읽어보면 동북지역을 경제적으로 발전시켜 변경안정을 꾀함으로써 “국가 영토, 주권을 보호하고 침범되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연구가 변강통치에서 경제적인 발전을 중시한다고 필자가 생각하는 이유는 저자는 국외의 동북 역사 연구에서 고려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관점으로 일본의 예를 들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일본은 식민지 압박이나 식민 약탈을 회피하고 “동북 40년의 침략에 대해 동북 40년 개발로 설명”하고 있다고 하면서 “동북 지역의 안정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자본을 투자하고 현대화 공업을 일으켜 빈곤한 현지인을 수용해야 한다”는 관점에 관심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본문에서도 “변강 통치의 중요한 일면은 경제를 발전시키는 것인데,동북 지방 정부는 외자를 들여오고 외국자본의 통제를 벗어나는 점에 있어서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 요소와 지역적 요소를 보았다”고 논술하였다. 더불어 동북 지방 정부와 일본이 ‘상조권’ 등의 문제를 교섭한 것과 “경제적 균형체계를 제기하는 것은 변강 안정과 발전의 주요한 요소를 보증하는 것이다”라고 하여 변강 통치에서 경제의 중요성을 거듭 언급하고 있다.
경제적 중요성과 더불어 “국제간의 군사 균형 체계를 구축하는 것은 변경 안전의 주요한 요소이다”라고 하여 변강의 경제와 군사적인 변경 강화의 중요성을 동시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동북 지방 정부의 변강 통치에서 상대적인 자주성의 이해득실을 연구하는 측면에서 ‘탄성외교’, ‘완충외교’ 개념을 제시”하였다. 이는 변강 지역 통치에서 자주적인 ‘탄성외교’, ‘완충외교’를 구사하여 경제적, 군사적으로 안정을 추구해야 함에 관심을 둔 것이다.
이러한 연구는 현재 동북에서 진행되고 있는 노후된 공업기지를 변모시키는데 동북진흥전략, 생태경제적인 측면의 백두산 공정, 학문적 이론적으로 동북지역을 ‘중국화’하는 동북프로젝트 및 두만강 개발과 여러 가지 측면에서 맥이 닿고 있다. 이러한 노력의 핵심은 변경의 안정과 번영이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변경 강화 차원에서 시행되고 있는 변경지역 군사 배치, 비행장, 고속도로, 철도 등 교통로의 확장을 꾀하는 조치는 민국시기나 현재나 변강 통치 차원에서 경제적, 군사적인 측면이 어울어진 중국 변강 통치의 규칙을 보여주는 조치라고 할 수 있다. 즉 이 연구에서 추구하는 바와 같이 “민국시기부터 동북지방정부의 변강 통치 실천 속에서 객관적인 규율성을 찾아서 참고할 만한 경험과 교훈을 종합”하여 현실에 유용하게 활용함으로써 “국가 민족의 전체의식을 강화시키는”데 이론적인 받침을 해 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3. 「근대 중국 동북 지역의 국제 이민 문제」의 내용과 평가

1) 「근대 중국 동북 지역의 국제 이민 문제」의 핵심 내용

이 연구의 핵심 내용은 첫째, 경제학적 관점으로부터 동북지역의 국제이민을 검토하여 “국제이민이 동북 변강 지역 사회와 경제 변천에 미친 영향”에 관심을 두었다. 연구의 구체적인 내용은 중국 관내에서의 이민이나 국제이민이 모두 이민과 개발 하에서 전개된 것으로서 동북지역에 미친 사회 경제적인 변화가 무엇인지에 관심을 두고 있다. 만주국 시기 동북지역으로의 이민과 인구 증가로부터, 일본, 조선, 러시아, 구미인의 이민과 이러한 국제이민이 동북 사회 경제 발전에 미친 영향을 검토하였다.
둘째, “인구학적 관점에서 제국주의가 중국을 침략한 환경하의 근대 중국 동북지역 국제이민 문제를 분석하여 근대 동북지역 국제이민의 본질을 드러내어 근대 국제이민이 동북지역 경제, 사회에 미치는 심각한 영향을 분석하고 이해”하였다. 특히 “일본, 러시아 제국주의 열강이 이민을 이용하여 동북 변강을 침략한 역사를 연구함으로써 그 안에서 규율적인 결론을 종합”하였다.
저자가 국제이민 문제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최근 중국의 현실에 적용할 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저자는 개혁개방 이래 특히 “동북아 핵심지역인 중국 동북 변강지역에 대해 국제이민이 날로 증가하여 변강의 안전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에 주목하였다. “미국을 중심으로 서양의 반중국 세력은 중국의 신속한 발전을 저지하기 위해 인권문제를 빌미로 중국의 민족문제와 변계문제에 대해 대대적으로 글을 써서 암암리에 소수민족 분열세력을 지지하고 중국과 주변국가의 관계를 도발하여 분열이 실현되도록 기도하여 중국을 봉쇄하려는 음모를 획책하고 있다”고 진단하였다. 따라서 근대 동북 지역의 국제이민 문제 연구를 통해 “서양 반중국 세력의 도전을 응대하고 중국의 통일과 영토안전을 보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2) 「근대 중국 동북 지역의 국제 이민 문제」의 주장에 대한 평가

저자가 근대 동북 지역의 국제 이민 문제를 검토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개혁개방 이래 동북 변강지역에 국제이민이 증가하기 때문인데, 여기에서 주된 국제이민의 주체는 탈북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탈북자 이외에도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경제적, 정치적, 사회 문화적 혹은 종교적 이유로 동북지역에 들어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필자가 저자의 주장에서 탈북자를 염두에 두었다고 하는 이유는 저자가 “미국을 중심으로 서양의 반중국 세력은 중국의 신속한 발전을 저지하기 위해 인권문제를 빌미로 중국의 민족문제와 변계문제에 대해 대대적으로 글을 써서 암암리에 소수민족 분열세력을 지지하고 중국과 주변국가의 관계를 도발하여 분열이 실현되도록 기도하여 중국을 봉쇄하려는 음모를 획책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의 ‘북한인권법’을 겨냥한 것이며, 현재 일본도 ‘북한인권법’ 제정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북한인권법이 실질적으로 “인권문제를 빌미로 중국의 민족문제와 변계문제”에 간섭을 한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미국의 ‘북한인권법’은 북한의 인권개선을 위한 목적으로 제정된 것으로만 인식하는 경향이 있는데, 실제로 ‘북한인권법’은 미국이 북한 인권문제를 포괄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만들어 ‘탈북자 인권 보호’라는 측면에서 동북지역에도 직접적으로 간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두었고, 심지어 한국과 교섭 없이 탈북자들과 미국이 직접 교섭하여 망명신청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동북지역이 왜 중요하며 왜 이 지역에 국제적인 이민이 있으며, 국제이민이 과거의 역사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미치는 의미가 무엇인지 분명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4. 「국제법과 중조 변경 논쟁 문제」의 내용과 평가

1) 「국제법과 중조 변경 논쟁 문제」의 핵심 내용

이 연구는 소위 ‘간도문제’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국제법적 이론을 통해 변경 논쟁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찾는데 목적이 있다. 따라서 이 연구에서는 ① 국제법에서 국계, 조약, 민족 등에 관해 통용되는 이론으로 영토 귀속을 판정하는 준칙과 표준 ② 국제관례 중 세계적으로 부합하는 절대 다수 국가가 변계, 강역 논쟁을 해결하는 통칙 ③ 마르크스, 엥겔스의 영토, 강역, 민족 논쟁에 대한 기본적인 이론 ④ 1962年11月21日《중화인민공화국정부성명》중에서 중국이 변계 쟁의를 처리하는 입장과 원칙을 연구하여 중국과 조선의 변경 논쟁을 해결하는 이론적인 모델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구체적인 내용으로는 역사상 동북 지방 정권과 중앙의 관계 및 법률적 지위; 갑오전쟁 이전 중국과 조선 관계 및 변계문제와 세계 다른 국가와의 異同, 동아시아 질서의 독특성 문제; 갑오전쟁 이후 중국과 조선 관계 및 국경 획정의 법률적 문제를 검토하였다.
이 연구에서 중점을 두는 부분은 첫째, 거시적이고 이론적인 차원에서 “기자 조선, 위만조선, 고구려, 부여, 발해국 5개 동북 지방 정권이 모두 중국 중앙 황권 통치 하의 지방정권이라는 것을 논증하여 이론적으로 갑오전쟁 전 중조 관계 및 관련 변경 논쟁 문제를 해결” 하여 소위 귀속 문제를 정리하는 것이다.
둘째, 국제법 중 민족, 국경 등과 관련된 이론의 도움을 받아 세계 각국의 변경 문제 처리의 규칙을 참조하여 거시적인 관점에서 특히 세계사적인 차원에서 중국과 조선간의 강역과 변계 문제를 파악하여 변경 논쟁을 변별하는 것이다.
셋째, 세계사에서 중국과 조선의 변경 논쟁과 관련 있는 국가이론, 민족이론, 변계이론을 이용하고 응용하여 이론적으로 변경 논쟁을 해결하는 것이다.
위의 전체 내용 중 일부분이「국제법과 중조 변계(국경) 쟁의 문제」라는 논문으로 발표되어 그 진상을 파악할 수 있는데 여기에서는 근현대 변경문제에 대하여 변경분쟁을 해결할 법리원칙을 5가지로 제시하였다.
첫째, 중국은 역대로 형성되어 온 양국간의 전통적인 관습선(慣習線)을 존중한다. 지리적인 특징과 전통적인 관습선의 형성은 밀접한 관계가 있지만 전통적인 관습선은 정식적으로 변경 협상을 거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양국의 공동 감계가 없어서 분쟁이 있기 때문에 양국의 협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
둘째, 강압적이고 불법적이며 비밀에 의한 국경선은 승인하지 않는다. 이 연구에서 제시하는 대표적인 예로는 1914년 3월 24-25일 영국과 티베트 정부가 체결한 조약이다. 조약을 체결할 때 중국과 상관없이 영국의 협박 하에 티베트 정부가 비밀리에 체결한 것이기 때문에 중국은 불법적이고 무효한 조약을 인정할 수 없다.
셋째, 일방적인 변경선 주장은 인정하지 않는다. 1960년대 초 중국과 인도 사이에 변경 분쟁이 있을 때 중국은 인도가 일방적으로 제기한 변경선을 인정하지 않았다. 인도가 주장했던 지역은 중국이 행정기구를 설치하고 관리를 파견하였으며 부세를 징수하고 사법권을 행사한 중국의 영토였다. 따라서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일방적으로 영토나 변경선을 주장하여도 중국은 중국 영토의 완정(完整)성과 변경선을 지키기 위해 동의 할 수 없다.
넷째, 중앙정부의 전권대사가 체결한 것 이외에 지방 당국이 체결한 어떠한 국경선 관련 조약도 인정할 수 없다. 중국은 인도와 국경 담판을 할 때 티베트 지방 당국이 1914년 4월 15일 영국 대표와 개별적으로 체결한 조약을 인정할 수 없다. 티베트는 중국 영토의 일부분이고 티베트의 외교와 군사는 중국이 지도하며 티베트는 중국 정부를 거치지 않고 어떠한 국가와도 협상을 할 수 없다.
다섯째, 역사적으로 미해결된 변경문제는 양국의 협상을 통해 해결한다. 중국은 평화5원칙 즉, ①서로 주권과 영토의 완정성을 존중 한다. ②서로 침범하지 않는다. ③서로의 내정을 간섭하지 않는다. ④서로의 이익을 평등하게 한다. ⑤평화롭게 동거한다는 기초위에 쌍방간 협상을 통해 주변 국가의 분규를 해결한다. 이 5원칙은 평등, 존중, 평화적인 협상 원칙 하에 침략과 무력을 반대한다. 따라서 중국은 이웃 국가와 영토 분쟁이 있을 때 협상을 통해 해결한다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이와 더불어 중국은 국제법 이해를 통해 영토 변경 분쟁을 해결하려는 또 다른 세 가지 원칙을 강조하고 있기도 하다.
첫째, 중국은 1970년 연합국이 전원일치로 통과시킨 “국제연합헌장에 따른 여러 국가간의 우호관계와 협력에 관한 국제법의 여러 원칙에 대한 선언”(Declaration on Principles of International Law concerning Friendly Relations and Co-operation among States in accordance with the Charter of the United Nations)에서 선포된 7가지 기본 원칙을 지킨다. 즉, ①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행사의 금지 ② 국제분쟁의 평화적 해결 ③ 국내 관할사항에 대한 불간섭 ④ 국제협력의 의무 ⑤ 국민의 평등권과 자결 ⑥ 주권평등 ⑦ 국제 의무의 성실한 이행이다. 이 선언은 현대 국제법의 기본원칙을 분명히 하고 있음과 동시에 국제연합헌장 성립 이후의 국제사회 변화에 맞추어 헌장을 재해석하는 기준을 나타내고 있다.
둘째, 현상 승인 원칙 혹은 점유 유지의 원칙이다. 점유 유지의 원칙은 국가 강역을 안정시키는데 일정한 의의가 있다. 국경 담판 시에는 양국간의 평등원칙을 강조하고 그곳에 살고 있는 주민의 습관도 고려한다. 이러한 원칙은 한중간의 국경문제를 해결하는데도 중요한 의의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셋째, 불평등 조약에 의거하여 할거된 영토 무효의 원칙이다. 불평등 조약은 국제법의 국가평등 원칙과 자유 동의 원칙을 위반한 것이기 때문에 불평등하게 체결된 조약은 법률효력을 발생하지 않는다. “조약법에 관한 빈(Vienna)조약”은 조약체결에서 교섭국의 자유의사에 의하지 않고 다른 교섭국 대표자에 대한 개인적 강제와 교섭국에 대한 무력적 강제가 있는 어느 경우든지 무효이다. 무릇 불평등조약이나 국가주권 평등 원칙을 위반하여 체결한 조약은 그 목적이 강국이 약소국에 대해 통제하고 강압한 조약이기 때문에 전부 무효이다.
국제법 중 국가간 변경 분쟁을 해결하는 원칙은 많이 있다. ①국적변경의 원칙, ②영토 우선통치 원칙, ③선점원칙, ④시효원칙 등 이 모든 것은 한중간의 변경 분쟁을 해결하는 법리원칙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외에 역사적으로 각국이 체결한 조약 중에 형성된 변경 획정 원칙 및 역사적으로 각국이 변경 분쟁을 해결할 때 사용되었던 합리적인 관례 등도 역시 변경 분쟁을 해결하는 법리적인 원칙이라는 것이다.

2) 「국제법과 중조 변경 논쟁 문제」의 주장에 대한 비평

이 연구에서 “기자 조선, 위만조선, 고구려, 부여, 발해국 5개 동북 지방 정권이 모두 중국 중앙 황권 통치 하의 지방정권이라는 것을 논증하여 이론적으로 갑오전쟁 전 중조 관계 및 관련 변경 논쟁 문제를 해결” 하여 소위 귀속 문제를 정리하는 것에 대해서는 과연 지방 정권이 무엇이냐는 기본적인 함의부터 시작하여 비평할 것이 많이 있으나 이와 관련하여 한국에서 발표된 기존 연구가 많이 있으므로 여기에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중국은 최근 영토문제 해결에 대해 국제법적 접근에 관심을 가지면서 중국법이나 로마법 그리고 이슬람법에서의 영토, 강역, 변강 등 개념에 반영된 서로 다른 모습을 찾아내고 있기도 하다. 현대 국제법이 ‘영토 취득 및 상실과 관련한 국제법의 일반원칙’에 비추어 제3자 중재기관이나 국제사법기관에 의해 영토분쟁을 결정하는데 대체로 현상유지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상태에서 한국(북한, 통일한국)이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이상 중국은 간도 문제에 대한 우선권을 갖고 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중국은 여러 국가와 변경을 접하고 있어서 개별적인 사안에 따라 서로 다른 국제법적 논리가 적용됨으로써 상호 모순되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중국의 변경 분쟁 해결 문제를 전반적으로 검토하고 중국과 일본과의 영토분쟁인 조어도 문제나 남사군도(南沙群島) 문제에 대한 중국의 논리도 검토하여 논리적으로 보강할 필요가 있다.
중국의 5가지 법리원칙(①관습선 존중; ②비밀협약 불승인; ③일방적 변경선 불인정; ④중앙 전권대사 체결 조약만 인정; ⑤미해결 문제는 양국이 협상)을 한국이 간도문제에 적용할 때 중국과 똑같은 논리로 설명할 수 있다. ①중국은 압록강과 두만강이 한중간의 전통적인 관습선이라고 주장 하지만 양국 사이에 어떠한 분쟁도 없으려면 중국의 일방적인 주장이 아니라 역사와 현실적인 각종 요인을 고려하여 양국이 협상으로 해결해야 한다. ②조선은 간도지역에 행정기구 설치, 관리 파견, 부세 징수 등을 하였는데 중국이 그 지역을 전부 중국의 영토로 주장하며 국경선을 획정하는 것에 대해 통일한국(한국)은 동의할 수 없다.
또한 ③일본이 불법적으로 행사한 외교권에 의해 한중간의 국경문제를 1909년 제3자인 일본과 중국 사이에 체결한 간도협약을 한국은 승인할 수 없다. ④양국 중앙정부의 전권대사가 체결한 것이 아닌 변경선 조약은 인정할 수 없다면 1712년 설정된 백두산정계비는 재논의의 여지가 있다. ⑤간도문제가 제기되는 것으로만 보아도 이는 역사적으로 미해결된 영토문제이자 변경문제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중국은 평화5원칙에 입각하여 양국이 평화롭게 국경분쟁을 해결할 수 있도록 협상해야 할 것이다.
비록 간도협약으로 간도지역을 현재까지 중국이 지배하고 있지만 한중간의 국경문제를 일본의 이익을 위해 중일간의 불법적인 협약으로 중국에 넘긴 것과,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체결된 조약이 각종 국제조약에 의해 마땅히 무효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간도협약만 여전히 유효한 것처럼 실질적인 지배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분쟁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중국은 한중간에 역사적으로 미해결된 변경 분쟁의 문제가 남아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분쟁은 역사적인 영토 문제로서 주로 역사적인 민족의 이주 변천 및 각 왕조의 변경 변천으로 조성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을 전근대적인 문제로 치부하여 현재 한중간 변경 분쟁의 이유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중국이 변경분쟁 여부를 표면적으로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 것과는 관계없이 중국은 여전히 한중간의 변경문제가 중요한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제법의 활용과 더불어 다양한 논리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는 한중간의 간도문제는 영토분쟁이며 영토분쟁은 역사학, 지리학, 언어학, 민속학, 통계학, 고고학, 서지학 등 여러 학문의 종합적인 인식을 요구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그 주권의 소재 여부는 국제법의 인식 및 시각에 의해 최종적으로 결정된다는 것을 감안하여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단순하게 과거의 역사만으로 부당성을 설명하는 것에 치우치는 것이 아니라 또 무조건 간도협약 무효라는 측면으로만 접근할 것이 아니라 간도문제에 대한 우리의 접근 방법과 인식을 좀더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
즉, 분쟁 지역에 대한 확립된 주권을 증명하기 위해서 제시하는 역사적이든 법적인 증거들이 의미가 있으려면 그것의 법적인 의미나 증빙력을 판결하는 근거로  ‘영토 취득 및 상실과 관련한 국제법의 일반 원칙’을 따라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 원칙에 비추어 제3자 중재기관이나 국제사법기관에 의해 분쟁 지역에 대한 주권 여부가 결정되므로 제3자 중재기관이나 국제사법기관의 시각에서 사안을 접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제판결을 받은 비슷한 사례들을 비교 검토해야 할 것이고, 영토분쟁에서 승소한 케이스를 간도분쟁에 어떻게 전략적으로 적용할 것인가도 고민해야 할 것이다. 또한 제국주의 국가의 결정 등을 포함하여 가장 확실시되는 증거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법리를 보여주고 있는 국제사법기관의 법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가장 확실시되는 증거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현대 국제법에서 영토분쟁을 해결하는 근거로서 제국주의 국가의 결정 등이 중요하게 적용될 수 있다면 일본이 연구했던 간도 관련 논리의 검토와 응용은 필수적일 것이며 러시아가 당시 조사하고 검토한 자료의 연구도 필요하다고 하겠다.
기타 보호령의 국제법적 지위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 뿐만 아니라 중국의 영토 분쟁 사례를 통해 중국의 영토 취득에 대한 관행을 분석하여 중국의 논리를 재활용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하겠다. 덧붙여 1962년 조선과 중국의 비밀변계조약과 한반도 통일 이후 현상유지(uti possidetis) 원칙의 적용 여부에 대한 검토 및 활용 가능성과 명확한 국경선이 형성되기 전후의 세계 보편적인 상황 검토도 필요하다고 하겠다.

5. 「20세기 중국 동북 변강 문화 연구 과제」의 내용과 평가

1) 「20세기 중국 동북 변강 문화 연구 과제」의 핵심 내용

이 연구는 지금까지 20세기 중국 동북 변강 문화의 특유한 문화현상, 문화감정, 문화교류 및 문화규율, 특징, 가치와 의의를 담은 종합적인 연구가 없음에 주목하였다. 따라서 동북이 백년 만에 제국주의 열강 침략, 민족 융합, 신중국의 개척과 건설을 통해, 지역에서 세계를 향하고, 폐쇄에서 개방으로 전환된 배경에 관심을 가졌다. 이에 문화, 역사, 철학 등 러일 문화, 소련 사회주의 문화와 신중국 문화 개척의 교체기 영향 하에서 20세기 중국 동북 변강 문화가 다양한 특징, 규율, 지위와 작용이 있음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중국 사회주의 문화 건설의 필요를 고려하여 문화, 역사, 철학 등의 방면에서 20세기 중국 동북 변강 각종 특유의 문화 현상(러시아 교포 문화、일본 교포 문화、식민문화、토착문화、관동문화、해방구문화、北大荒 문화、지식 청년 문화 등)을 검토하였다.
이 연구의 구체적인 내용은 동북 변강 문화를 역사적으로 되돌아 본 후, 동북 변강 이민 문화, 윤함문화(淪陷文化, 피점령문화), 신중국 공업 문화, 민족 문화, 개혁개방 변강 문화 등을 다루고 있다.

2) 「20세기 중국 동북 변강 문화 연구 과제」에 대한 평가

이 연구는 기본 내용이 소략한데다 최종 결과물이 출판되지 않아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비평을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이 연구가 추구하는 방향을 보면, “변강 문화 발전의 기초 이론의 규명과 변강문화의 사회응용 조사 연구 및 고고학적 현장 답사와 결합하여 변강 문화 연구가 거시적 문화 시각과 실증적 논술을 겸비” 하고 “당대 변강문화의 초점과 민감한 문제에 관심을 가져 역사문화와 역사심리의 다양한 시각”으로 접근하려는 것으로 보아 현실적인 난제를 문화적인 차원에서 이론화를 통해 해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논지는 동북프로젝트를 통해 연구되고 있는 다른 변강 문화 연구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는데, 예를 들어 ‘조선족소수민족론’과 ‘백두산(장백산)문화론’이 그것이다. 중국이 동북 변강과 관련하여 이론적으로 어떠한 문화를 만들어 현실적인 문제를 설명하고 해결하려고 하든 역사적인 사실에 부합하지 않으면서 한반도 문화와 역사를 왜곡 또는 침탈하게 되므로 이에 대해 우리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6. 「러시아 동부 이민 개발 문제 연구(1861-1917)」의 내용과 평가

1) 「러시아 동부 이민 개발 문제 연구(1861-1917)」의 핵심 내용

이 연구는 러시아 동부 이민 개발사를 통해 이민과 개발의 관계를 밝혀 중국 서부대개발 전략을 실시하는데 교훈을 얻으려는 목적이 있다. 또한 러시아 동부의 무한한 자원을 다국 합작으로 공동 개발하여 전세계적으로 이익을 주며, 인구과소의 러시아와 인구과밀의 중국이 상호 교류를 통해 중국의 인구 압력을 해소하는데 활용할 수는 현실적 의의도 고려하였다.
이 연구의 핵심 내용은 첫째, 1861년-1917년 러시아 동부 이민의 사회 성분, 수량 다과 원인 및 러시아 동부이민 개발의 성질; 둘째, 러시아 동부 이민 개발의 심원한 역사적 의의를 규명하고 특별히 그것이 러시아 공업화 과정 중에 나타난 작용 및 중국 동북 변강 개발에 대한 영향; 셋째, 중국이민 및 일본, 조선 노동자의 러시아 원동 개발에 대한 공헌; 넷째, 러시아 동부와 그 주변지역 이민 개발(청조의 동북개발과 미국의 서부개발)을 비교 분석하였다.
저자는 러시아 동부지역에 거대한 에너지, 원자재 및 육지와 해양생물 자원이 풍부한 인류의 공동재산이 있기 때문에 일본, 한국, 중국, 미국 등 경제기술합작의 중요한 지역임을 인식하였다. 러시아 동부의 개발은 여러국가가 혜택을 입을 수 있기 때문에 단지 지역적인 의의 외에도 세계적인 의의가 있음을 강조하였다.

2) 「러시아 동부 이민 개발 문제 연구(1861-1917)」에 대한 평가

저자는 결론에서 러시아가 제정한 ‘21세기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의 러시아 발전 전략’에서 “중국을 원동지역에서 외국 노동력을 흡수하는 중요한 파트너로 보았다”는 점을 중시하였다. 2000년 말 시베리아 연방 총통 전권대표가 제정한 ‘시베리아 장기 발전 국가 계획’에서 2025년에 동북지역 중국인은 약 3억에 이르고 러시아 인구 특별히 시베리아와 원동인구는 현상 유지할 것으로 내다보았다. 저자는 이러한 계획을 들어 “중국과 러시아는 많은 영역에서 서로 합작을 강화하는 것이 쌍방이 서로 승리할 수 있는 전략”이라고 강조하면서 “중국과 러시아 노동 협력은 더욱더 잠재력이 거대하고 전도가 넓음”을 지적하고 있다.   저자가 이런 내용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동북지역 인구는 1억인데 러시아 원동지역은 710만명 정도여서 중국의 인구과밀과 노동력 해소가 당면한 현실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러시아 원동지역 연구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 몇 가지를 지적해 보면, 먼저 러시아 원동지역(시베리아)의 중요성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시베리아는 러시아인의 생명선으로 얻으면 살고, 잃으면 죽는다. 그것을 보전하면 살 수 있고, 버리면 망한다”라는 러시아인의 대시베리아 인식은 시베리아의 풍부한 자원 등에 기반하는 것이다. 러시아 원동지역은 동북지역과도 인접해 있으며 연해주를 개척한 조선인의 삶과 역사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21세기 한국(통일한국)의 전략을 구체화할 때 러시아 원동지역과 동북지역을 포함한 북방 정책을 분명히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단순히 경제적인 측면만 보더라도 미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제 세력이 만나 교류할 수 있는 동북지역, 두만강 지역과 러시아 원동지역은 동아시아 경제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거나 차지 할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현실화 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전략이 필요하다.
둘째, 러시아의 동부 개발과 중국인의 동북 개발 및 러시아 원동지역으로의 진출에 대한 연구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러시아 원동지역과 동북지역은 인접해 있고 현재 많은 중국인이 원동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이 저서의 결론에서 저자는 “21세기 중엽 중국인은 러시아의 최대 소수민족이 되었다”라는 러시아인의 말을 인용하고 있지만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거나 분석하지는 않았다. 단순히 인용문으로만 보면 러시아에 거주하는 중국인도 러시아의 소수민족으로 규정되고 있는데, 이는 현재 동북에 거주하는 조선인이 중국의 소수민족인 조선족이 되는 논리와 상통한다. 그렇다면 러시아의 대원동지역 정책과 역사 정리 및 중국의 대원동 정책과 원동지역 거주 중국인에 대한 설명 논리를 분석하고 비교하면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얻을 있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7. 「중국 동북과 러시아(소련)경제 관계사(17세기 중엽-1949年)」의 내용과 평가

1) 「중국 동북과 러시아(소련)경제 관계사(17세기 중엽-1949年)」의 핵심 내용

이 연구는 “근대 이래 동북과 러시아(소련)의 경제관계를 제국주의 열강이 동북에서 격렬하게 쟁탈했던 당시 국제적인 배경 하에 두었”는데, 그렇게 한 현실적인 이유는 “개혁개방의 새로운 형세 하에 동북과 러시아 및 기타 국가의 경제 무역 관계를 발전시키는데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연구의 핵심 내용은 첫째, 17세기중엽에서 1949년까지 동북과 러시아(소련)경제 관계사를 7개 시기(① 17세기 중엽-1689 네르친스크 조약체결; ② 네르친스크 조약 체결에서 1858년 아이훈 조약 체결; ③ 아이훈 조약에서 1898년 중동철도 수축; ④ 중동철도 수축에서 1917년 러시아 10월 혁명; ⑤ 러시아 10월혁명에서 1931년 9.18사변; ⑥ 9.18사변에서 1945년 8.15 일본 항복; ⑦ 8.15에서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성립)로 나누어 각 시기의 경제 관계의 성질, 형식, 규모, 특징 및 쌍방 사회 경제 발전에 따르고 특별히 중국 동북 사회 경제 발전에 미친 작용과 영향을 검토; 둘째, 쌍방 경제 관계 발생, 발전, 변화의 과정 추적; 셋째, 《아이훈조약》체결 후 동북과 러시아의 무역의 불평등성에 주목; 넷째, 중동철도 수축 후 동북과 러시아 경제관계에서 발생한 중대한 변화 및 이 지역의 사회 경제 발전에 미친 심각한 영향 검토; 다섯째, 동북과 러시아(소련)정치 형세 변화가 쌍방 경제 관계에 미친 영향 연구; 여섯째, 국제형세와 기타 열강과 중국 동북의 정치, 경제 관계가 중국 동북과 러시아(소련)경제관계에 미친 영향에 대한 것이다.

2) 「중국 동북과 러시아(소련)경제 관계사(17세기 중엽-1949年)」에 대한 평가

이 연구는 17세기 중엽 러시아가 흑룡강 유역을 침입하여 동북지역과 최초로 무역한 것으로부터 출발하여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시기까지 경제관계사를 정리한 것이다. 연구결과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먼저 경제교류사적 측면에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상정했다는 것이다. 동북과 원동지역은 21세기 동북아 시대의 중요한 경제적 요충지가 될 것이다. 이를 위해 중국은 17세기 이래 원시적이고 미약한 무역 형태로부터 경제규모를 갖춘 쌍방간의 경제 무역 관계까지를 포괄적으로 정리하면서 시기 구분을 통해 동북지역과 러시아(소련)의 경제관계를 규명하였다.
둘째, 쌍방의 무역관계가 기본적으로는 불평등한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평등 관계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였다. 17세기 중엽 러시아의 흑룡강 침입으로 시작하여 중국과 각종 조약을 체결하였고 실제로 러시아 세력이 동북지역을 장악하여 동북 내지에서 무역을 하기도 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에서 평등관계를 추구하는 것은 많은 한계가 있다. 그러나 일본이 만주를 점령하여 세웠던 만주국 시기 이외의 시기에서 저자는 최대한 러시아와의 관계를 불평등과 평등 관계에서 고민하였다. 이는 우리가 대중국, 대러시아 무역관계 및 정치관계 등을 고려할 때 많은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Ⅲ. 결론 : 동북 프로젝트가 지향하는 바

동북프로젝트의 근현대 관련 1차 연구성과 7편을 검토한 결과 다음과 같은 지향성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 동북지역에서 당면한 현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일환으로 학술연구가 진행되었다.
동북변강에서 일어나는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거 역사에서 경험과 교훈을 찾으려는 시도가 연구의 출발점이었다. 한중간의 변경문제로서 논란이 있는 간도문제와 관련된 연구로 「청대 압록강 유역의 봉금과 개발 연구」와 「국제법과 중조 변경 논쟁 문제」는 “백두산에서 발원하는 압록강 및 그 유역은 이미 중국과 주변 국가간 미래 국경 분쟁의 초점”이 되었음을 인정하고 있다. 이에 국제법을 이용하여 영토 귀속 문제와 변경 논쟁 문제를 일시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를 통해 고안하고자 하였다.
「민국시기 동북 지방 정부 변강 통치 연구」도 “민국시기 동북 지방 정부의 변강 통치의 실천속에서 객관적인 규율을 찾아 참고할 만한 경험과 교훈을 종합”하고자 하였다.
둘째, 동북지역을 동아시아 더 나아가 세계사적인 배경 하에 두고 고찰하였다.
동북지역의 역사를 회고해 보면, 동북지역에서의 러시아와 일본 세력에 대한 검토와 더불어 동아시아사 더 나아가 세계사적인 배경 하에 고찰할 수 밖에 없는 지역적 특수성을 인정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동북지역의 국제이민 문제와 미국을 중심으로 반중국 세력이 인권문제를 빌미로 중국의 민족, 변계 문제에 대해 언급하는 현실을 경계하면서 중국의 통일과 영토 안전을 보전하기 위해 경종을 울리고 있는 점을 보아도 현실에서 당면한 동아시아사, 세계사적 배경을 무시할 수는 없다.
1920년대 동북지역을 당시 전국, 동북아, 세계에 이르는 대배경 하에 두고 동북 지방 정부의 변강통치를 고찰 하였으며, 국제이민도 동북아의 대배경 하에서 경제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검토하였다. 또한 한중간의 변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법과 중조 변경 논쟁 문제」에서는 세계적으로 보편 타당한 국경 분쟁 해결 원칙을 검토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물론 국경 영토 문제는 현대 국제법이 ‘현상유지 원칙’을 주장하고 있어서 중국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셋째, 현재 중국의 영토 내에 있는 모든 역사와 문화에 대해 ‘중국화’ 시도가 추진되고 있다.
중국의 ‘동북의 중국화’ 시도는 역사적인 측면과 문화적인 측면이 있다. 역사적인 측면은 고대로부터 현대까지 동북지역의 모든 것을 중국역사로 설명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중간의 영토 분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두 가지 방법을 활용하는데, 첫째는 기자 조선, 위만 조선, 고구려, 부여, 발해국을 모두 중국 중앙 통치하의 지방정권으로 규정하여 이론적으로 갑오전쟁 전 한중관계 및 관련 변경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이론을 사용하는 이유는 고대로부터 동북지역이 중국의 영토였으므로 국경 영토 문제는 생길 수 없는 것으로 만들어 나가기 위한 포석이다. 둘째, 기존 연구에서는 조선인의 이주 시기를 19세기 후반으로 상정하고 불법이주를 강조하는 방법을 활용하였으나, 「청대 압록강 유역의 봉금과 개발 연구」에서는 여진족, 만주족의 활동상부터 검토함으로써 이미 중국인으로 포함된 여진족과 만주족이 거주했던 동북지역은 당연히 중국영토라는 당위성을 주장하고 있다.
문화적인 측면에서의 ‘동북의 중국화’ 시도는 동북지역이 전통적으로 한족이 장악하지 못했던 지역으로 다양한 민족이 공존하였는데 특히 근대 러시아와 일본 제국주의 세력까지 포함하여 복잡한 역사가 많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포함하는 변강 문화 생성에 주력하고 있다. 러시아 교포문화, 일본 교포 문화, 식민문화、토착문화、관동문화、해방구문화、北大荒 문화、지식 청년 문화 등 다양한 문화를 대문화 시각으로 동북 변강 문화의 발전 변화를 투시하여 새로운 변강문화를 만들려고 한다. 그 이유는 “당대 변강 문화의 초점과 민감한 문제에 관심을 가져 역사 문화와 역사 심리의 다양한 시각으로부터 답을 얻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를 염두에 두고 ‘백두산(장백산)문화론’에 대한 연구결과가 이미 나와 있는 상태이다.
넷째, 동북 지역의 특수성과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동북프로젝트 지향성에서 살펴볼 수 있는 바와 같이, 현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민으로 역사와 문화를 이용하여 ‘중국화’ 시도를 하고, 이를 동아시아 더 나아가 세계적인 대배경 하에서 검토하려는 것 자체가 동북 지역이 특수성과 중요성을 드러낸 것이다. 중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다양한 국제세력이 교차하는 동북지역에서 당면하는 수많은 현실적인 문제가 중국의 통일과 변강 안정에 장해가 된다고 여기기 때문에 모든 것을 역사적 문화적으로 ‘중국의 것’으로 정리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의도의 항간을 보면 동북지역의 특수성이 설명되며 특히 동북프로젝트를 실시한 배경에서, “최근 세계의 관심이 동북아 지역에 집중”되고 있는데 “동북 변경지구는 동북아의 중심지역으로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이므로 “동북지역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 연구”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그 의미가 분명해 진다고 하겠다.
본고를 종합해 보면, 중국이 비록 당면한 현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거 역사를 연구하여 교훈을 얻고 이를 적절하게 이론화하여 ‘중국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지만 현실(사실)과 이론 사이의 괴리는 분명하게 존재한다. 우리는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사실에 기반한 이론으로 동북프로젝트의 역사 왜곡 혹은 침탈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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